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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수필

by 종이인형 꿈틀이 2000. 10. 14.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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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종인오빠

잿빛 하늘은 잔뜩 눈물을 머금고, 눈물은 마침내 바람을 타고 아스팔트 속으로 고여 드는 칠월.
기말고사가 끝나고 책상 위엔 풀이가 끝난 시험지가 하나둘 쌓여가기 시작합니다.
언제부턴가 만날 수가 없게 된 세바스찬 바흐나 좀 허풍이 심한 랭보나 키르케고르의 찌푸린 얼굴.
(Invitation au Voyage ; 여행에의 초대)

샤를 보들레르 시를 외던 선생님이, 그 목소리로 학생에 대해 불평의 잔소리들을 늘어놓고 있던 고달픈 칠월.

오빠.
사람들은 흔히 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합니다.
단지 학생의 전부이겠죠.
그러나 뭔가 반항기 어린 소녀마냥 모든 게 짜증납니다.
'내 사랑 돈키호테'의 주제가를 멋지게 부르는 내 친구가
불만에 가득 찬 얼굴로 영어단어를 암기하고 있을 때면 더욱 우울합니다.
암기하는 능력, 기억력을 은행에 맡겨둔 채 예금액마냥 생각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기억의 통장에 찍혀진 낡은 문자들은 영원히 현찰로 바꾸지는 못할 테니까요.

걱정이 되네요.
칠월이 시작됐는데 보다 값진 그 무엇인가가 분명히 있을 텐데, 나의 눈엔 그것이 아직도 보이지 않네요.
꿈에 본 나는 지금도 아직 어느 교정의 나무 아래를 걷고 있었고, 계단을 오르고 있었고,
랭보를 읽고 있었고, 바흐의 음악을 듣고 있었는데, 대체 누가 나의 손에 교과서와 시험지를 들게 한 걸까요?
?!☆∂!¤??!&$@?!!%?

지난달 남겨 두고 온 햇빛과 함께
여름의 시작의 햇빛과 함께
생각하시는 달이 되시기 바랍니다.

from. 영우인이 되고픈 옥.
89.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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