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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일] 무심한 봄꽃

글쓰기/글쓰기(2020)

by 종이인형 꿈틀이 2020. 4. 3.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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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일] 무심한 봄꽃

(2020. 3. 28. / 자유 주제)

 

세상은 난리건만 봄꽃은 무심하게 피었다. 중세 유럽을 덮친 흑사병처럼 지금 세계는 코로나19가 몰고 온 먹구름에 암울하건만, 봄이 되었다고 봄꽃은 무심하게 피었다. 여느 해처럼 활짝 피었다.

 

사람들이 바이러스에 치어 죽어간다. 도로에 나서면 브레이크 고장 난 차에 치일듯하여 못 나오듯, 사람들은 어디서 날아올지 모를 바이러스 총탄이 두려워 밖에 나오길 꺼려한다. 꽃은 활짝 피었건만 봐 줄 이 드물다. 사람이 자기를 봐주든 말든 꽃은 너무도 화사하게 피었다.

 

계절은 돌고 돌아 다시 봄이 되었다. 겨울잠을 깬 개구리는 눈뜨자마자 짝을 부르느라 울어대고, 남들보다 먼저 씨를 맺어 퍼뜨리려는 냉이와 꽃다지는 하얗고 노란 꽃을 피웠고, 갯가의 버드나무도 오동통한 꽃대를 부풀리는 화창한 봄날이다. 봄이 되어 자연은 부산스러운데 인간은 잠잠하다. 침묵의 봄이다.

 

신학기가 되었어도 학교는 개학하지 못했고, 각종 행사와 모임은 기약없이 미뤄졌고, 사람들이 오가던 장터의 가게들은 손님 끊기니 하나둘 문을 닫았다. 사람세상은 이처럼 조용하건만 봄꽃은 봄이 되니 피던대로 피었다. 무심하다 말할까 매정하다 말할까!

 

바깥세상은 꽃천지다. 노란 산수유꽃, 연분홍 살구꽃, 연둣빛 자두꽃, 남녘에는 벚꽃도 피었건만 꽃놀이 축제는 취소되었고, 꽃구경을 오지 말라 안내한다. 제 아무리 활짝 펴도 예전처럼 봐줄 이 없건만 꽃은 어느 해보다 서둘러 활짝 피었다. 하긴 꽃이 예쁘게 피는 것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피는 것은 아니지. 벌과 나비를 꼬드기려 피는 거지. 그러니 사람 세상이 난리여도 봄꽃은 봄이 되니 아랑곳없이 피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이런 봄꽃을 무심하다 탓할 수도 없다. 올봄엔 봄꽃이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사람의 마음은 더욱 우울하다. 무심한 봄꽃이 이번만큼은 얄밉다.

 

https://youtu.be/s-W1vQLDF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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