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처럼 독특한 시도다. 유람선의 둥근 창을 통해 바깥을 바라보듯 한 글자롤 통해 한 생각을 담고있다.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쪼개어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심고 물을 주어 알아내는 것. 억지로 끄집어 낸 삶은 고동살이 아닌 스스로 나와 기어가는 달팽이처럼 생생한 상상력이 상큼하다. 저자가 나름대로 정의한 말에 나도 공감하면 띠지 하나 붙이며 책장을 넘겼다. 저자의 사전이 내 사전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곁 : '옆'보다는 조금 더 가까운 '나'와 '옆' 그 사이의 영역이다. 나 자신이 결코 차지할 수 없는 장소이며 나 이외의 사람만이 차지할 수 있는 장소. 동료에게는 옆을 내주고 친구에게는 곁을 내어준다에 가깝다는 말에 그 차이를 가늠해본다.
꼭 : 반드시는 권위적이고, 당연히는 건성이고, 제발은 비굴하고, 부디는 절절하고, 그래서 건조하지만 정갈한 염원을 담백하게 담고 싶을 때 쓰는 말이라고 한다. 꼭!
'담'은 우람할 때는 위화감을 주지만 낮고 아담할 때는 풍경이 되어준다. 높이에 따른 차이가 높이만큼 반대로 다르구나.
'더'는 남에게 강요하면 가혹한 것이고, 나에게 바라면 치열한 것이다.
'득', 이것 없이는 이제 사랑도 하지 않는다. 한편 공감하면서도 공감하기에 슬퍼진다. 정말 그런가? 그러지 않은 사랑을 찾길 바라며. 저자의 해석도 달라지길 바라며. 사랑만은 이것 없이도 하길 바라며.
'삯' 은 값과 비슷하지만 쓰임이 다르다. 버스삯은 버스를 타는 데 드는 비용이고, 버스값은 버스를 사는 데 드는 비용이다. 그러기에 사람은 값으로 매길 수 없고 삯으로는 매길 수 있다고 한다.
시인의 눈과 머리와 마음에 새겨진 한 글자의 결과 겹!
‘감’에서 출발해 ‘힝’까지 310개에 달하는 한 글자로 섬세하게 삶을 가늠한 『한 글자 사전』. 10년 전, 마음을 이루는 낱말 하나하나를 자신만의 시적 언어로 정의한 《마음사전》으로 수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채웠던 김소연 시인이 10년 세월의 연륜을 얹어 이번 책을 펴냈다. 한국어대사전을 내내 책상 옆에 두고 지내며 기역(ㄱ)부터 히읗(ㅎ)까지 국어사전에 실린 순서대로 이어지는 한 글자들을 자신만의 정의로 풀어냈다.
단어 하나, 문장 한 구절, 쉼표 하나도 버릴 것 없이 신중하고 엄정하게 고르고 벼른 글자와 행간들에 자리한 저자만의 날카로운 해석의 맛을 만나볼 수 있다. 사전적 정의라기보다는 해당 글자를 화두로 삼은 산문적 정의를 통해 새로운 시간, 사람, 세상을 마주하고 우리가 놓친 시선과 삶의 태도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어준다.
책머리에
ㄱ 개가 되고 싶어
ㄴ ‘너’의 총합
ㄷ 단 한 순간도
ㄹ 동그라미를 가리키는 말
ㅁ 멀리 있으니까
ㅂ 반만 생각하고 반만 말한다
ㅅ 새해 첫 하루
ㅇ 의외의 곳
ㅈ 잘 가
ㅊ 나의 창문들
ㅋ 코가 시큰하다는 것
ㅌ 밀 때가 아니라 당길 때
ㅍ 팔을 벌리면
ㅎ 회복할 수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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