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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쓴 성경책

글쓰기/수필

by 종이인형 꿈틀이 2008. 5. 19.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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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쓴 성경책

칠순이 지난 어머니가 신구약 성경을 쓰고 계신다. 눈이 침침하고 팔이 아파서 조금씩밖에 못쓰지만 성경이야기를 종이 위에 들려주고 계신다. 어머니는 어린 아들에게 성경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했기에 어른 아들에게 성경이야기를 보여주려 하시는 것일까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헤어졌으나 어머님의 무릎 위에 앉아서
재미있게 듣던 말 그때 일을 지금도 내가 잊지 않고 기억 합니다.
귀하고 귀하다 우리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재미있게 듣던 말 이 책 중에 있으니 이 성경 심히 사랑합니다.


내가 즐겨 부르는 ‘나의 사랑하는 책’이라는 찬송가이다. 사실 이 찬송의 가사는 나의 신앙고백이 될 수 없다. 나는 어려서 어머니의 무릎 위에 앉아서 성경에 대한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 나는 어릴 적에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지만 어머니는 내가 어른이 된 후에야 교회를 다니셨기 때문이다.
이 찬송을 부르면서 나는 꿈을 꾼다. 꿈속에서 어린 시절로 돌아가 어머니의 무릎 위에 앉아서 성경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모습이다. 어머니의 마음이 이 찬송가에는 고스란히 배어있다.

이제 자식은 커서 품 안을 떠났다. 아들은 어른이 되었고, 어머니는 할머니가 되셨다. 어머니가 신앙을 갖게 되었지만 자식에게 성경이야기를 들려 줄 기회가 사라진 것이다. 내 입장에선 어릴 적 어머니로부터 성경이야기를 듣지 못한 것이 아쉽고, 어머니의 입장에선 자식이 어릴 적에 신앙에 대한 얘기를 해주지 못한 것이 아쉬울 것이다.

고향을 떠난 자식은 일년에 한두 번 겨우 얼굴을 비치는 정도이다. 어머니는 집을 떠나 성장한 자식을 위해 기도를 하신다. 어린 아이에게 성경의 이야기를 하는 엄마의 마음으로 말이다. 이 찬송을 부르다보면 새벽마다 나를 위해 기도하신다는 어머니의 말씀이 떠오른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고향에 갔다. 칠순이 넘은 어머니는 함박웃음으로 자식을 맞으셨다. 아궁이에 군불도 지피시고 이것저것 맛난 반찬도 차리셨다. 이것저것 물어도 보시고, 이런저런 얘기도 하신다. 밤이 깊어지자 어머니의 눈은 우물처럼 쑥 들어갔다. 돋보기를 걸치고 성경책을 읽으시던 어머니는 침침하여 자꾸 눈을 비빈다고 하신다. 이제는 전화할 때 큰소리로 말해야 알아들으시고, 무릎관절이 좋지 않아 걷기도 조금 불편해 하신다.

어머니가 노트 한 권을 보여주셨다. 어머니가 쓰시는 성경책이다. 성경책을 읽기도 쉽지 않은데 그것을 노트에 쓰고 계셨다. 벌써 노트 두 권째이다.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그리고 지금은 신명기를 쓰고 계셨다. 다 쓰시면 나에게 주시겠다고 하셨다. 또박또박 써내려간 글자가 얼마나 정겨운지!

어머니는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하셨다. 글을 잘 쓰시지도 못하신다. 칠순이 지난 어머니가 신구약 성경을 쓰고 계신다. 눈이 침침하고 팔이 아파서 조금씩밖에 못쓰지만 성경이야기를 종이 위에 들려주고 계신다. 어머니는 어린 아들에게 성경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했기에 어른 아들에게 성경이야기를 보여주려 하시는 것일까? 그래서 ‘나의 사랑하는 책’에 나오는 가사는 이제 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그때 일은 지나고 나의 눈에 환하오 어머님의 말씀 기억하면서
나도 시시때때로 성경 말씀 읽으며 주의 뜻을 따라 살려 합니다.
귀하고 귀하다 우리 어머님이 들려 주시던
재미있게 듣던 말 이 책 중에 있으니 이 성경 심히 사랑 합니다.


글 : 박종인 객원기자
2008.05.16
사랑의교회>Godpia>사랑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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