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고샅

글쓰기/수필

by 종이인형 꿈틀이 2008. 9. 28. 20:47

본문

나의 농어촌이야기 공모글

 

고샅

 

- 박 종 인 -

 

  

시골엔 왜 갈까? 지지리도 옹색하던 생활이 싫어 떠나고만 싶었던, 그리고 떠났던 시골에 나는 왜 갈까? 시골에서 도시를 동경하며 바라보았던 별이 그리웠던 건가? 하긴 시골에서 매양 봤던 밤하늘과 별과 달이 도시에는 없다. 대신 별보다 더 밝은 빛들이 내 눈을 멀게 했다. 먼 눈을 밝히고자 시골에 가는지도 모르지.

 

시골에 왔다. 가끔 이렇게 찾는 시골엔 어머니가 계시고, 형님이 계시고, 그리고 별이 있다. 낮에 기운을 뻗치던 벌건 해가 서산에 묻히면 이내 드리운 밤의 커튼에 뭇별이 싹트기 시작한다. 길 건너 마을의 개 한 마리 컹컹거리면 이내 옆집의 멍멍이도 따라 짖으며 밤맞이를 한다. 개는 봉수군인가? 산 너머 산에 소식을 전하듯 마을 건너 마을에 개는 밤을 전한다.

마을 뒷산의 등성마루부터 미끄럼을 타는 어스름은 동네까지 이르며 큰물이 강둑 메우듯 고샅마다 스르르 쌓인다. 집집마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듯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나면 하루를 마친 식구들은 밥상에 둘러앉아 저녁식사를 한다. 밥상을 물리고 어른들이 동네 사랑방으로 마실 나가면, 동네 악동들은 어둠을 핑계로 색다른 재미 찾아 고샅길을 헤맨다. 은근살짝 둥근달이라도 비친 날이면 골목을 누비는 아이들의 밤놀이는 재미가 더해지게 마련이다. 이것이 내 어린 시절 시골마을의 골목 풍경이었다.

그때의 동네 골목은 세상의 전부였다. 모든 것들이 골목 안에서 다 이뤄졌다. 굳이 딴 세상을 찾아볼 필요가 없었다. 담벼락에서 딱지치기로 따먹은 딱지는 돈보다도 더 귀했고, 빈터에서 땅따먹기로 차지한 서너 뼘의 자리가 땅보다도 더 듬직했다. 큰 나무의 가능성이 작은 씨앗 안의 싹이듯, 아이들에겐 동네의 골목길이 세상의 본보기였다. 골목대장은 세상을 지배하는 왕이고, 골목의 규칙은 꼬마들 세상의 법이었다.

 

자라면서 껍데기를 바꿔 새 집을 삼는 소라게처럼 골목에서 놀던 아이는 소년이 되면서 마을보다 큰 면소재지의 학교를 다녔다. 마을 앞 안산을 에돌면 한길이 나타난다. 한길은 골목길과 감히 견줄 수 없을 정도로 넓고 반듯하다. 한길을 통해 학교를 가고 도시로 간다. 하지만 한길은 집들이 있는 마을로 빠르게 오가는 통로일 뿐, 느긋하게 거닐며 이웃을 살피거나 도란도란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은 아니다.

길은 핏줄이요, 고샅은 모세혈관이다. 심장에서 나온 피가 동맥을 거쳐 그물맥 같은 실핏줄에서 혈관과 조직 사이를 오가며 산소와 양분을 건네주고 이산화탄소와 노폐물을 거두듯, 고샅에서 사람들은 정을 나누고 살음살이를 품앗이한다. 고로 고샅에는 마을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스며있다.

골목을 오가며 나누는 이웃들의 인사말과, 객지 나간 자식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과, 임의 집을 기웃거리며 서성이는 연인의 애틋한 마음이 깃들어 있다. 마을로 들어오는 이삿짐도 골목길로 들어오고, 함진아비의 실랑이도 골목에서 벌어진다.

