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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수필

by 종이인형 꿈틀이 2000. 12. 4.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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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쌀쌀맞은 아침이죠?
볼에 닿는 공기는 유리에 낀 성에처럼 따끔거리게 하는군요.
12월의, 한 해의 마지막 달 첫 주를 시작합니다.
한 해를 차분히 갈무리하시길 바랍니다.

어제 '느티나무의 겨울나기'행사를 잘 마쳤습니다.
먼걸음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발길을 주신 분들께 고마움을 전하며
아울러 마음으로나마 함께 하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행사에 대한 대략의 후기는 아래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http://column.daum.net/Column-bin/Bbs.cgi/sw23510/qry/qqatt/^

-종이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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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이야기.

제가 아무리 시계를 멈추게 해도 기어코 89년은 가고 만다는 걸 서럽도록 느끼며 펜을 듭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에는 오빠나 저나 관객석으로 내려오는 패자보다는 무대 위로 올라가는 승자가 되도록 노력해요.

세상에∼, 방학이 언제 오나 하고 교실 달력에 가위표를 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개학이 얼마만큼 남았나 가위표를 치는 제 모습에 웃음이 납니다.

요번 겨울방학엔 학원에 열심히 다니고, 하루에 한번씩 미팅 건수 만들고, 취미생활 살리겠다던 계획은 작심삼일이 되었고, 오전 10시에 일어나 친구들과 잡담하니 오늘도 하루해가 저무네요.

항상 별다른 사건 없이 하루를 보냈는데, 오늘은 좀 특별한 사건이 생겼어요.
세상에! 오늘도 친구들이랑 놀다가 갑자기 '동양화 게임' 얘기가 나왔어요.
드디어 애들이 옷소매를 걷어붙이고 화투판을 벌이기 시작했는데, 한마디로 가정교육이 의심스러울 지경이에요.

제 수준은 민화투 정도인데 친구들은 고스톱으로 나가더군요.
정말 세대차이를 느끼다 못해 혐오감마저 불러일으키는 거 있죠.
이게 다 어른들 책임이라고 매도하기엔 너무나 안타까워요.
부모님, 그리고 친구들이여. 이젠 정말 Go - Stop!

어쨌거나 고스톱 정도는 그나마 건전해요.
열흘 전 소집일에 학교에 갔더니 반 친구 한 명이 가출을 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더군요.
유달리 조숙했던 ○○이라는 친군데, 인간적으로 참 재미있는 아이였는데 가출을 했다고 하니 믿어지지가 않았죠.
방학이 다 가기 전에 ○○이가 돌아왔으면 좋겠어요.

세상은 어째서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지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이가 그렇고, 실연당했다고 두 끼 굶고 세 끼 얻어먹으러 오는 진희가 그렇고, 왜 열여덟에 결혼하면 안 되냐고 투덜대는 현이가 그렇죠.
제가 생각해도 한심한 친구들이죠. 한심한 세상이고요.

그렇지만 더욱 답답한 건 대화가 안 된다는 거예요.
제가 좀 유식하게 '사람은 왜 살까?' 하고 물으면,
덕미는 '혹시나 하고 살지.'
현숙이는 '우정은 높게, 사랑은 낮게, 잔은 평등하게(?)'
종희는 '왜, 인생관이 바꿨냐?'
우문현답이 아닌 우문우답이지 뭐예요.
마치 생전 별 한번 안 본 사람이 TV 안테나 고치러 옥상에 올라갔다가 그때 처음 별을 본 사람의 기분이랄까요.
늘 생각하지만 모순의 극치를 이룬 것 같은 세상이 정말이지 눈 시리도록 아름다워 졌으면 정말 좋겠어요.

이젠 밤이 깊었네요. 본의 아니게 작년에는 사랑하는 이들에게 미안한 일들을 많이 했어요. 오빠는 어떠셨는지요?
새해에는 사랑하는 이들에게 좋은 일만 생겼으면 좋겠어요.
그럼 이만 펜을 놓을게요. 아름다운 일들만 생기시길….

1990. 1. 19.
부산에서 꼬마.



* 이 글은 군대시절에 편지를 주고받던 글벗의 편지 중에 뽑은 겁니다. 벌써 10년이 더 지난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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