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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뎅이 3

글쓰기/소설

by 종이인형 꿈틀이 2001. 11. 9.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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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심목사님은 대학 선배이다. 다른 교회를 다니다가 지금의 교회로 와보니 심목사님은 이 교회에서 청년부를 맡고 있었다. 대학에 다닐 때부터 조금은 특별했던 사람이라 관심도 있었고 잘 따랐던 선배이다. 학교에 다니던 중에 휴학을 하여 성남의 모란시장 옆에 있는 양말공장에서 일을 하기도 하고, 시골에 내려가서 농사를 짓기도 했으며, 서해안의 작은 섬에서 해포 동안 살면서 낮엔 고기잡이배를 타고 밤에 야학을 하기도 했었다. 선배는 몇년 동안 소식이 없는 사이 목회자가 되어있었다.

심목사님을 중심으로 몇몇의 젊은이들이 모여 독서모임인 <토지>를 만들었다. <토지>에서 나눈 얘기는 일반 교회 안에서는 좀처럼 다루지 않는 통일이나, 농촌, 노동자에 대한 얘기들이었다.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학국사'를 읽으며 기독교적 관점에서의 한국사를 보기도 했고,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을 읽으며 하나님의 토지법을 배우기도 했다. 박노해의 '첫마음'이라는 시를 즐겨 읊던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우리가 나눈 얘기 중에는 '통일'이라는 것을 빼놓을 수가 없었다. 21세기를 앞둔 한국인들에게 통일이 최대의 관심사이기도 했고, 기독 젊은이들로써 이 문제를 외면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너무 외면 당하기에 우리는 더욱 붙잡으려고 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막연히 통일이 되길 바랄 뿐이지, 통일을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데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예수님은 우리 나라가 통일되기 바라실까?"
심목사님이 이런 질문을 했을 때, 우리는 열심히 답을 찾았다.

"네, 하나님은 우리 민족이 하나되길 바라시겠죠."
충범이가 답했다. 심목사님은 자리를 고쳐앉으며 얘기를 풀었다.

"맞아. 구약시대의 이스라엘도 우리처럼 나라가 갈라졌을 때가 있었지. 이스라엘은 솔로몬이 죽은 후, 그이 장자 르호보암의 정치적 안목의 부족과 고질적인 지역감정 및 지형적 특수 사정에 의해서 남쪽 유다와 북쪽 이스라엘로 분단되었어. 에스겔 37장 15절에서 17절을 보면, 바벨론의 속국이 된 이스라엘을 회복시킨다고 약속하는데, 회복될 이스라엘은 두 나라가 아니라 한 나라로 결합하시겠다고 하시지. 원래 하나였던 국가가 인간의 죄로 인해 둘로 나눠진 상태는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았지. 우리도 원래 단일민족, 단일국가잖아. 이스라엘이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열강들의 이해관계와 내부적인 역량 부족과 자체 분열로 인해 갈라진 것처럼 우리도 해방공간에서 분단을 맞이하게 된 거지."
우리의 상황과 이스라엘의 상황을 견주어 설명하는 심목사님의 설명을 들으니 새로웠다.

"목사님, 이스라엘처럼 우리도 한 나라도 합쳐질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정말 원하실까요?"
갓 대학을 졸업한 막내둥이 철수가 물었다.

"하나가 둘로 나뉜 이스라엘을 안타깝게 여기시던 하나님은 오늘날 50년이 넘게 둘로 나눠진 상태에서 서로 적대시하는 우리 민족을 보며 어떤 마음을 품고 계실까? 분명히 우리가 하나 되길 바라실 거야.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 원하시며 하나되길 원하시지. 그런 의미에서 우리도 분열이나 나뉨보다는 연합하여 하나가 되어야 하지 않겠니?"

"하지만 서로의 입장이나 생각이 다른데 무조건 합해질 수는 없잖아요."
고개를 끄덕이며 때론 갸우뚱거리며 듣던 대창이가 불쑥 질문을 던졌다.

"그렇지. 그러나 적어도 의도적인 단절, 그러니까 제도적인 단절이나 상호교류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잇는 상태의 지속은 우리가 지향해서는 안 될 거야. 내가 말하는 연합이란, 무조건적인 하나됨, 혹은 완성된 결정체인 하나는 아니야. 서로 뜻을 나누며 자연스럽게 뭉뚱그려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통일을 말할 때는 무엇을 위한 통일이냐 하는 문제와 어떻게 통일로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를 잘 다루어야 해. 통일에 대한 여러 가지 논의가 활발한 것은 다 이런 이유에서이지. 이 시대를 살면서 통일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기독청년이 있다면, 그는 무지하거나 둔감하거나, 아님 세상을 애써 외면하려는 사람일거야."


