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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겨울풍경. 1

농사일/농업&농촌

by 종이인형 꿈틀이 2005. 2. 26.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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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춥다.

좀체 얼지 않던 마을 앞의 저수지가 얼었단다.

내가 내려갔을 때 날이 어느 정도 풀려 수면의 반 가웃만 살얼음이고 나머진 시린 잔물결이 울렁거렸다.

조카는 연신 춥다며 얼른 들어가자고 보채지만 난 얼다 녹은 저수지를 한참 더 바라보았다.

조카는 진짜 추운 것을 모른다. 겨울치곤 이 정도는 추위도 아니다.

저 어설프게 언 저수지가 말해주지 않는가!

조카는 딱 한번 저수지 위를 걸었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조카만한 시절에는 언 저수지를 마당 삼아 놀았었지.

 


지금도 장갑을 끼지 않는다.

그때처럼 장갑이 없어서가 아니다.

손을 호호 불며 시린 귀를 막지 않아도 견딜만한 겨울이기 때문이다.

춥지 않은 겨울은 싱거운 젓갈처럼 밋밋하니 그 맛이 없다.

명치가 에일 정도로 추웠던 그 겨울, 또한 그만큼 따뜻함이 가득했다.

내 겨드랑이, 엄마의 목덜미, 아랫목, 난로 위의 군고구마.

저번에 없었는데 어디서 구했는지 무쇠난로가 예배당 현관에 자리하고 있다.


10년 전 다시 고향에 둥지를 튼 큰형은 춥지만 따뜻했고 주렸지만 부른 시골의 정서를 아이들도 고스란히 느끼도록 애면글면 애쓴다.

흙과 돌과 나무로 살림집을 짓고 예배당을 지었다.

거드는 사람도 없어 초등학생인 큰 조카의 손을 빌리기도 했고, 자재가 떨어지면 돈이 생길때까지 마냥 미루다보니 5년이라는 세월이 흘러서 완성된 흙집.

달포면 뚝딱 완성되는 현대식 집에 비하면 얼마나 더딘가?

헌데 흙집은 이렇게 시나브로 지어야 한단다.

밑의 흙이 채 굳기 전에 다시 흙을 쌓으면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해 무너진다고 한다.


형은 방 중에 하나는 구들을 놓아 온돌방을 만들었다.

난 고향에 내려오면 이 온돌방에서 잠을 잔다. 아궁이 앞에 쭈그리고 앉아 동생을 생각하며 군불을 지피는 형의 모습이 선하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바람벽의 작은 틈새로 연기가 스며들곤 한다. 난 그 냄새가 참 좋다. 흙내와 나무내가 섞인 시골집 구들내. 도시에서 맡는 매연과는 감히 견줄 수 없다.

방바닥이 살짝 그슬린 아랫목은 겨울밤의 천국, 난 천국가러 시골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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