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벌과 파리

글쓰기/시

by 종이인형 꿈틀이 2002. 12. 27. 02:28

본문


 벌과 파리

왠지 모르지만 벌과 파리만 남고 모든 곤충들이 사라지고 말았다.
벌은 꽃무리를 누비며 달콤한 꿀을 모으고,
파리는 동물의 문드러진 사체를 핥고 있다.
벌과 파리의 꼴은 어슷비슷해도 노니는 곳은 다르다.
벌은 제 먹을 꿀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먹을 꿀까지도 알뜰살뜰 모았다.
반면에 파리는 사체의 언저리를 할짝거리며 병균을 옮기며 싸다녔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벌을 기꺼하고 파리를 꺼렸다.

어느 날 먹구름이 잔뜩 끼며 하늘이 깜깜해지더니 하늘에서 한 소리가 들렀다.
이제 곤충은 한 종류만 남길 테니 벌이든 파리든 한 종만 고르라는 것이다.
몇 사람은 파리를 남겨야 한다고 말했으나 뭇 사람은 벌을 남겨야 한다고 우겼다.
그리하여 구름이 걷히니 파리는 사라지고 벌만 남았다.
고약한 냄새는 사라지고 달콤하고 향긋한 세상이 되었다.

이러구러 파리가 사라지고 벌만 남은 세상이 지나는 동안
사방에 개, 쥐, 개구리의 사체가 쌓여가기 시작했다.
파리가 알을 슬지 않으니 구더기가 생기지 않아 사체는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이었다.
동물의 사체가 사방에 쌓여가자 사람들은 벌에게 말했다,
파리처럼 알을 까서 저 사체를 빨리 썩힐 수 없냐고.
그러자 벌은 무척 언짢은 투로 대꾸했다,
자기들은  파리처럼 지저분한 존재가 아니라고.
자기들은 깨끗하기 때문에 그런 천한 일을 할 수 없다고.
그제야 사람들은 알아차렸다.
세상이 향기롭고 말끔할 수 있었던 것은 벌만의 덕은 아니었다는 것을.

-종이인형-

반응형

'글쓰기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편  (0) 2004.08.24
  (0) 2003.02.26
들녘기도  (0) 2002.10.08
하는이  (0) 2002.07.15
하나  (0) 2002.06.25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