심목사님이 이렇게 얘기를 하자 민석이가 물었다.
"왜 통일을 해야 하죠? 꼭 해야만 하는 건가요?"
어찌보면 엉뚱한 질문이기도 했다. 우리는 당연하다고 느끼는 통일, 그러나 그 당연히 또한 막연할 수도 있었다. 심목사님의 눈빛은 닭을 발견한 솔개처럼 번뜩였다.

"반드시 통일은 이루어져야 한다는 당위성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잘 알거야. 통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지금은 통일이 가능한 세대가 되었기 때문이야. 그 첫째 이유는, 미·소로 중심으로 한 이념의 세대가 가고 탈냉전의 시대인 지금은 우리의 남북분단을 유지할만한 이념을 상실한 상황이라는 거야. 물론 북한이 바로 자신들의 이념을 포기하진 않겠지만 우리를 둘러싼 열강들이 우리 민족의 분단을 당연시할 근거가 사라졌기 때문에 북한도 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거지. 이는 남북 당사자간의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통일을 위한 합의가 가능한 시대가 왔다는 뜻이지. 둘째는, 주변국과의 통일을 위한 합의가 가능한 시대가 왔다는 거야. 한국의 통일을 반대하지 않는 국제적인 분위기가 중요한데, 우리가 중국과 소련과 국교를 맺음으로써 통일을 방해하는 장애를 제거하였다는 점이야. 셋째는, '세계민족주의의 제2차 자기해방'으로서의 통일 가능성이 생겨난 거야. 1차 해방은 2차세계대전 후에 서방식민지들이 독립한 것을 말하고, 2차 해방은 냉전이 끝나면서 공산권에 묶였던 나라들이 자기 해방을 한 것인데, 월남과 독일, 구소련의 여러 공화국과 유고연방의 민족들을 볼 수 있지. 이러한 세계적 민족주의의 흐름은 한반도의 통일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거야."


이제는 통일 가능성의 시대가 되었다는 말에 우리는 깊이 공감을 하였다. 하지만 통일의 길은 막막하기만 해 보였다. 통일비용이라는 말로 통일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었고,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언젠가는 되겠지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아예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는 북한의 주민들과 이 민족의 분단현실을 두고 기도를 하였다. 민석이는 통성으로 기도를 하며 울먹였다. 그의 간절한 기도가 지금도 귓가에 맴돈다.

다시 도서관 안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기울어진 책에 매달려 잠을 자던 풍뎅이는 책상 위에 벌렁 누워있다. 아마 잠결에 굴러 떨어졌나 본데 그대로 잠을 자고 있다. 살짝 밀어 옆으로 제쳐놓았다.


태종 무열왕에 대한 글을 읽다보니 지금의 대통령이 떠오른다. 김춘추와 김대중은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다. 왕이 되는 과정이나 정책들이 말이다. 엄격한 골품제도의 신라에서는 성골만이 왕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선덕여왕이 자손이 없이 죽자 진골인 김춘추가 진골에서는 처음으로 왕이 되어 무열계의 왕위가 이어졌다. 김춘추는 외교정책에 관심을 많이 가졌는데 고구려에도 갔었고, 당에 가서는 국학에 가서 석존과 강론을 참관하여 깊은 감명을 받았다. 왕이 된 후에 집사부를 설치하여 관제를 정비하고 9서당 군단을 설치하여 국방안보와 국난극복에 노력하였다. 그는 역사에 큰 획을 긋는 인물이 되었고, 신라는 그를 시작으로 하여 중대가 펼쳐졌다.


김대중은 야당 후보로는 처음으로 대통령이 되었고, 김춘추처럼 폭넓은 외교정책을 통해 국가의 발전을 꾀하는 대통령이다. IMF의 어려운 국난을 잘 극복했고, 적극적인 북방외교를 하여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열었고, 그 공로로 노벨평화상까지 받는 영예를 안았다. 무열왕의 뒤를 이은 문무왕 때 삼국의 통일이 이루어졌듯 다음대의 대통령에서는 통일이 이루어지길 기대해본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책임을 떠넘기는 위한 비겁함이다. 통일은 대통령이나 몇몇 잘 난 사람들이 하는 것이 아니고 여러 상황과 사람들이 함께 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잠깐 내 책임은 남에게 떠넘겼다. 나도 민석이처럼 조급해진 것인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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