밤늦게까지 공부하다 어두워진 후에 혼자 집으로 향하는 길은 괜스레 무서운 이야기들이 너무나 생생하게 떠오른다. 길가의 어둑한 풀숲에 뭔가가 있는 것 같아서 머뭇거리다가도, 뒤에서 도깨비가 날 잡으려고 쫓아오는 것 같아 부리나케 달려서 마을 골목길에 접어들면 무섬증은 금방 사라진다. 골목에 들어서며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혹 깡패나 도깨비가 나타나더라도 소리만 지르면 아는 형과 이웃 아저씨가 금방 달려올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도시를 만들 때 산은 깎고 골은 메워 터를 평평하게 하고, 길은 네모로 죽죽 그어 그야말로 바둑판 모양새이다. 시골의 자연부락은 대개 비스듬한 터에 그대로 자리하고 골목의 선은 부드럽다. 시골마을의 모양은 마치 아름드리나무 같다. 밑둥치는 마을 어귀이고, 굵직한 원가지와 가느다란 잔가지는 마을의 골목길이다.

처음엔 한 줄기 묘목이던 것이 자라면서 두세 가지의 1차 가지가 생기고, 1차 가지에서 다시 서너 가지의 2차 가지가 생기며 햇빛과 바람 등을 고려하여 나무의 모양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시골마을도 나무의 모양처럼 지형과 방향과 우물의 위치 등에 따라 집들이 자리하고 고샅이 생겼다.

지금은 인위적인 환경이 사람들의 생활을 지배하게 되며 마을의 골목도 인위적으로 바뀌어간다. 규격화된 상품이 관리상의 편리성이 크듯 규격화된 마을도 생활의 편리는 클 것이다. 그런데 왠지 예전의 구불구불한 자연부락 골목이 그립다.

예전엔 물길을 따라 길이 나고 마을이 생겨났다. 문득 '물 흐르듯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막히면 돌아간다. 시골마을은 물 흐르듯 자연스레 구성되었다. 마을의 집들은 같은 방향으로 자리하고 골목은 도랑처럼 구불하다. 도시의 집(아파트)이 같은 단지 내에서도 서로 다른 방향으로 지어지고 길은 굴곡 없이 반듯이 뚫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사는 곳에 따라 사람의 성품도 변하는가보다. 같은 방향을 보며 사는 시골사람들은 두레나 울력 등을 통해 뜻과 힘을 모아 마을일을 공동으로 처리하지만 각각 다른 방향을 보며 사는 아파트의 주민들은 생각도 각각이라 좀체 뜻을 모으기 어렵다. 그런데 지금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적잖은 사람들이 예전에는 시골에 살던 사람들이다.

나도 지금 아파트에 산다. 명절이면 시골을 찾지만 내가 찾는 고샅의 풍경의 이미 자취를 감추었다. 아이들의 노는 소리는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가 되었고, 들일을 나서는 힘찬 농부의 발길 대신 지팡이를 짚는 노인의 지친 발길만 남았다.

마을 앞 안산에서 고향마을을 바라보니 가을나무 꼴이다. 여름날의 무성한 잎사귀 대신 빛바랜 몇몇의 나뭇잎만 나뭇가지에 겨우 매달려 있는 풍경이다. 사람이 있어야 생기가 있고 문화가 있는데, 지금 시골에는 생기가 사라지고 전통의 문화마저 맥이 끊어지고 있다.

마을 골목에 들어선다. 지금은 낯선 풍경이지만 예전의 낯익은 풍경을 떠올린다. 담벼락에 남아 있는 낙서와 허물어진 흙담과 부러진 당산나무, 이들은 내 유년의 추억으로 인생의 나이테에 그려져 있는 것들이다.

돌이켜볼 수 있으려면 체험한 것이 있어야 가능하다. 어린시절의 고샅과 까만 밤하늘이 그리워서 이따금씩 시골을 찾는다. 그 시골엔 고샅이 있다. 그리고 까만 밤이 있다.

 

반응형

'글쓰기 >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벙어리 차  (0) 2008.12.29
다짐의 되새김질  (0) 2008.11.17
가을 달밤의 기도  (0) 2008.09.16
어미기러기의 내리사랑  (0) 2008.06.21
어머니가 쓴 성경책  (0) 2008.05.19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