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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합보다 우아한 고추꽃

농사일/농업&농촌

by 종이인형 꿈틀이 2005. 11. 1.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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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기사는 KTF 굿타임진 기사입니다. 사진과 디자인이 멋지게 표현되었는데 연결된 사이트가 폐쇄되어 사진과 디자인이 배꼽만 보이네요. 비슷한 내용의 오마이뉴스 기사로 변경하여 올립니다.  -종이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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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합보다 우아한 고추꽃
[사진] 작물의 꽃과 씨앗

 

▲ 부모님이 가꾼 조밭
ⓒ 박종인

원래의 식물은 균형미가 있다. 어느 특정 부위가 유별나게 크지 않고 주변의 환경에 적응하기 적합한 모양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작물은 인간의 기준에 의해 식물체의 특정 부분이 도드라지게 발달한다.

뿌리를 이용하는 당근이나 무 같은 작물은 뿌리가 유난히 발달했고, 줄기를 이용하는 배추나 시금치는 꽃과 열매가 맺히지 않도록 재배 환경을 조절한다. 물론 종자를 얻기 위해서 따로 씨를 받는 것은 제외하고 말이다. 그래서 우리가 대하는 작물은 전체보다는 일부만 아는 경우가 많다.

밭에서 작물을 직접 기르는 농부들은 무, 감자, 파 등의 꽃과 배추, 가지, 고추의 뿌리를 직접 봐서 알겠지만, 소비자들은 식탁에 올라오는 무의 뿌리, 파의 잎줄기, 고추의 열매 등만 알 것이다.

작물에서도,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는 모양 외의 모습들을 살피고자 한다. 우리의 몸을 살리는 먹을거리는 정말로 중요하다. 먹을거리를 좀 더 자세히 알면 먹을거리의 소중함과 가치를 이해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이다. 흔히 보는 먹을거리지만 그 먹을거리의 흔히 볼 수 없는 다른 부분도 함께 살펴보자.

호박과 같은 박과의 식물은 암꽃과 수꽃이 따로 핀다. 즉 꽃마다 호박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암꽃에서만 호박이 열린다는 것이다. 꽃 모양은 암수가 비슷하지만 그 안을 살펴보면 차이가 있다. 암꽃은 세 갈래로 갈라진 비교적 짧은 암술머리가 있고 수술은 꽃가루가 묻어 있는 기다란 수술이 있다.

▲ 호박꽃
ⓒ 박종인

더 확실히 구분하는 방법은 암꽃 아래에는 꽃이 필 때 이미 작은 열매가 열리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벌들이 수꽃과 암꽃을 오가면 꿀을 따다 보면 자연스레 수꽃의 꽃가루가 암꽃의 암술머리에 묻혀 수분이 이뤄지게 된다.

만일 암꽃이 수분되지 않으면 열매는 더 이상 자라지 못하고 그냥 떨어지고 만다. 박과인 수박, 호박, 참외 등은 수분이 되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오이는 예외로 수분이 되지 않아도 열매가 자라므로 일부러 수분을 억제하기도 한다. 씨 없는 오이는 먹기 더 편하기 때문이다.

▲ 오이꽃
ⓒ 박종인

고추는 열매를 맺기 위해 꽃을 피운다. 하지만 재배하는 화훼처럼 꽃 자체가 목적이 아니기에 꽃이 크거나 화려하지 않아서 잘 모르고 지나치기 쉽다. 식탁에 오르는 고추는 꽃이 진 후에 성장한 것들이다. 고추꽃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백합 못지 않게 우아함을 느낄 수 있다. 장미나 백합 같은 재배 화훼는 꼿꼿이 선 채로 굽어봐도 잘 보이지만 고추꽃을 제대로 보려면 무릎을 꿇고 밑에서 올려다 봐야 한다.

▲ 고추꽃
ⓒ 박종인

고추는 열대성 식물이므로 우리나라에서도 겨울이 없다면 계속 자랄 것이다. 고추꽃과 막 자라는 새부리 만한 고추열매가 얼마나 앙증스러운지 모른다.

