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가을편지

글쓰기/수필

by 종이인형 꿈틀이 2001. 9. 3. 15:06

본문



성욱아, 선선한 가을이다.
벌써 해포가 지났어. 지난 여름, 한동안 뜸하다가 들은 네 소식이 날 얼마나 어지럽게 하던지.
설마 하며 확인해보니 사실이었어. 멍해지더구나.

도자기 훈련생이 되었다니 다행이다.
흙을 반죽하고 물레를 돌리며 그릇을 만들며 네 삶을 담아보렴.
투박한 질그릇일망정 다 쓸모가 있다는 그 작은 깨우침을 얻길 바란다.
그릇을 빗다가 맘에 들지 않아 뭉개버린 그 흙으로 또다시 그릇을 만드는 토기장이는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 걸까?
자기가 반죽한 그 흙덩이에 대한 '애틋함'과 어떤 모양으로든 쓸모 있는 그릇이 되길 바라는 '기대'가 아닐까?

멍에에 메인 너를 생각하면 찹찹하다.
지금의 멍에는 저번의 멍에보다 갑절로 너를 옭아매는지도 모른다.
10대에 감옥에 들어가 20대를 꼬박이 그곳에서 보내다가 30대가 되어서야 겨우 사회에 나왔는데
다시 교도소에 들어가 40대가 되어서야 담 밖으로 나올 너.
한번도 아니고 두번이나 일을 저지른 너에게 가족조차 등을 돌리고 말았구나.

가족에게 여러번 편지를 보냈는데도 아무런 소식이 없다고 그랬지?
네가 부탁한대로 네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동생이 말하길, 10년 넘게 감옥살이를 하였는데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다시 일을 저지른 네게 가족들은 너무 큰 실망을 하였다고 하더구나.
아직은 가족들이 네게 마음을 닫고 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너를 받아들이리라 믿는다.
그 동안에 겪을 네 마음 고생이 심하겠지만 가족들의 고통도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네가 어머니를 생각하며 흘리는 눈물보다 어머니가 너를 생각하며 흘리시는 눈물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어쩌면 네 몸을 가둔 높은 담보다도 네 맘을 옥죄는 이런 감정들이 너를 더 괴롭게 하는지도 몰라.
나 또한 막막하긴 마찬가지구나.

성욱아!
왜일까? 왜 하나님은 너를 다시 담 안에 가두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것은 토기장이의 애틋함과 기대였다고 여겨진다.
네가 출감하였을 때, 넌 진자리 마른자리 가리지 않고 배우는 자세로 성실하게 살겠다고 다짐했었지.
하지만 현실적인 처짐에 대한 조급함과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네 욕심과는 상관없이 사회는 그저 냉담하기만 했지.
급한 맘에 허둥댈수록 너의 부적응은 심해만 갔다.

이번에 저지는 너의 범죄는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가석방 기간에 벌어진 일이라서 처벌을 가혹하구나.
이번의 사건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난 이렇게 생각한다.
사회에 적응을 못하고 점점 삐뚤어져서 다시 처음의 사건처럼 큰 죄를 짓기 전에 미리 작은 일을 일으켜서 너를 보호하였다고.
그때의 너에게는 사회보다도 오히려 감옥이 더 안전한 곳인지도 모른다.

이번의 감옥살이는 처음과는 달라야 한다.
비록 짧은 경험이었지만 사회를 몸으로 겪었기에 다음에 사회에 나올 때는 훨씬 적응하기가 수월하리라 기대한다.
지금은 감옥에서 지내는 것이 네 삶임을 인정하며 도자기를 빗고 글을 쓰며 잘 지내길 바란다.
토기장이인 하나님은 너를 좀더 바른 그릇으로 만들기 위해 도중에 뭉개버리고 다시 그릇을 만들고 계신다.

소설 쓰기를 막 시작했다고? 나에게 가장 먼저 보여준다니 고맙다.
나도 소설을 쓸려고 한다. 글쓰기를 통해 우리의 인생을 비추어 보자꾸나.
어제 그 동안 준비하던 시험을 보았다. 홀가분하구나.
며칠 여행을 다녀온 후 네게 면회를 가마.
건강하자. 건강의 우리의 의무이니.

2001. 9. 4.
-종이인형-


반응형

'글쓰기 >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월수박  (0) 2004.06.02
겨울비  (0) 2002.12.23
  (0) 2001.05.18
사랑부 선생님께  (0) 2001.03.28
글벗 (7)  (0) 2001.02.07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