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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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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인형 꿈틀이 2009. 3. 20.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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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이인형 박종인입니다.

자동차를 몰며 히터를 켜던 날이 얼마 전인데, 오늘은 에어콘을 켰습니다.

농사철을 앞두고 읍면동별로 농가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교육추진을 하지만 때로는 대리강사로 농가들 앞에 서기도 합니다.

선생과 학생의 차이는 앞에 섰느냐 자리에 앉았느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내일은 원주의 토지문화공원에 갑니다. 박경리 작가의 자취를 느끼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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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

배움이 눈물겨운 감격인 이들에게는 공부는 희망사항이요 학생은 동경의 대상이다. 그들 앞에서 감히 공부하기 힘들다고 짜증낼 수 있을까? 우린 여전히 학생이다. 학교를 다니는 학생이든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이든 평생 배우고 익히는 학생이다
지난주, 세상을 떠난 큰형수를 공원묘지에 안장하였다. 봉분을 돋우고 묘비를 세웠는데 형수의 비석에는 <사모 김영숙의 묘>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고등학생인 둘째 조카가 물었다.

“작은아빠, 왜 이곳에는 학생들이 많이 묻혔어요?”

조카가 주변의 묘비들을 둘러보니 유난히도 <학생 ○○○의 묘>가 많이 눈에 띄어서 궁금했던 것이다. 묘비에 새겨진 <학생>은 조카가 추측하듯이 자기처럼 학교에 다니고 있는 초중고생을 뜻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편 조카처럼 공부하는 사람을 뜻하는 학생(學生)이기도 하다. 생전에 벼슬을 하지 못한 보통사람의 묘비에는 ‘학생’이라는 문구를 넣는다.

따지기 후 바야흐로 봄이다. 겨우내 움츠렸던 잎눈과 꽃눈은 따사로운 봄볕에 움찔거리고, 농부는 볍씨를 챙기며 파종을 준비한다.

난 학생들 앞에 섰다. 올 농사를 앞두고 지난주부터 읍면동을 순회하며 농업인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수업에 참가한 학생들은 60세 가량의 어르신들이 대부분이다. 잘 보이지 않아 돋보기를 끼고 자기 이름을 찾는 어르신 학생, 배움은 젊은이들만의 과정은 아니다. 인간은 모름지기 살아있는 한 평생 공부하는 학생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묘비에 학생(學生)이라고 새기는 것이다.

농업인교육에서는 내가 선생이 되어 학생들 앞에 서지만, 어떤 교육에서는 내가 학생으로서 수업을 받는 입장이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교육에 참가한 학생 중에는 다른 분야에서는 선생으로서 다른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한다.


이번 다락방 모임에서, 살아오면서 절망적인 상황과 그것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서로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지금은 두 아이의 엄마인 한 자매는 자신의 학생시절을 얘기하다가 울컥하는 감정에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중학생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정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에 입학할 수가 없어서 산업체부설학교에 들어갔다.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자기는 정말 공부를 하고 싶은데 그 시간에 공장에서 일을 해야만 하기에 공부를 할 수 없는 상황을 설명하다가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굳이 그 이후의 말을 듣지 않아도 그녀의 감정이 충분이 전해졌다.

배움이 눈물겨운 감격인 이들에게는 공부는 희망사항이요 학생은 동경의 대상이다. 그들 앞에서 감히 공부하기 힘들다고 짜증낼 수 있을까?

우린 여전히 학생이다. 학교를 다니는 학생이든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이든 평생 배우고 익히는 학생이다. 50년 동안 농사를 지으신 어르신이 농사교육을 받으시려고 내 앞에 앉아 계신다. 학생으로서 말이다.

“너는 배우고 확신하는 일에 거하라” (딤후 3:14)
글 : 박종인 객원기자
2009.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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