가지의 보랏빛 꽃과 보랏빛 열매를 살펴보자. 가지는 잎과 줄기, 꽃과 열매가 모두 보라색이다. 보라는 멋쟁이만이 소화할 수 있는 색인데, 가지는 작물의 멋쟁이인가 보다.

▲ 가지꽃
ⓒ 박종인

지금 우리 주식은 쌀이지만 쌀 이전에는 피, 기장, 수수, 조 등이었다. 이들은 보리에 밀리고 쌀에 밀려 사라질 듯하더니 이제 별미와 건강식으로 다시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논의 대표적인 잡초인 '피'도 예전에는 사람들이 재배하던 작물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유익함과 무익함도 상대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수천 년이 지나면 지금의 잡초인 바랭이가 작물이 되고 벼가 잡초가 될지도 모른다. 생물의 다양성과 유전 자원을 확보하는 것은 지금보다는 내일의 필요를 위한 투자인 것이다. 기장, 수수, 조, 율무 등은 우리 조상의 주요한 먹거리였다.

▲ 율무
ⓒ 박종인

우리가 먹는 감자는 그 줄기가 비대해진 것이고 고구마는 뿌리가 비대해진 것이다. 즉 우리가 먹는 부위가 고구마는 뿌리지만 감자는 줄기다. 감자는 비교적 서늘한 곳에서 자라며 보관 온도도 냉장고 안의 온도인 섭씨 1~4도 정도지만 고구마는 12~15도 전후이므로 냉장고에 보관하면 안 된다.

감자의 꽃은 보다시피 가지꽃과 비슷하다. 같은 가지과의 친척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자연적인 환경에서는 고구마의 꽃은 볼 수 없다. 하지만 인위적인 방법을 동원하면 고구마의 꽃도 볼 수 있다. 나팔꽃을 대목 삼아 접목하여 단일처리를 하면 꽃 피우기가 가능하다. 고구마는 메꽃과이기에 꽃의 모양도 나팔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배추, 유채, 무 등을 십자화과라고 한다. 꽃잎이 네 장이며 십자(+) 모양이기 때문이다. 십자화과 채소는 대개 잎을 이용하기 때문에 꽃을 피우지 않는다. 꽃이 피면 양분이 꽃을 피우고 씨앗을 여물게 하는데 쓰이므로 뿌리에는 바람이 들고 잎사귀가 노랗게 시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씨를 받기 위해 일부러 키우는 무와 배추를 '장다리'라고 부른다. 장다리무의 연보라빛 무꽃은 참 은은하다.

▲ 장다리무의 꽃(무꽃)
ⓒ 박종인

예전엔 시골집 울타리에 피마자 기름을 얻기 위해 아주까리를 서너 그루씩 심었다. 열매의 모양이 새알처럼 알록달록해서 구슬처럼 가지고 놀았다.

▲ 아주까리 암꽃
ⓒ 박종인

솜을 만드는 목화. 지금은 사라져가는 작물 중 하나지만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몰래 들여와 우리 조상의 옷감이 되어준 아주 고마운 작물이다. 내 어릴 적에 장미꽃은 보지 못해 알지 못했지만 목화꽃은 잘 알았다. 어린시절 나는 목화꽃이 제일 예쁜 꽃이라고 여겼다. 어린 열매는 따먹곤 했는데 그 달콤한 맛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입가에선 '목화밭'이라는 노래가 절로 흥얼거려진다.

▲ 목화의 꽃
ⓒ 박종인

작물도 꽃이 있을까 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작물의 꽃은 작아서 눈에 확 띄진 않지만 나름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우리가 매일 먹는 먹을거리는 공장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이런 작물에서 나온 것들이다.

작물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기 위해 작은 디카를 들고 일 년 동안 논두렁밭 두렁을 거닐었다. 도시의 사람들이 비록 농촌에 와서 고추나 가지의 꽃을 직접 보지는 못하지만 사진으로나마 고추꽃의 아름다움을 공감한다면 나의 발품이 헛됨은 아닐 것이다. 우리 모두 작물을 통해 잠깐이나마 농업을 생각하는 시간이었길 바라는 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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