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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벗 (7)

글쓰기/수필

by 종이인형 꿈틀이 2001. 2. 7.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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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에 쓰여진 어떤 글이 우주를 오가는 지금에도 사람의 마음을 꿈틀거리게 하듯, 글이란 때와 곳에 아랑곳하지 않으며 드나드는 유령인가 봅니다.
오래 전의 편지를 다시 꺼내 읽었지만 막 쪄낸 고구마처럼 생생하기만 합니다.

이 세상에서의 인연은 영원할 수 없습니다. 다만 어느 때라는 씨줄과 어느 곳이라는 날줄이 만나 엮어진 매듭과도 같습니다.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는 그 순간이 소중하고 아름답습니다. 이슬이 아름다운건 풀잎에 머무는 순간이 너무 짧기에 그러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매듭을 엮으며 자랍니다. 그 매듭에 때처럼 어린 기쁨과 슬픔과 설램과 애탐이 또한 우리 삶의 일부입니다.

군대시절 편지를 주고받던 이 글벗은 새벽처럼 추운 내 군생할의 고운 이슬이었습니다.
부산의 어디에 있을 글벗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종이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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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이라!
꾸깃꾸깃한 표정으로 웅크렸던 겨울도 지나고, 세월의 흐름을 절감케 하듯이 싱그러운 신입생들의 입학식이 끝났습니다.
막상 3학년이 되니까 웬지 서글프고 나이를 굉장히 먹은 것 같네요.

저는 3학년이 된 기쁨보다는 정든 친구의 우수 어린 얼굴 때문에 몹시 울적했습니다.
아낌없이 주었고(?) 계산되지 않은 순수함으로 나눈 친구들과의 우정이었는데, 반이 갈리니까 너무나 아쉽고 서운한 거 있죠?
헤어졌어도 정말 못잊을 겁니다. 여자들에겐 진실한 우정이 없다고 말하는 무식한 남자가 있다면 머리카락을 다 뽑아버릴 거예요.(_)

아무튼 90년도에는 제발 신나는 일만 생겼으면 좋겠네요.
어제 버스 안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에서 그러더군요. 반미감정은 몹시 위험한 현상이라고, 보릿고개때 먹을 것 많이 가져다 준 것 생각나지 않느냐고.
그럴때면 저는 가두행렬에서 외쳐대는 대학생들이 떠오릅니다.
소위 "양키 고 홈"을 외치는 그들이.
예전엔 버스가 1시간씩 막히고 최루탄 연기에 재채기와 눈물을 흘리며 억센 부산사투리로 "뭣땜시 데모하노!"를 연발하던 제가, 이제는 조금씩 이해해 가면서 그렇게 크나 봐요.

3월. 3월은 많은 것들이 생각나요.
새학년, 입학, 이별, 그리고 좀 특별할진 몰라도 대학생들의 데모가 말입니다.
어쨌든 무엇이든 생각하며 지내야 할 시기인 것 같아요.
가끔 주위의 사람들을 보면 너무 무표정하고 생각이 없는 듯해 보여요.
무슨 표정이든 무슨 생각이든 하고 사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나는대로 적어봅니다.
외롭다느니, 공허하다느니 하는 감정은 열심히 살고 있지 않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산성비가 내리는 현실 속에서 영화 장면처럼 우산 없이 빗속을 걸어가길 바라는 것처럼, 그건 하나의 사치일 꺼여요.
저도 지금 친구와의 이별로 외로워하는걸 보니 사치스런 앤가봐요.

오빠!
새벽이 오기 전에 가장 춥데요.
우리에겐 그 추위를 추위로 느끼기 전에, 새벽을 열기 위해 우리를 단련시키는 것으로 받아들일 용기가 필요할 3월일 거예요.
오빠가 지금 군대에서 고생하는 지금이 아마도 '새벽'의 시기라고 생각되요.
오빠가 그러셨죠. "피할 수 없거든 즐거라"고.
지금도 열심히 군생활하실 군인아저씨들을 생각하면 전 너무 행복한 애라는 걸 새삼느껴요.

날이 참 따뜻하네요. 언제나 좋은 일만 생기세요. 그럼 이만 펜을 놓을께요.
아디오스!

1990. 3. 6.
∼코흘리개 1학년에서 노티(?)나는 3학년이 된 옥이가.∼


* 설날 고향에 다녀왔습니다. 마을 앞 저수지가 얼었더군요. 참 드문 일이지만, 언 저수지가 우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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