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소설을 읽었다. 소설은 확실히 현미밥을 먹듯 꼭꼭 씹어읽어야 한다. 그 과정이 그리 싫지 않다. 씹을수록 배어나는 고소한 맛이랄까, 잘 쓴 문장이 전해주는 그윽함에 만족하며 읽은 책이다.
여러 편의 단편소설을 모은 이 책의 첫 작품은 <입동>이다. 뭔지는 모르지만 불안안 상황들이 그려진다. 나중에야 그 상황이 이해가 되는, 카드놀이처럼 숨은 패를 보여주고 있다. 아이를 먼저 보낸 부부, 서로 아이에 대해 말을 하지 못하고, 그러나 이제 마음에서도 아이를 서서히 놓아야 한다. 도배를 한다. 식음을 전폐하다가 밥을 뜨듯 마음을 다잡으려고 도배를 하다가 발견한 아이의 흔적에 아내는 또다시 울음을 감추지 못하고 무너진다. 아이가 제 이름을 쓴, 다 쓰지도 못하고 성하고 이응까지만 쓴 그 흔적에 결국 울음을 터뜨릴수밖에 없었다.
아이를 추억하며 회상하는 표현 중에 가슴으로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 "가끔은 열불이 날 만큼 말을 안 듣고 말썽을 피웠지만 딱 그 또래만큼 그랫던, 그런 건 어디서 배웠는지 제 부모를 안을 때 고사리 같은 손으로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주던, 이제는 다시는 안아볼 수도, 만져볼 수도 없는 아이였다." 이중에 고사리 같은 손으로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주던을 읽을 때 둘째형의 조카가 생각났다. 지난해 조카 하리를 처음 안았을 때 내 등을 토닥이던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감격스럽기도 했었다. 지구 반대편의 있는 조카가 문득 보고싶다.
책의 곳곳에서 발견한 좋은 문장들은 채로 걷어올린다.
'하루 또 하루가 갔다. 담장 밖 개구리 울음은 매미 소리로, 다시 귀뚜라미 소리로 바뀌었다.' 42쪽
'이날 두 사람은 평소보다 달게 잤는데, 저녁상에 오른 나물 덕이었다. 도화는 밤새 내장 안에서 녹색 숯이 오래 타는 기운을 느꼈다. 낮은 조도로 점멸하는 식물에너지가 어두운 몸속을 푸르스름하게 밝히는 동안 영혼도 그쪽으로 팔을 뻗어 불을 쬐는 기분이었다.' 86쪽
'여러모로 올 겨울은 겨울 같지 않았다. 파이프에서 물이 새듯 미래에서 봄이 새고 있었다.' 87쪽
'아버지가 모닥불 쬐듯 티브이 가까이 앉아 전자파를 쐬고 있는 모습이다.' 151쪽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한겨울, 방 한쪽에 잘 개어놓은 이불 같은 사람. 반듯하고 무겁고 답답한 사람.' 155쪽
'수도와 지방의 이음매는 무성의하게 시침질해놓은 옷감처럼 거칠었다.' 159쪽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 작가 김애란이 선보이는 일곱 편의 마스터피스!
김애란이 돌아왔다. 작가생활 15년간 끊임없이 자신을 경신해오며,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곳의 이야기를 우리의 언어로 들었을 때 느끼게 되는 친밀감과 반가움, 그 각별한 체험을 선사해온 저자가 《비행운》 이후 5년 만에 펴내는 신작 소설집 『바깥은 여름』. 제37회 이상문학상 수상작 《침묵의 미래》, 제8회 젊은작가상 수상작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를 포함한 일곱 편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소설집의 문을 여는 작품 《입동》은 사고로 아이를 잃은 젊은 부부의 부서진 일상을 따라가며 독자로 하여금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다가도, 그 고통이 감당 가능한 범위를 넘어섰을 때는 고개 돌려 외면해버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상기하게 만든다. 십대 무리와 노인과의 실랑이 끝에 노인이 죽는 사건이 일어난 후 그 사건의 목격자인 ‘나’의 아들 ‘재이’가 다문화 가정의 아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편견에 둘러싸이고, 그런 편견 사이에서 천진하다고만 생각한 아이에게서 뜻밖의 얼굴을 발견하게 되는 ‘나’의 이야기를 담은 《가리는 손》 등의 작품을 통해 가까이 있던 누군가를 잃거나 어떤 시간을 영영 빼앗기는 등 상실을 맞닥뜨린 인물들, 친숙한 상대에게서 뜻밖의 표정을 읽게 되었을 때의 당혹스러움 같은 것을 마주하게 된다.
언젠가 출연한 한 팟캐스트 방송에서 소재를 이야깃거리로 소비하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이야기했던 저자의 그 조심스러운 태도가 곳곳에 묻어나는 이번 소설집에 수록된 대다수의 작품들은 어느 때보다 안과 밖의 시차가 벌어져있음을 구체적으로 체감할 수밖에 없던 최근 삼사 년간 집중적으로 쓰였는데, 그 혼란의 시기를 비켜가지 않고 천천히 걸어 나가고자 했던 저자의 다짐을 엿볼 수 있다.
입동 _007
노찬성과 에반 _039
건너편 _083
침묵의 미래 _121
풍경의 쓸모 _147
가리는 손 _185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_223
작가의 말 _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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