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축제의 계절.
이곳 법화산 자락의 경찰대학은 청람축제를 벌이고 있습니다.
학교 진입로의 중앙에 줄지어 서있는 느티나무에 얼핏설핏 알록달록 물이 들 낌새가 있지만 아직은 좀 더 기다려야 고운 단풍을 만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느티나무의 단풍은 무척이나 곱고 우아합니다.
-종이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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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흙이 된 지렁이 10-3 *
꿈틀이는 다운이와 함께 다니며 이런 삶의 모양들의 둘러보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흙이다."
꿈틀이도 당연히 동의하리라고 여기며 다운이가 말했다. 그러나 꿈틀이는 자신의 특별한 재주만 뽐내다가 그 재주 때문에 오히려 목숨을 잃어버린 가엾은 쥐며느리를 떠올렸다.
"다운아, 물론 흙이 중요하지만 '가장'이란 말은 조금 억지인 것 같구나. 왜냐면 흙 말고도 중요한 것이 많이 있잖아. 우린 그런 다양성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 같아."
"꿈틀아. 네가 왜 그렇게 말하는지 알겠다. 넌 경험을 통해 다양성을 보았을 것이다."
"그래, 난 여행을 통해 나와는 다른 부분도 받아들이는 관용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배웠어. 이것이 바로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구나."
"맞아, 그러나 우리가 다양성을 추구하는 이유는 자신의 고유성을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함이야."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내 개성을 살리는 길이라고?"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의 특이성만 고집한다면 그것은 아집이고 교만이지만,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맘의 자세가 되었으면 이제는 자신의 특이성을 살리는 것이 겸손이고 자기다운 것이다. 자신의 독특한 기질을 발전시키지 않는 것은 게으름이고 겁쟁이이다."
"난 게으름뱅이도 싫고 겁쟁이도 싫어. 난 보다 가치 있게 살고싶어."
"꿈틀아, 나는 자신의 특이성만 고집하는 것은 교만이라고 말했어. 난 다시 말한다. 자신만의 독특한 특성을 살리지 못하고 외면하는 것은 더 큰 교만이다."
"........"
"나는 흙을 먹고 흙에서 생활하므로 흙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렁이에겐 흙이 가장 중요하고, 새에겐 공기가 가장 중요하고, 물고기에겐 물이 가장 중요해. 꿈틀아, 흙이 가장 중요하다는 내 말은, 다른 것이 가치 없다는 뜻이라기보다는 내가 가진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니 오해가 없었으면 해."
"다운아, 그건 일종의 자긍심이니?"
"긍정적인 자존심이지.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지 않고는 그 어떤 것도 사랑할 수 없는 것 같아. 내가 삶의 터전인 흙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다른 것을 가치 있게 여길 수 있는 발돋움이야."
다운이는 꿈틀이를 데리고 다운터의 귀퉁이로 갔다. 다운이는 자신이 꿈틀이에게 할 말을 다했다고 생각했기에 이제는 꿈틀이가 자기의 길을 계속 가도록 떠나 보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넌 흙이 될 거야. 누가 단단한 저 바위를 보고 흙이라고 여기겠니? 그러나 지금의 보드라운 흙은 바위가 부서져서 생긴 것임을 잊지 마라.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냐. 불확정성이다. 네가 흙에 대해서 알려고 하면 그 순간 예전의 모습이 조금은 변해. 다시 그 변한 모습을 알고자 좇아가면 또다시 조금 변한다. 네가 알 수 있는 것은 완전한 것이 아니라는 것만 알게된다. 그러면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
"삶은 꿈이야. 꿈을 좇아 꿈틀대는 몸짓이지."
"생명체란 꿈을 틀 이, 즉 '꿈틀이'구나."
"이곳에는 많은 꿈틀이들이 있어. 각자의 모양으로 꿈을 꾼다."
"다운아, 이젠 내가 떠날 때가 된 것 같구나."
"맞아. 아쉽지만 넌 떠나야 하고, 난 남아야 한다."
"잘 있어, 다운아."
"잘 가, 꿈틀아."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