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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엔 보물이 가득하다

농사일/농업&농촌

by 종이인형 꿈틀이 2005. 7. 5.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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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봉호수와 설봉산(경기 이천)
ⓒ 박종인
학창시절에 봄과 가을이면 소풍을 갔었다. 소풍 가는 곳은 학년별로 달랐는데 저학년은 학교에서 가까운 야산으로, 고학년은 좀 멀리 떨어진 산으로 갔다. 길게 줄을 지어 소풍을 나서는 학생들의 행렬이 새끼줄처럼 길게 이어진 풍경은 참 흐뭇했다. 소풍날이면 꼬깃꼬깃한 천 원짜리 지폐 한 장, 사이다와 삶은 달걀, 그리고 도시락이 있어 든든했다. 재잘거리며 가는 곳은 별 볼일 없는 이웃 동네의 산이지만 수업을 빼먹고 친구들과 산에 간다는 것이 마냥 신났던 하루였다.

소풍 장소는 소나무가 듬성듬성 있어 옹기종기 모여 앉을 수 있는 곳이었다. 널찍한 바위는 간이 무대가 되었고, 끼 있는 친구들이 노래와 춤을 자랑하며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즐거운 시간은 점심시간. 저마다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펼쳐놓고 함께 먹는 점심은 그야말로 꿀맛이다. 학생들을 따라온 장사꾼들은 풍선, 번데기, 음료수 등을 팔며 한몫 단단히 챙기는 날이기도 하다.

점심을 마치면 '보물찾기'가 이어진다. 오전에 학생들이 한 곳에 모여서 장기자랑을 하는 동안 몇몇 선생은 보물이 적힌 종이쪽지를 숲에 감추었던 것이다. 보물이라고 해야 고작 필통, 연필, 가방, 운동화 등이지만 학생들은 나무와 바위 틈새를 이 잡듯이 뒤지면 보물찾기를 즐겼다.

▲ 원적산 산마루(경기 이천)
ⓒ 박종인
어른이 된 지금도 산에 가면 숲에서 보물찾기를 하던 학창시절이 떠오르곤 한다. 나도 모르게 괜히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보물을 찾는 시늉을 한다. 그러다 보면 보물이 눈에 띄기도 한다. 학창시절의 종이쪽지에 적힌 보물은 아니지만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들이다. 그것은 바로 바위, 나무, 꽃, 이끼, 새, 곤충 등이다.

이처럼 산에는 보물이 널려 있다. 생명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함께 어울려서 커다란 생명의 바탕을 이루는 산은 자신을 사랑하는 이에게 보물로 다가온다. 돼지에겐 진주도 돌이지만 한의사에겐 개똥도 약이 된다. 산의 가치를 알고 작은 것도 크게 보는 눈을 가지고 사시사철 보물이 가득한 산에 올라보자. 그 산이 바로 보물섬, 아니 보물산이 될 것이다.

▲ 노성산에서 내려다본 풍경(경기 이천)
ⓒ 박종인
산의 보물들을 만나보자. 보물 1호는 바로 산 자체이다. 멀리서 바라보는 산은 생명체이다. 하늘을 머리에 이고 호수를 품에 안고 있는 산은 생명의 어머니이다. 가까이 다가가서 산 속에 들어가 한발씩 오르며 정상에 다다르면 산은 우리에게 하늘과 악수하게 하고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발 아래로 보여준다. 산 위에서 마주보는 하늘은 얼마나 신선하며, 산 위에서 내려보는 세상은 얼마나 만만한가? 그래서 산사람은 마음이 넓어지나 보다.

