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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기러기의 내리사랑

글쓰기/수필

by 종이인형 꿈틀이 2008. 6. 21.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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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기러기의 내리사랑

새끼를 둔 어미의 보호본능은 이처럼 강하고 돌변하는 괴력을 발휘한 것이다. 평상시에는 겁쟁이인 어미이고 다른 닭들에게 집단 공격을 당해도 피하기만 했던 어미기러기였다. 시골 텃밭의 가축우리 한 구석에 겁쟁이 기러기가족이 산다. 어미의 품에는 새끼가 있다. 평화로다.
젊은 엄마들인 유모차부대가 거리로 나섰다. 행여 어린아이가 다칠지도 모를 시위현장에 겁 없는(?) 엄마들이 나선 것이다. 엄마들은 어린아이들의 장래를 걱정하며 거리로 나선 것이다. 늙은 어머니가 거리를 헤맨다. 어머니의 눈에는 수만의 촛불이 불안하기만 하다. 검은 옷을 입어 분간하기 힘든 전경들 속에서 아들을 발견한 어머니는, 단단하게 무장한 아들을 붙안고 울음을 터뜨린다. 어머니는 오늘의 아들을 걱정하며 거리로 나선 것이다. 2008년 6월 어느 날, 어머니의 내리사랑이 넓은 광장과 좁은 골목에 진득하다.

시골의 큰형네 집 앞엔 가축우리가 있다. 닭, 오리, 기러기가 한울타리에서 산다. 가장 큰 무리를 이루는 열대여섯 마리의 닭 무리는 우리 안을 활보하고, 단 두 마리인 기러기 부부는 기를 피지 못한 채 구석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수탉의 기세는 꼿꼿한 벼슬처럼 늘 기세등등하다. 똥그란 눈알을 굴리며 기러기를 위협하곤 했다. 기러기는 그 울타리에서 타성바지 처지인 것이다.


매일 모이를 주는 큰형은 이런 기러기가 안쓰러워 먹이를 더 챙겨줄 요량으로 가까이 다가가지만, 매양 멀찌감치 달아났다가 형이 자리를 뜨면 비로소 주춤주춤 다가오는 겁쟁이다. 수탉 중에서 우두머리는 울안의 감나무 가지에 올라 잠을 자고, 가끔은 달린 날개를 푸닥거려 울타리를 넘는 오기도 부리기도 했다. 하지만 닭보다는 더 잘 날 수 있는 기러기는 그저 울안의 하늘만 제 세상으로 여기며 산다. 날지 못하도록 깃텃을 조금 가위질 했을 뿐이지만, 그래도 날려면 얼마든지 낮은 울타리 정도는 벗어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매일 큰형은 우리 안에서 달걀을 거둬서 반찬으로 요긴하게 먹는다. 수탉과 흘레붙어 생긴 유정란이기에 병아리가 생길 수 있지만 번번이 큰형의 눈에 띄어 암탉이 알을 품을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늘 구석에 있던 기러기는 큰형의 눈에 별로 띄지 않아 알을 품을 수 있었다. 기러기는 여남은 마리의 새끼를 깠다. 큰형은 자연부화한 기러기새끼를 보는 즐거움에 더 자주 텃밭의 우리를 찾았다. 앙증스런 기러기새끼들이 어미를 따라 졸졸거리며 노니는 모습을 보노라면 행복했다.

큰형이 마당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텃밭에서 삐약삐약 울음소리와 요란하게 푸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작은 기러기새끼 세 마리가 어쩌다가 좁은 울타리 틈새로 빠져나왔다가 다시 어미에게로 갈려고 했는데 들어가지 못해서 삐약거리고, 어미는 새끼를 품으려고 연신 울타리의 망에 부딪히며 푸닥거리고 있었다.


어미기러기의 눈에는 새끼기러기 외에는 보이지 않는가 보다! 여느 때 같으면 큰형이 울타리로 다가가면 멀찌감치 달아났던 기러기는, 큰형이 가까이 다가가도 아랑곳하지 않고 울타리 주변에서 새끼를 바라보며 안절부절 못하고 퍼득거렸다. 의기양양하던 수탉들은 기러기어미의 막무가내에 밀려 멀찌감치 떨어져서 이 사태를 지켜보고 있다. 큰형은 요리조리 피하는 기러기새끼들을 붙잡아 우리 안에 무사히 집어넣었다. 그런데 그 사이 사생결단으로 달려오던 기러기는 힘차게 날갯짓을 하여 단숨에 울타리를 넘어버렸다. 아마도 큰형이 제 새끼를 해하는 줄 알고 미친 듯이 큰형에게 달려든 것일 게다. 이미 상황이 끝난 줄 알았던 큰형은 또 다른 상황을 맞닥뜨린 것이다.

이제 어미를 우리 안으로 넣으려고 다가가자 단박에 울타리를 넘던 그 무서운 기세는 금새 꺾이고 도망 다니기에 바쁘다. 분명 몇 분전만 해도 울타리를 넘고 큰형을 공격까지 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도로 겁쟁이 기러기가 되었다. 훌쩍 뛰어넘은 울타리를 다시 넘지는 못하고 계속 들어갈 구멍만 찾으며 허둥거리고 있었다. 새끼를 둔 어미의 보호본능은 이처럼 강하고 돌변하는 괴력을 발휘한 것이다. 평상시에는 겁쟁이인 어미이고 다른 닭들에게 집단 공격을 당해도 피하기만 했던 어미기러기였다.

시골 텃밭의 가축우리 한 구석에 겁쟁이 기러기가족이 산다. 어미의 품에는 새끼가 있다. 평화로다.


글 : 박종인 객원기자
2008.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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