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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이 된 지렁이 (마지막 회)

글쓰기/소설

by 종이인형 꿈틀이 2000. 9. 29.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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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뜨기 박종인입니다.

전공이 농학인 관계로 흙과 지렁이의 가치에 대한 나름의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처음엔 소설의 형식을 빌린 수필을 쓰고자 했었는데 쓰다보니 어줍잖은 소설이 되고 말았네요.

소설이라고 말하기엔 어설프지만 이게 내 처녀작입니다.
작년엔 '제2회 공무원문예대전'에서 이 글이 우수상을 수상하여 행자부장관상을 받기도 했구요.

고리타분하고 지루한 글을 읽느라 따분했죠? 마지막입니다.

-종이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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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이 된 지렁이 11

몇 개월 전, 자신의 존재에 대한 궁금증을 안고 떠났던 꿈틀이는 다시 창문에 돌아왔다.
예전의 팽나무는 한결같은 모습으로 창문을 지키고 있다.

"꿈틀아, 다시 만나 반갑구나."
"날 기다리고 있었군요."

"그래, 네 소식을 계속 듣고 있었다."
"팽나무 할아범이 왜 이곳에서 날 떠나보냈는지 알 것 같아요."

"·····."
"고마워요!"

"뭐가?"
"내 궁금증을 풀어줘서요."

"슬기곶을 찾았니?"
"네, 처음엔 먼 곳을 바라보며 찾았지만 도무지 찾지 못했죠.
막상 먼 곳에 와보니 이전에 먼 곳을 바라보던 그 곳에 슬기곶이 있는 게 보이네요.
결국 슬기곶은 항상 가까이에 있었던 거였어요.
다시 창문에 와서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니 내가 지나온 모든 곳이 슬기곶인걸 알겠어요."

"맞아, 우리는 시간의 씨줄과 공간의 날줄이 얼기설기 얽힌 세상에 있지.
지금 창문에 서있는 네겐 이전과의 공간 변화는 없어.
하지만 시간의 변화는 있지. 비록 같은 공간이지만 다른 시간이므로 너의 위치는 이전과 달라."
"네, 난 변했어요."

"그래, 넌 자랐어."
"·····?"

"넌 지금도 단순히 흙을 먹지만, 왜 흙을 먹는지 그 의미를 알고 있다. 넌 자란 모습으로 변했어."
"복잡함을 극복한 단순함이군요."

"꿈틀아, 네가 지나온 곳곳에 슬기곶이 있었듯 이곳에도 슬기곳이 있어.
이곳은 그 과정의 마지막이지. 넌 이곳에서 너에 대한 최종적인 이야기를 알게 될 것이다.
그게 뭘 뜻하는 줄 아니?"
"네."

"무섭지 않니, 죽음이?"
"죽음도 삶의 한 과정인걸요. 나도 아빠처럼 죽고 싶어요. 죽어서가 아닌 살아서 죽는 거 말예요."

"네 죽음이 아름답구나."
"네, 내 삶이 아름다워요."

"꿈틀아, 바닥의 오목한 부분을 뚫고 들어가면 여러 구멍들을 보게 될 것이다.
그 구멍은 너의 숨은 모습을 보여준다.
까마득한 옛날 지혜로운 한 슬기주머니(철학자)가 너에 대해 얘기를 했어."
"곧바로 헤어지니 아쉬워요."

"나도 그렇구나. 다시는 지금의 네 모습은 볼 수 없지만, 새로운 네 모습을 보길 기대한다.
꿈틀아, 네 삶이 무척 아름답구나."
"네, 죽음이 아름다워요."



창문 바닥의 오목한 부분을 뚫고 내려가자 팽나무 할아범의 말대로 몇 개의 구멍이 드러났다.
꿈틀이는 설렘 반 궁금 반으로 첫 번째 구멍에 들어갔다.
그러자 꿈틀이의 몸 마디마디가 모두 '0'과 '1'의 수로 변했다.
100마디가 훨씬 넘는 꿈틀이의 몸마디는 0과 1의 숫자가 되어 염주처럼 나란히 이어져있다.