보물 2호는 바위들이다. 산은 본디 바위였으리라. 바위가 부서져 돌이 되고 모래가 되고 흙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씨앗이 날아와서 싹 튼 후 풀과 나무로 자랐으며, 곤충과 짐승이 찾아와 어울림 좋은 숲을 만들었을 것이다. 아직 커다란 바위의 모습으로 남아 산을 지키는 이들은 생김새 등에 따라 저마다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천시 설성면의 노성산에는 말바위가 있다. 말의 머리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인데 내가 보기엔 말보다는 개를 더 닮은 듯하다. 하여튼 그 생김새가 정말 말(개)의 머리를 닮았다. 산마다 이런 바위들이 꼿꼿이 산을 지키며 등산객을 맞이하고 있다. 산을 오르는 이들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쌓은 돌탑은 또 하나의 작은 산이 되어 오롯이 자리하고 있다.

▲ 말머리 바위(노성산)
ⓒ 박종인
보물 3호는 호젓한 오솔길이다. 처음엔 길이 아니었지만 사람들이 다니다 보니 길이 되어버렸다. 매연을 뿜으며 요란스레 다니는 자동차의 차로가 아닌 그저 한 사람이 겨우 지나칠 정도의 좁은 오솔길이기에 적적하기조차 하다. 그러기에 길가의 나무와 꽃과 더 친해질 수 있다.

우리의 일상은 쫓기듯 두리번거리며 마음이 안절부절 못한 경우가 많다. 우리를 가만 두지 않는 일상의 주변 환경 탓에 행동만 앞서고 생각이 없이 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정신을 빼앗기지 않고 사색하기 좋은 것은 한적한 산길이다. 어쩌다 마주치는 것은 두더지가 지나간 흔적, 사람의 길과 두더지의 굴이 엇갈리는 곳이지만 서로 마주칠 일이 거의 없는 한가한 산길을 걷노라면 막혔던 내 가슴 속의 생각들이 비로소 샘처럼 솟는다.

▲ 숲속의 오솔길
ⓒ 박종인
김광석의 <나무> 노래
노랫말은 김윤성 님의 시

* 나무 *

한결같은 빗속에 서서
젖는 나무를 보며
황금색 햇빛과 개인 하늘을
나는 잊었다.

누가 나를 찾지 않는다.
또 기다리지도 않는다.

한결같은 망각(忘却) 속에
나는 구태여 움직이지 않아도 좋다.
나는 소리쳐 부르지 않아도 좋다.
시작의 끝도 없는 나의 침묵은
아무도 건드리지 못한다.

무서운 것이 내게는 없다.
누구에게 감사받을 생각도 없이
나는 나에게 황홀을 느낄 뿐이다.
나는 하늘을 찌를 때까지
보물 4호는 꽃과 나무들이다. 산에는 갖은 나무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자란다. 각각 일정한 자리를 차지하며 나름대로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새순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결국은 죽는 나무의 죽살이, 삶과 죽음은 빛과 그림자처럼 함께 존재한다. 삶이 곧 죽음이요 죽음이 곧 삶인 것이다.

생명을 다하고 선 채 죽은 소나무를 보자. 이 소나무는 살았었다. 그러다가 죽었다. 나무가 죽으니 버섯이 그 나무에 살았다. 버섯이 죽으면 나무는 분해되어 다른 나무를 살린다. 나무가 죽으니 벌레가 그 안에 살았다. 벌레가 나무에 사니 딱따구리가 와서 벌레를 잡아먹었다.

산에는 얼마나 많은 나무가 자라는지 다 알 수 없지만 오가며 아는 나무를 보면 속으로 이름을 부르곤 한다. 소나무, 잣나무, 신갈나무, 오리나무, 산초, 생강나무, 노간주, 산벚나무, 붉나무 등은 친한 친구처럼 그 모습이 눈에 익었다.

7월의 반가운 나무는 자귀나무이다. 7월에 꽃을 피우는 자귀나무는 널찍한 꽃잎 대신 명주실처럼 가느다란 꽃을 우산살처럼 펼치며 피운다. 아래는 하얗고 위는 분홍이며 끝에는 노란 꽃밥이 있는 큰 붓을 닮은 자귀나무의 꽃. 야산에 피는 이 꽃이 너무 우아하여 정원에 옮겨심기도 한다.

