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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찍한 창유리를 통해 비치는 봄 햇살이 따뜻하다. 나는 5일장을 떠도는 장돌뱅이가 봇짐과 등짐을 단단히 챙기듯
출근하면 책상과 의자를 바짝 붙이고 하루를 보낸다. 창 너머 오십 보만 걸으면 설봉산 자락이다. 매일 보는 산의 풍경은 그대론데, 아니 뭔가가 일어나는 듯하지만 잘 모르겠다. 저들은 내게 뭔가를 감추고 있다. 하지만 꿀 먹은 벙어리마냥 내가 보면 딴청이다. 아직 겨울의 꼬랑지가 남아 있어 간간이 찬바람이 까탈을 부리기에 섣불리 짙은 옷을 제치고 밝은 옷으로 갈음하기 어줍지만 햇살만큼은 봄을 느끼게 해준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듯 돌아보면 산은 그대로인데 시나브로 다가오는 그 느낌은 무엇일까? 봄이 온 것일 게다. 산에 봄이 숨어 있어 그런 거지. 보물찾기 하듯 봄을 찾자. 봄을 담기 위해 새로 산 디지털카메라를 챙겼다. 우선 사무실에 있는 봄을 붙잡자. 창가에 철쭉과 꽃 기린이 있다. 찰칵! 철쭉과 꽃 기린을 잡았다.
아직 밖은 싸늘하다. 얼추 둘러보니 꽃은 없다. 사무실 뒤편의 버짐나무는 방울만 대롱대롱 달려있을 뿐 겨울 모습 그대로이다. 양지 바른 건물 벽에 기대 선 개나리, 대부분 아직 꽃봉오리로 남아 머뭇거리는데 몇몇의 용감한 봉오리가 꽃눈을 터뜨렸다.
하마터면 그냥 지나칠 뻔 했다. 눈길을 끌만한 화려한 꽃잎이 없는 회양목. 웬만한 사무실엔 회양목 서너 그루가 있지만 회양목이 꽃을 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비록 꽃잎은 보이지 않지만 암술과 수술은 또렷하다. 좀 더 굽어보면 볼 수 있는 회양목의 꽃, 꽃 주위에 벌이 없었으면 나도 그냥 지나칠 뻔 했다.
우리는 꽃을 평가할 때 예쁜 겉모양과 색깔을 중요시하지만 벌은 숨은 향기로 그 꽃을 평가한다. 우리는 꽃을 평가하듯 사람도 겉모양으로만 평가하곤 한다. 화려한 꽃보다 향기로운 꽃을 찾는 벌처럼 사람도 그렇게 평가하고 평가받았으면 좋겠다.
산자락에 난 오솔길에 접어들었다. 빛바랜 억새가 너저분하게 있고, 낙엽수는 아직 새 옷을 마련하지 못해 초라하다. 버드나무였다. 봄은 버드나무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다른 나무들은 아직 미적거리는 이때, 버드나무는 뭐가 그리도 급한지 싸늘한 바람도 아랑곳하지 않고 꽃을 피우고 있다.
그 옆의 산수유는 눈치를 살피며 머뭇거린다. 산수유 축제가 낼 모랜데, 여기 이 산수유나무는 몸을 사리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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