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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이 된 지렁이 7 (13)

글쓰기/소설

by 종이인형 꿈틀이 2000. 7. 11.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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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의 살림꾼 박종인입니다.
태풍의 입김은 찰거머리같은 더위를 밀어내었습니다. 바람에 실린 비가 때론 억수처럼 쏟아지고 때론 꽃잎처럼 나풀거립니다. 바람이 부니 시원하군요. 이번 태풍은 그나마 얌전한 것같죠?

'꿈틀이'와 '꿈 틀 이', 처음 이 소설을 쓸 때 이미 생각했던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퍼뜩 떠올랐는데 너무 좋은 소재더군요.
이제껏 자신을 단지 '꿈틀이'일 뿐이라고 여겼다면, 이제부터는 '꿈 틀 이'라고 여기며 삽시다. 우리가 가진 꿈들을 시나브로 엮어가길 바라며 글을 엽니다.
-종이인형-

7 - 1

"도대체 인간이란 어떤 동물이죠?"
한때 인간이 되고 싶었던 꿈틀이가 슬기주머니에게 물었다.

"인간이란 워낙 다양하여 꼭 집어 말하긴 곤란하구나. 자연스런 성품의 인간은 참 아름답다. 그러나 인간들이 점점 제 모습을 잃어가고 있구나. 자꾸 부자연스런 짓을 하는 인간들이 늘어."

슬기주머니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말을 했다.
"자연스런 숲과 공기와 물과 흙을 흩뜨리며 자신의 흔적과 가공물들을 만드는 인간들이 많아. 그들은 곁눈질이처럼 흉내를 내지. 신처럼 새롭고 위대한 것을 만들려고 애써. 그들은 많은 건축물과 기계들을 만들었다. 심지어는 새로운 생물체도 만들었어. 이것은 거의 신의 경지에까지 이른 거야. 그러나 인간들이 위대하다고 여기는 그것 때문에 머지않아 자멸을 할 것 같아서 불안하구나. 신은 자신에게 도전하는 피조물에게는 몹시 엄하거든."

슬기주머니의 말은 두레박을 길게 내리고 두레박질을 하듯 조심스러우면서도 신중하였다. 어느새 하늘지기, 흙지킴이, 숲바라기, 물푸름이도 자리를 함께 하고 있었다.

하늘지기는 공기의 오염으로 인한 오존층의 파괴와, 이산화탄소로 인한 온실효과와, 하늘의 질서가 파괴됨으로써 기상이변이 생기는 것에 대해 고즈넉이 풀어놓았다. 숲바라기는 공기의 오염으로 인한 숲의 변화와, 무절제한 벌채로 인한 산림의 파괴와, 산림의 파괴로 인한 공기정화의 부진함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했다. 흙지킴이는 숲의 파괴로 인해 흙이 빗물에 유실되고, 산성비로 인해 부드러운 흙이 굳어지고, 온갖 화학약물로 인해 흙의 구조가 흐트러짐을 조목조목 말했다. 물푸름이는 부족함이 없을 것같은 물이 점점 줄어들고, 그나마 있는 물도 더 이상 생명수가 아닌 독물이 되어 가는 것을 시름에 겨워하며 이야기했다.

하늘 숲 흙 물 요정들의 시름을 듣던 꿈틀이는 한숨 한 모금을 길게 내뿜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점점 뚜렷해지는 것을 느꼈다.


"꿈틀아, 네 이름이 왜 꿈틀이냐!"

흙지킴이의 갑작스런 물음에 꿈틀이는 더듬거렸다.
"그야 꿈틀거리며 기어다니니.....꿈틀이죠."

꿈틀이는 자기 이름을 설명할 때마다 왠지 기가 죽는다.
"꿈틀거리는 꿈틀이야, 이제 너에게 새로운 이름을 주겠다."

흙지킴이의 말에 꿈틀이는 솔깃하였다. 어떤 이름일까? 이왕이면 꿈틀이보다는 좀더 우아하고 고상한 이름이었으면 좋겠구나. 초롬이, 함함이, 날쌘이, 우아미, 오뚝이, 맑은슬기, 밝은눈, 빛나리, 참이슬, 미리앎, 이런 이름들도 괜찮겠는데. 꿈틀이는 새로운 이름을 받는다는 것에 기뻐서 뛸 듯했다.

"네 새로운 이름은 '꿈틀이'다!"
꿈틀이는 자기가 잘못 들었나 의심했다. 새로운 이름을 준다고 하여 잔뜩 기대를 하였는데 또다시 꿈틀이라니! 흙지킴이가 날 가지고 장난을 하는 건가? 이런 꿈틀이의 기분 따위엔 아랑곳하지 않고 흙지킴이는 다시 꿈틀이를 불렀다.

"꿈틀아! 넌 이제부터 '꿈틀거리는' 꿈틀이가 아니라, '꿈을 트는 이'로서 꿈틀이다. 껍질에 싸인 움이 트여 꽃봉오리가 벌어지듯, 새벽이 지나 동이 트며 새날이 펼쳐지듯, 막혔던 것을 트고 스스럼없는 관계를 갖듯이 너는 이런 꿈들을 트는 둥지가 되어라. 네가 품은 고귀한 '꿈움'을 살포시 터 환한 '꿈꽃'이 해맑게 피길 바란다."

꿈틀이는 처음엔 똑같은 이름에 적이 실망했으나 '꿈틀이'라는 이름의 참뜻을 알고는 억누를 수 없는 감격과 숙연한 다짐이 들었다.

"꿈틀아, 예전의 네 이름은 몸짓의 꼴이 이름이 되었지만, 지금은 마음의 꼴이 이름이 되었다. 어리석은 이는 아직도 네 이름의 겉 뜻만 가지고 널 비웃을 것이다. 그러나 개의치 말아라. 어리석은 이는 어리석은 대로 내버려두어라. 그들의 평가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네가 가는 길에는 그런 걸림돌도 있지만 널 격려하고 힘을 주는 디딤돌도 많이 있다. 네게 디딤돌이 되는 슬기로운 이, 그는 네 이름의 속뜻을 가지고 널 바라볼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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