00101000011001010100010001011101111100100110100000010011001100000001
01000011001010100010000001001111101110010101100

삶이란 두 가지 성격이 함께 하는 것이다.
生과 死, 有와 無, 밝음과 어둠, 기쁨과 슬픔 등등은 나뭇잎의 앞뒷면처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0과 1의 어울림 속에 그 삶의 모양이 드러난다. 꿈틀이는 아리송했다.
그리하여 두 번째 구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다섯 마디가 한 묶음이 되어 나눠졌다.

00101.00001.10010.10100.01000.10111.01111.10010.01101.00000.01001.10011.
00000.00101.00001.10010.10100.01000.00010.01111.10111.00101.01100

세상은 동서남북의 네 자리가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한 자리가 있다.
이 다섯 자리가 모여 한 점이 된다. 한 점은 어떤 뜻을 지닌 신호가 된다.
꿈틀이는 다섯 개의 수로 이루어진 한 묶음의 수 보따리가 어떤 뜻이 있으리라는 짐작을 가지만
아직 어떤 의미인지는 이해되지가 않았다.
그래서 세 번째 구멍으로 들어갔다.
세 번째 구멍은 '풀이방'이라고도 하는데, 0과 1로만 이루어진 이진법의 수가 십진법으로 바꿔졌다.
그리하여 이진법의 다섯 개의 수는, 십진법의 한 개의 숫자로 변했다.

5. 1. 18. 20. 8. 23. 15. 18. 13. 0. 9. 19. 0. 5. 1. 18. 20. 8. 2. 15. 23. 5. 12

그러나 아직도 이 숫자들의 나열이 어떤 뜻인지는 이해되지가 않았다.
꿈틀이는 네 번째 구멍으로 들어갔다. 그 구멍은 '문자방'이라고도 한다.
알파벳 문자들이 제멋대로 뒹굴고있는데 각 문자들은 꼬리표를 달고 있다.
그 꼬리표는 알파벳 순서대로 번호가 매겨져 있었다.
숫자로 이루어진 꿈틀이가 들어서자 널브러져 있던 문자들은 철가루가 자석에 달라붙듯
꼬리표에 달린 번호와 같은 번호의 꿈틀이 몸마디에 달라붙었다.

5E. 1A. 18R. 20T. 8H. 23W. 15O. 18R. 13M. 0. 9I. 19S. 0. 5E. 1A. 18R. 20T. 8H. 2B. 15O. 23W. 5E. 12L

꿈틀이의 몸은 점점 제 모습을 잃어가고 의식은 가물거렸다.
꿈에서 그는 미래의 자기를 보았는데, 제 몸이 한 줌의 흙이 되었다.
그 흙을 지렁이가 먹고, 식물이 뿌리를 내리고, 동물이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꿈틀이는 고운 흙이 되는 것을 꿈꾸며 점점 깊은 잠에 젖어들었다. 꿈결에 아득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흙에서 생겨나, 흙에서 생활하다, 흙으로 돌아가리라.'
'흙은 네가 돌아가야 할 회귀처이자 너의 고향이다.'
'흙은 생명의 근원이며 만물의 자궁이다.'
'흙은 거룩한 것이요 신성한 것이다.'
'땅을 독점하여 이용하거나 파괴하는 자는 결코 그 대가를 피하지 못하리라.'

이 소리는 꿈틀이가 알속에 있을 때 들었던 소리였다.
그때는 누구의 소리인줄 몰랐는데, 지금 들어보니 흙의 요정인 '흙지킴이'의 소리인 것을 알 수 있었다.
계속해서 소리가 들렸다.

'꿈틀아, 꿈꾸게 하기 위해 네게 경험을 주었다.
꿈이란, 경험의 몸에 상상의 날개가 달린 것이다. 경험이 전혀 없으면 꿈도 꿀 수 없는 것이다.
꿈꿀 권리는 소중한 것이다.'

소리가 점점 멀어진다, 그리고.

Earthworm is Earthbowel
(지렁이는 대지의 창자이다.)
-아리스토 털레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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