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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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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인형 꿈틀이 2009. 4. 3.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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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산수유, 오늘 이천의 산수유꽃축제가 시작되었습니다.

요란스럽지 않게 꽃망울 터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토도도독!!!

-종이인형-

 

   
 
갓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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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

삶의 현장에서 살음살이의 소리를 듣는다. 북극의 녹는 빙하에서 지구의 신음소리를 듣는다. 가슴 깊은 곳에서 양심의 소리를 듣는다. 경건한 묵상을 통해서 하늘의 소리를 듣는다. 오늘, 우리에게 적당한 범위의 물리적 소리만 들릴 수 있게 해주심을 감사한다. 그리고 마땅히 들어야 할 소리를 듣고자 쫑긋이 귀 기울인다.
주변에는 수많은 소리들이 떠돌고 있다. 우리의 귀는 그 소리를 붙잡아 정체를 확인하곤 한다. 하지만 어떤 소리는 우리의 귀가 붙잡을 수 없다. 성긴 그물코로 작은 물고기가 빠져나가듯 어떤 소리는 우리의 귀를 유유히 빠져나간다. 귀 있는 자는 보통의 소리는 듣지만, 어떤 소리는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한다.
사람이 들을 수 있는 가청주파수(可聽周波數)는 20~20,000Hz이다. 이 범위를 벗어난 소리는 인간이 들을 수 없다. 사람에 따라서, 또는 남녀노소에 따라서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나이가 들수록 최고주파수의 값이 떨어진다.
일반적으로 10대 이하는 19,900Hz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20대 초반은 16,700Hz의 소리를, 30대는 14,100Hz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어떤 가계에서는 이 특성을 이용하여 귀찮은 10대의 아이들을 쫓아낸다. 물건은 사지 않으면서 가계에 죽치는 10대들이 가계 주인에게는 눈엣가시일 것이다. 가계에 18,000Hz 이상의 소리를 소음으로 들려주면 10대의 아이들은 왠지 귀에 거슬리는 소음 때문에 가계에 오래 머물지 않고 벗어나지만, 구매력이 있는 30대에게는 이 소리가 들리지 않아 거리낌 없이 머물며 쇼핑을 한다.

<주파수 체커>라는 프로그램이 있어 사무실 사람들과 테스트를 해봤다. 8,000Hz부터 시작하며 단계적으로 주파수를 높여서 듣기를 테스트한다. 20대에서 50대의 동료들은 대체로 13,000~17,000까지의 주파수를 들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내 옆자리의 동료도 주파수 체크를 했다. 그는 최근에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청력검사에 이상이 없었다며 높은 수치를 장담했다.
먼저 8,000Hz의 소리를 들려주었다. 안 들린다고 했다. 주변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분명 ‘뚜--뚜-뚜’ 소리를 들었는데 혼자서만 안 들린다고 말했다. 주파수를 낮춰서 7,000Hz의 소리를 들려주었다. 이번에도 그는 못 들었다. 6,000Hz의 소리도 못 들었다. 주변에서 지켜보던 우리는 그가 장난치는 줄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그는 정말로 못 듣는 것이다. 5,600Hz의 주파수까지 내려가서야 겨우 들린다고 말했다. 사람의 귀로 듣기에 감도가 좋은 주파수 범위는 1,000~5,000Hz로서 이 부근에서 소리가 가장 예민하다. 그 동료는 일상적인 의사소통에는 지장이 없으나 일부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것에 약간은 염려가 드는 모양이다.

주변에는 수많은 소리가 떠돌고 있다. 바람소리, 파도소리는 들을 수 있지만 박쥐의 초음파는 들을 수 없다. 주변에 떠도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고 해서 낙심할 것 없다. 만약 세상의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우리에겐 쉼이 없을 것이다. 모깃소리에도 밤잠을 설칠 것이요, 지구의 자전소리에 종일 시달릴 것이다. 적정한 소리만 들을 수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우리가 들어야 할 소리는 물리적인 소리만은 아니다. 심리적인 소리, 정서적인 소리, 영적인 소리도 들어야 한다. 아내가 불을 끄라고 얘기하면 난 전깃불을 끄는데, 아내의 속뜻은 가스불을 끄라는 것이었다. 물리적 소리를 제대로 들었지만 심리적 소리를 온전히 듣지 못한 것이다.

들리는 소리와 듣는 소리!
갓난아기의 울음소리는 주변의 사람들에게 모두 들린다. 하지만 아기의 엄마는 그 울음소리 속에서 아기의 요구사항을 듣기까지 한다. 물리적인 소리는 주파수의 범위가 20~20,000Hz, 음압 레벨이 0~130dB인 들리는 소리지만, 정서적이고 심리적이고 영적인 소리는 듣는 소리다. 들리는 소리는 수동적이지만 듣는 소리는 능동적이다.
삶의 현장에서 살음살이의 소리를 듣는다. 북극의 녹는 빙하에서 지구의 신음소리를 듣는다. 가슴 깊은 곳에서 양심의 소리를 듣는다. 경건한 묵상을 통해서 하늘의 소리를 듣는다.
오늘, 우리에게 적당한 범위의 물리적 소리만 들릴 수 있게 해주심을 감사한다. 그리고 마땅히 들어야 할 소리를 듣고자 쫑긋이 귀 기울인다.


글 : 박종인 객원기자
2009.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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