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살림꾼 박종인입니다.
오늘부터 고향을 향하는 발길이 이어지겠군요.
즐거운 추석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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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는데 길가의 잣나무에서 잣방울(?)이 툭 떨어져 데굴데굴 굴러 내 발치에 머물더군요.
올려다보니 깜찍하고 앙증맞은 청설모가 방금 떨어뜨린 잣송이를 찾으려 기어서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감히 나 있는 곳까지는 오지 못하고 잣나무 밑둥에서 두리번 거리더니 다시 나무를 올랐습니다.
잣나무 끄트머리에는 대여섯 송이의 잣방울이 달려 있는데, 까만 청설모는 이빨로 갂아서 떨어뜨린 후 내려와 두 앞발로 잡고 이빨로 잣을 까먹습니다.
경찰대학의 골프장에는 수천 그루의 잣나무가 있는데, 수백마리의 청설모가 대부분 따먹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골칫덩어리 입니다. 이젠 사람들이 다니는 길가의 잣나무까지 넘보는군요.
다시 잣송이가 나무 밑에 떨어졌습니다. 나는 그걸 주어와 먼발치에서 청설모를 지켜봤습니다. 땅에 내려온 깜둥이 청설모는 두리번거리며 잣을 찾더니 다시 나무에 올랐습니다.
난 길가에서 기다리다가 잣송이가 떨어지면 주어오고, 청설모는 잣을 떨어뜨린 후 나무에서 내려와 잣을 찾다가 못찾고 다시 나무에 오르는 행동을 되풀이 하였습니다.
예닐곱의 잣방울을 그냥 얻을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서야 청설모는 다른 곳으로 사라지더군요. 자꾸만 내쪽을 뒤돌아 보면서 말이죠.
그 표정에는 아쉬움과 의아함이 서려 있었습니다.
아직은 덜 여문 잣은 까기가 까다롭습니다. 손에 덕지덕지 송진이 묻히며 잣을 깠습니다. 딱딱한 갈색 잣씨를 어금니로 깨물면 우윳빛 잣이 나옵니다. 참 고소하고 맛있더군요.
잡을려고 애써도 잡을 수 없는 골칫거리 청설모, 다람쥐는 어디로 사라지고 청설모만 판치는지는 모르지만 난 청설모 덕에 햅잣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종이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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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흙이 된 지렁이 10-2 *
다운터를 빙 둘러보던 꿈틀이가 말했다.
"이곳은 모두가 제멋대로인 것 같아. 무질서하게 보여."
다운터엔 농부의 손길이 별로 느껴지지가 않았다. 작물로써의 가치가 별로 없는 호밀이 자라는가 하면 잡초인 클로버도 듬성듬성 있고 밭가엔 억센 아까시나무가 우람하게 자라고 있다.
"네가 말하는 질서란 뭐지?"
다운이가 물었다. 꿈틀이는 지난번에 보았던 논을 떠올렸다. 벼들이 가지런히 심겨져있어 기계로 비료 주고 농약 주고 수확하기에 제격으로 질서 있게 보였다. 또 배추밭에는 배추만, 콩밭에는 콩만이 심겨져 있는 것을 떠올리며 이것이 질서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응, 질서란 함께 사는데 있어 편하고 쉬운 것이 아닐까?"
"그래, 하지만 획일적인 질서를 위해 각자의 자연스런 자기다움을 망가뜨리는 것은 질서가 아닌 혼돈이야."
"혼돈?"
"꿈틀아, 이곳의 생물들은 자연스런 자기의 꼴을 가지고 있어. 어느 정도는 양보하고, 어느 정도는 지키며 각자 자기답게 삶을 꾸려가고 있지."
"그럼 내가 보았던 논밭의 작물들은 자기다움을 잃어버린 것이니?"
"그래, 그래서 그들에겐 획일적인 새로운 질서와 인위적인 보호가 필요해. 스스로 자신을 보호할 힘조차 상실해 버렸거든."
"자신을 보호하다니? 움직이지도 못하는 식물들이 어떻게 자기보호를 한다는 거지?"
"식물은 비록 달아나거나 숨지는 못하지만 나름대로의 생존비결을 가지고 있어. 가령 공변세포는 가물면 구멍을 닫아 물의 낭비를 막고, 기동세포는 밤에 추우면 잎을 움츠려서 열의 발산을 막아. 무는 그해 겨울이 추울 것 같으면 추위를 이기기 위해 껍질을 두껍게 하고, 따뜻한 땅속으로 숨기 위해 꽁지를 길게 해. 그뿐만 아냐."
다운이는 계속해서 꿈틀이에게 얘기를 했다.
"이곳의 질서는 함께 어우러져서 지켜. 식물다움과 벌레다움은 이런 것이다. 벌레는 어느 정도는 먹되 식물을 죽이지는 않지. 식물도 어느 정도는 먹히지만 죽지는 않아. 이것은 함께 사는 방법이야. 우리가 슬퍼해야 할 것은 '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라지는 거야. 만약 어느 벌레가 욕심이 많아 식물의 잎을 모조리 갉아먹으면, 자신은 배부를지 모르지만 새끼는 굶어 죽을 거다. 이것은 벌레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사는 방법이 아니라 죽는 방법이지.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 혹 벌레가 그러하더라도 식물이 일방적으로 당하지만은 않아. 우리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리듯이 식물도 건들면 움찔거린다."
실제로, 나약해 보이는 식물들도 생존을 위한 나름의 대안을 가지고 있다. 벌레에 의해 손상된 부위에서 생산되는 '재스민'은 주변으로 쉽게 날아가는데, 이 신호를 인식한 식물은 곤충이 싫어할 물질들을 축척 하여 공격에 대처한다. 곤충을 쫓는 물질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소화를 억제하는 효소인데, 벌레의 입맛을 떨구어 다른 곳으로 떠나도록 유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화 억제재가 들어있는 식물을 먹은 벌레는 성장이 줄고 오래 살지 못한다.
그런데 재배된 식물들은 방어기능이 약할 뿐만 아니라 자연산 만큼은 맛과 향기가 없다. 재배식물을 가꾸며 많은 농약을 사용해야 하는 까닭은 비료 및 제초제 등 많은 화학물질로 키운 식물이 재스민 같은 신호물질 생산능력과 자체방어능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해충을 죽이기 위해 뿌린 농약이 해충보다는 오히려 해충의 천적을 더 죽이므로, 해충이 잠깐 피했다가 다시 돌아오면 전보다 더 안심하고 작물을 가해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유기농법으로 키우면 자연상태에서 자란 식물과 비슷한 조건이 주어져 자체 방어력은 갖게 되고, 농약을 적게 사용하여도 건강하게 자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