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루 안의 콩 *
물기 흠씬 머금어 싹튼 콩
보드라운 재에 뿌리 내리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잘도 자라는구나
짜개진 머리 무른 뿌리
줄기는 어디 있느냐 잎은 어디 있느냐
꽃이 없으니 열매도 없겠구나
가뭄도 모르고 땡볕도 모른 채
옹달시루 안에 뿌리 내리고
아옹다옹 다투듯이 잘도 자라는구나
----------------------------------------------
북적거리는 버스를 타면
시루 안의 콩나물의 하나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큼직한 머리만 내밀고 숨을 할딱거리는 모양.
시루 안에 자리한 콩.
때때로 주는 물을 날름날름 잘도 마시며
부드러운 재에 무리 없이 뿌리를 뻗치며 자라는 콩나물.
타들어가는 가뭄도 모르고
이글거리는 뙤약볕도 모르고
지랄하는 회오리바람도 모르고
억수처럼 쏟아지는 폭우도 모른 채
작은 옹달시루 안에서 잘도 자란다.
하지만
콩나물은 줄기가 없어.
줄기가 없으니 잎도 없지.
잎만 없는게 아니라 꽃도 없어.
꽃이 없으니 열매도 없지.
머리는 두 개로 갈라져 갈팡질팡하고,
원뿌리는 통통한데 정작 잔뿌리는 없어.
흙에 자리한 콩은
딱딱한 땅거죽을 비집으며 머리를 내밀고
떡잎은 싹을 내어 줄기 되고,
줄기의 잎눈은 잎을 내고, 꽃눈은 꽃을 피워 열매 맺어.
뿌리는 물 찾아 양분 찾아
땅속을 이 잡듯이 설쳐대며
여린 잔뿌리를 멀리멀리 뻗쳐서
제 몸을 만들고 지탱하지.
나는 어떤 모양일까?
제 머리조차 이기지 못해 고개 숙인 콩나물인가,
흙에 뿌리내려 올곧게 자라는 콩인가?
-종이인형-
'글쓰기 >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 (0) |
2001.06.15 |
거울아! (0) |
2001.06.12 |
마음별 (0) |
2001.03.02 |
쑥버무리 (0) |
2001.01.10 |
세밑 눈 (0) |
2001.0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