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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캄의 겨울나기

글쓰기/시

by 종이인형 꿈틀이 2000. 3. 3.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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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합니다. 살림꾼 박종인입니다.

엄마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떨어지지 않으려고 생떼를 쓰는 아이같은 겨울은 이미 하늘을 짙게 물들이고 있는 봄기운에 밀려 조만간 사라질 겁니다.

하지만 꽃샘추위, 잎샘추위라는 복병을 조심하세요.
2월의 끄트머리인 이즈음에 강원도에는 눈이 푸지게 내렸습니다.



=== 해캄의 겨울나기 ===


1. 겨울,
올 겨울은 매우 춥고, 바람은 맵고, 눈은 푸지고, 길기만 하구나.


2. 겨울나기,
목백일홍은 두툼한 지푸라기 옷을 입고, 땅두릅은 줄기를 내버리고 뿌리만 흙속에 숨었다. 까치는 흰 깃털을 보푸라기처럼 부풀리고, 연인은 서로 팔짱을 끼었다.


3. 해캄의 겨울나기
도서관 뒤에는 아름드리 고욤나무 한 그루가 고즈넉이 서있고, 그 아래에는 사철 마르지 않는 샘물이 땅에 묻힌 관을 타고 또르르 흐른다. 물은 옹달 돌절구에 떨어지고, 나울거리는 겉물은 돌절구 부리를 타고 넘어 이슬방울을 일으키며 도랑으로 흘러든다.

돌절구 가장자리에는 헝클어진 머리칼 같은 해캄이 떼지어 떠있다. 그 해캄은 이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서로를 꼭 껴안고 있다. 그 보듬음은 둘이 단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둘이 완전한 하나가 됨이다.


4. 해캄의 살아가기와 사랑하기
해캄은 가지가 없는 긴 실 모양의 녹조류이다. 세포는 실처럼 나란히 연결되어 있는데, 세포막 바깥층은 펙틴질로 싸여 있어 미끈거린다.

봄 여름에 주로 몸의 일부가 분리되어 새로운 개체가 생기는 무성생식(無性生殖)으로 번식을 하는데, 겨울에는 기다란 두 해캄이 나란히 붙어 접합관이란 것을 만들어 한쪽의 핵이 다른 쪽으로 이동을 하여 둘이 하나가 되어 겨울을 난다.

합쳐진 세포인 접합자는 두꺼운 세포벽으로 둘러싸여 영양적 사상체가 죽는 겨울 동안에도 살아 남는데, 나란히 대하는 세포끼리 핵물질을 주고받으며 봄에 새로운 개체를 만들어 내는 유성생식(有性生殖)을 한다.

해캄은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둘이 서로 껴안아 하나가 되어 추위를 이긴다. 또한 서로의 가장 소중한 부분인 핵을 합하여 하나가 된다. 이는 다음에 둘, 넷, 여덟이 되기위한 사귐이기도 하다.

두 해캄이 서로 보듬어 하나가 되는 것은 살아가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사랑의 수단이기도 하다.

삶은 곧 사랑이다. 삶이 계속 이어지기 위해서는 사랑이 있어야만 한다. 해캄은 그렇게 겨울나기를 한다.


5. 살아가기 사랑하기

겨울이 간다.
그리고 봄이 온다.
마음 속 빈곳은 휑한데
채우지 못함은 왜일까?

해캄은 제 속을 비우고 상대를 채운다.
그리고 함께 겨울을 이기고 봄은 맞는다.
그러나 난 마음을 주지 못 해.
상대가 미덥지 못한 걸까
내게 미더움이 없는 걸까
아마,
비움은 곧 채움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함 일게다.

해캄의 죽살이는 다살이.
사람의 삶 또한 사랑.
삶과 죽음의 틈바구니에서
움츠려 살기엔 허락된 생이 너무 짧아.
스스럼없는 사귐이 차라리 삶답다.

다운 삶을 답게 살자.
그게 사람답지 않은가!

-종이인형-


=================================================
* 미덥다 : 믿음성이 있다.
* 보푸라기 : 보풀의 낱개.
* 보풀 : 종이나 헝겊 등의 거죽에서 가늘게 부풀어 일어나는 털.
* 스스럼없다 : 조심스러워하거나 수줍어하는 기색이 없다.
* 옹달 : '작고 오목한'의 뜻. 옹달샘. 옹달시루.
* 죽살이 : 죽음과 삶. 죽고 사는 일을 다투는 고생. 사활(死活).
* 푸지다 : 매우 많아서 넉넉하다.
* 휑하다 : 속이 비고 넓기만 하여 몹시 허전하다. 막힐 것이 없이 다 잘 알아 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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