'자귀'라는 이름은 나뭇잎이 밤이면 오므라들어 마치 자는 듯한 느낌을 주어서, 잠자는데 귀신 같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소찰밥나무' 라고도 하는데 이는 소가 자귀꽃을 잘 먹기 때문이다. 잠잘 때에 이 나무의 가지를 잠자리 밑에 넣어두면 부부의 금실이 좋아진다고 하여 중국에서는 합환수(合歡樹) 또는 야합수(夜合樹)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우리나라 말로는 '사랑나무'라고도 한다.

▲ 자귀나무 꽃
ⓒ 박종인
보물 5호는 산짐승, 산새, 양서류, 파충류, 곤충이다. 산에는 많은 동물들이 산다. 동물들은 대개 식물에게 해를 주지만 이들도 엄연한 숲의 식구들이다. 졸참나무는 다람쥐가 따먹는 도토리보다 훨씬 많은 도토리를 만들어내며, 오리나무는 벌레가 갉아먹는 것보다 훨씬 많은 잎을 낸다.

또한 연약한 식물이라고 해서 동물들에게 호락호락 당하지만은 않는다. 소극적 방어로는 잎의 표면을 억센 셀룰로오스나 리그닌 조직으로 만들어 곤충들의 입맛을 떨어뜨리거나 가시를 만들어 접근을 어렵게 한다. 적극적인 방어로는 독성을 분비하여 동물을 죽이기도 하는데 박주가리, 애기똥풀, 미치광이풀, 독말풀, 양귀비, 둥글레 등은 작은 곤충들에게 치명적인 독을 분비한다.

ⓒ 박종인

▲ 개미집
ⓒ 박종인

▲ 숲속의 개구리
ⓒ 박종인
산길을 걷다 보면 집을 짓는 개미들을 간혹 만나곤 한다. 수많은 개미들이 모래 하나씩을 계속 파내며 집을 짓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그 부지런에 감탄하기도 한다. 먹이를 잡기 위해 거미줄을 치는 거미를 만나는 것도 참 반가운 일이다. 운이 좋으면 양서류와 파충류도 만날 수 있다.

경기도 이천, 광주, 여주에 걸쳐 자리한 원적산에서 도롱뇽의 알과 아무르장지뱀을 만날 수 있었다. 이천의 설봉산에서는 새끼손가락만한 개구리도 만났다. 바란다면 예전처럼 산에서 반달곰, 고라니, 노루도 만나고 싶지만 그들이 살기엔 지금의 산은 인간의 간섭이 너무 깊이 스며 있다.

그 외에도 산에는 보물이 많이 있다. 돌돌돌 흐르는 개울, 촉촉한 버섯과 자그마한 이끼 등. 우리가 그 가치를 인정하고 귀하게 여기면 흙 한 톨, 나뭇잎 한 장도 보물인 것이다. 산에 갈 때 숲 곳곳에 자리한 보물들은 마음 속에 담아오길 바라는 맘이다.

▲ 이끼
ⓒ 박종인

산에 관한 토박이말

 가풀막 : 가파른 땅의 바닥
 고개마루 : 고개의 등성이가 되는 곳
 나뭇길 : 나무꾼들이 나무하러 다니면서 생긴 좁은 길
 도랫굽이 : 산이나 바위를 안고 돌아가도록 되어 있는 굽이
 자드락 : 낮은 산의 밋밋하게 비탈진 기슭
 기스락 : 비탈진 곳의 맨 아래 부분(기슭) 가장자리
 더기 : 꽤 높은 곳에 있는 벌판. 고원
 멧부리 : 산의 가장 높은 꼭대기
 모롱이 : 산모퉁이의 휘어 둘린 곳
 버덩 : 좀 높고 평평하며 나무는 없이 잡풀만 난 거친 들
 산허리 : 산 둘레의 중턱
 서깔 : 나무를 계획적으로 잘 심은 땅. 조림지
 숲정이 : 마을 가까이에 있는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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