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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글쓰기/시

by 종이인형 꿈틀이 2004. 8. 24.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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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 편 ***

또 그저 그런 저녁을 마지못해 시켜먹고
빈 그릇을 주섬주섬 챙겨 현관 앞으로 내려놓는다.
‘여기 김치찌개 둘하고 된장찌개 셋이요.’
전화선 너머의 식당아줌마 목소리와
음식을 배달하는 총각의 얼굴이 가족 같다.

불 켜진 사무실 창을 뒤로 하고 주차장에 섰다.
산자락 위에 나무가 있고 하늘 아래 구름이 있다.
구름의 한 구석이 환하더니 이윽고 드러나는 반쪽 달
어둠에 가려진 어둔 내 얼굴을 환히 비추며 환하게 한다.
아, 얼마만인가? 이렇게 차분히 밤하늘을 보던 때가.

달거리에 시달리던 아내는 낮에 일하다가 집에 가서 쉬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혼자서 집 앞 식당에서 갈비탕을 먹고 있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퉁명스런 아내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다시 하늘을 보니 희미한 별이 가물거린다.

내가 밤낮도 모른 채 일하노라면 아내는 망부석처럼 나를 기다리며 밤을 보낸다.
그러다가 잠이 든 아내가 혹 깰까봐 내 집을 밤손님처럼 슬그머니 들어간다.
그리고 고양이처럼 침대에 웅크리며 누우면 자귀나무 잎처럼 내 품에 파고드는 아내
잠 든 아내는 꿈속에서 잠들지 못하고 있다.

-종이인형-


지난해는 축제업무를, 올해는 회계업무를 하느라 거의 매일 야근을 하니
아내에게 남편은 어떤 존재인지.
그저 밤하늘을 볼 수밖에.
모두 퇴근하고 혼자 사무실에 남아 일하는 남편을 아내는 원망 반 안쓰러움 반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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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거리 : 달마다 한번씩 앓는 열병. 월경(月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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