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 빨래를 하였습니다.
새물에 빨아 넌 면티가 햇살에 되비쳐서 눈이 부십니다.
큼직한 무궁화가 예쁘게 핀 가을 어귀에서 종이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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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애바리와 무지렁이)
애바리는 흙살림꾼과 같은 농대에서 학업을 같이 한 동기인데, 그는 농대를 졸업하여 식품회사에 들어갔다. 가끔은 흙살림꾼을 만나러 시골로 내려오곤 한다.
흙살림꾼은 지렁이의 가치에 대한 나름의 생각들을 애바리와 나누곤 했는데, 어느 날 애바리가 좋은 사업을 진행중이라며 이런저런 설명서와 서류 등을 가지고 갑자기 시골로 내려왔다. 흙지킴이를 붙잡고는 다짜고짜 동업을 하자고 한다.
"네가 지렁이의 가치를 알고 잘 돌보는 것을 보고 나도 지렁이의 가치에 대해 알아보았다. 참 많은 가치가 있더구나. 우리가 손을 잡으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갑자기 나타나 대뜸 동업을 하자는 의도가 뭔지 궁금하여 흙지킴이는 애바리의 말을 가만히 들고 있었다.
"지렁이란 놈, 알고 보니 짭짤한 돈벌이가 될 것 같아. 지렁이를 대량으로 양식해서 화장품도 만들고 약고 만들어 팔면 돈이 될거야. 넌 지렁이만 키워라. 나머진 내가 알아서 하겠다."
"지렁이로 무슨 화장품이나 약을 만드니?"
"옛날에 클레오파트라는 나일강에서 지렁이를 양식해서 미용에 이용했고, 아프리카의 원주민들은 지렁이를 손으로 문질러 그 체액을 얼굴과 온몸에 발라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탈수증을 예방하고 피부를 보호했어. 지금도 프랑스의 유명한 화장품 회사에서는 지렁이의 혈액색소와 체표액을 가공하여 입술에 바르는 고급루즈의 원료로 이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지렁이 몸 속에 있는 효소를 이용하여 화장품을 개발하고 있는데, 기미를 억제하는 효소와, 노후화 된 피부각질을 용해하는 효소, 피부표면의 말초혈관을 확장하는 효소 등이 있기 때문이야. 그 뿐만 아니라 약으로도 많이 개발되고 있어. 혈전치료제인데, 혈액의 정상적인 흐름을 막아 각종 혈관 질환을 일으키는 혈전의 주성분(피브린)을 용해시키는 효소(룸부리카이네즈)를 지렁이 체액에서 발견하여 약으로 개발했고, 아직 상품화는 되지 않았지만 항암물질(룸브리신)도 개발했어. 또 있어. 지렁이 배설물이 탈취제로 이용된다는 것이다. 지렁이 사육장에서는 전혀 악취가 나지 않아. 원래 지렁이의 사료는 음식찌꺼기, 제지공장 찌꺼기, 인분뇨 처리 후의 활성오니 등 악취가 많이 나는 것들인데, 일단 지렁이가 먹기 시작하면 냄새가 나지 않아. 지렁이 배설물을 하수처리장, 분뇨처리장, 쓰레기 소각장, 축산시설에 팔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거야. 지렁이가 이렇게 가치 있는 줄은 정말 몰랐다."
흥분에 겨워 신나게 지껄이는 애바리를 바라보던 흙살림꾼은 그 꿍꿍이셈을 알아챘다. 역시 애바리다운 치밀함과 약빠름이다라고 여겼다.
"지렁이에게 그런 가치까지 있구나."
흙살림꾼은 왠지 슬펐다. 애바리는 흙살림꾼의 기분 따위엔 아랑곳하지 않고 들떠서 눈이 빛났다.
"흙살림꾼아, 지렁이는 우리에게 정말 가치 있는 벌레야!"
"어떤 가치?"
"우릴 부자로 만들어 줄거야. 넌 지렁이를 키우는데 소질이 있고, 난 사업에 소질이 있으니 우리 잘 해보자."
"애바리, 넌 지렁이의 가치를 '값어치'로만 생각하는구나. 난 지렁이의 가치를 '존재'로 생각하거든. 우리에게 이런 차이가 있어서 함께 할 수 없구나. 난 농사꾼이다. 지렁이는 나의 동료이다. 난 지렁이의 '값어치'는 잘 모르지만 그 '존재'를 안다. 이것이 지렁이에 대한 나의 가치관이다."
애바리는 흙살림꾼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쳐다보더니, 한참 설득을 하였다. 그러나 흙살림꾼은 흙을 살리는데 더 치중하고 싶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결국 애바리는 설득하길 포기하고 도시로 떠났고, 흙살림꾼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시골에 남았다. 애바리는 도시로 떠나며 흙살림꾼에게 빈정거리는 투로 말 한마디를 툭 던졌다.
"지렁이와 함께 하더니 '무지렁이'가 되었구나."
-계속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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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바리 : 재물과 이익을 좇아 덤비는데 재빠른 사람.
* 무지렁이 : 물정에 둔한 어리석고 무식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