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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함에 대한 부담감

글쓰기/수필

by 종이인형 꿈틀이 2009. 2. 13.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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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봄비입니다. 

여남은 날 동안 하늘은 잔뜩 찌푸리기만 할 뿐 비를 뿌리지 않더니 드디어 비를 뿌리는군요.

오랜 가뭄을 달래기엔 애오라지 부족하지만, 뽀송한 솜같은 이 강산은 이 빗물을 고스란히 머금겠지요.

며칠 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꿀벌을 만났습니다. 주변엔 아직 꽃이 보이지 않는데 뭘 먹고 살가요?

내 손에 들려진 자판기 커피를 노리는 것 같습니다.

이른 봄이네요.

-종이인형-

 

갓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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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연함에 대한 부담감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실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또한 작은 부담인가? 우리가 당연시하는 일상에 대해 작게나마 부담을 갖는다면 현재의 삶이 더욱 소중하게 여겨지지 않을까?
올해는 주일학교 중고등부 교사를 지원했다. 지난해까지 10년가량 아동부 교사를 했었는데, 중학생이 되는 초등학교 6학년생의 심정처럼 설렘과 두렴으로 중고등부 교사가 되었다.

아동부와 중고등부 아이들은 분명 차이가 있다. 그 차이에 맞게 아이들에게 다가섬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기에 중고등부 친구들을 대하는 나의 마음에 적잖은 부담감이 있다.

내가 맡은 반은 중학교 1학년이다. 나와 같이 아동부에서 중고등부로 올라가는 현재 초등학교 6학년생인 아이들이다. 이미 나와 잘 아는 친한 친구들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아이들과 나를 생각한 교역자의 배려이다.

1월 첫 주, 첫 만남. 시큰둥한 언니오빠들과 달리 여전히 생기발랄한 아이들에게 물었다. ‘서른 살의 나는 ○○○이다.’ 아이들은 각자 자기가 생각한대로 외교관, 검사, 방송작가라고 답했고, 어떤 아이는 영국사람과 결혼할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미래의 자기 모습은 현재의 꿈이며, 그 꿈을 꿈꾸도록 일깨운 것이다.

첫 공과를 마치며 2009년 <나의 살음살이>를 작성해 오라고 과제물을 내주었다. 신년 계획표인 나의 살음살이는 4개의 부분인 영적(신앙), 지적(학습), 신체적(건강), 사회적(교제)으로 나누었으며, 구체적이며 측정가능토록 작성하라고 하였다.

막연하게 신앙생활 잘 하겠다, 열심히 공부하겠다,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겠다라고 적은 아이들의 것은 다시 작성토록 하였다. 가령 매일 성경 2장 읽기, 일주일에 책 1권씩 읽기, 한달에 한번씩 친구에게 연락하기 등으로 작성토록 예를 들어주었다.


처음 이런 것을 해보는 아이들은 이것이 부담스럽기도 할 것이다. 부담감이란 억압이기도 하지만 탈피해야할 과정이기도 하다. 곤충이 자라면서 자신의 허물을 벗어버려야만 더 클 수 있듯이 말이다.

당연함! 당연함에 막연히 익숙하다보면 오늘에 그저 안주하게 된다. 아이들의 몸이 자라듯이 마음도 자라야한다. 몸이 자란다고 해서 당연하게 마음도 자라는 것은 아니다. 학교를 다니고 졸업하고 진로를 찾아 취업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길 수도 있지만, 이 모든 것이 당연한 것만은 아니다. 중학생의 아이들에게 먼 훗날의 일인 취업뿐만 아니라 지금 학교에 다니며 공부하는 것도 꼭 당연한 것만은 아니다.

지금 우리반 아이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학교생활이 달동네의 어떤 아이들에겐 생계유지에 밀린 희망사항일 수도 있으며, 당연하게 식사 때마다 밥을 먹는 것이 기아에 허덕이는 세계의 1/3 사람들에게는 생사의 문제이다.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시내를 걸어다니는 것이 전쟁 중인 어느 나라에서는 목숨을 거는 모험이기도 하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실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또한 작은 부담인가? 우리가 당연시하는 일상에 대해 작게나마 부담을 갖는다면 현재의 삶이 더욱 소중하게 여겨지지 않을까? 아침마다 밥을 먹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한다면 반찬투정은 사치로 여겨질 것이며, 학교에 다닐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면 공부는 즐거운 혜택이라 여길 수 있을 것이다.

내일에 대한 꿈을 생각하면 오늘을 결코 허투루 보낼 수는 없으며, 부담감도 들 것이다. 부담감에 억눌리며 살 필요는 없지만, 적당한 부담감은 나른한 오후의 찬물 세수와 같다. 당연한 것에 대한 작은 부담감을 느끼며 한 겹의 허물을 벗는다, 중학생이 되는 아이들과 한 달을 갈무리하면서.




글 : 박종인 객원기자
2009.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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