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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빠진 사람

활뫼지기(큰형)

by 종이인형 꿈틀이 2008. 6. 27.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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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빠진 사람


분당에 행사가 있어 당일로 다녀오는 버스 안에서의 일이다.

오랜만에 고속버스를 타고서 오고가는 여행길은 여유와 평안함을 준다.

불가피하게 자가용을 타고가면 경비도 많이 들지만 운전을 해야 하니 긴장과 피로가 그 다음날까지 간다. 혼자서 갈 때는 대중버스를 이용하면 색다른 맛을 누린다. 행사를 마치고 여동생과 조카들과 함께 심야버스로 전주까지 오려고 자리에 앉았다.


10시30분이 되었어도 차가 출발하지 못해 알고 보니 어느 젊은 남자분이 술에 만취한 상태로 겨우 도착한 것이다. 차표를 요구하니 한참 주머니를 뒤지다가 겨우 찾아서 차에 올랐다. 그 분 때문에 출발시간이 조금 늦었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이다.


모두 다 피곤하여 잠을 청하려고 하는데 계속 혀꼬부라진 소리로 통화를 하는 것이다. 들어보니 사업에 어려움이 있지만 열심히 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참다못해 옆 자리에 어떤 분이 점잖게 충고하지 '미안합니다' 하더니 조용해진다. 한 참을 가는데 버스 안의 앞 자리에 불이 켜진다.

그 분이 기사님에게 소변이 마렵다고 멈추자는 것이다. 연신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휴게소가 아직 멀기에 고속도로에서 잠시 멈추고 기다려야만 했다.


그 이후로 잠이 들려고 하니 또 불이 켜진다. 비틀거리며 이제는 멀미가 날 것 같다며 비닐봉투룰 요구한다. 마침 동생이 앞에 따고 있어 버스 사물함에서 꺼내주었다. 그리고 한참을 가는데 이상한 낌새가 보이며 전등이 또 켜진다. 멀미를 하며 술과 함께 먹은 음식물을 통로에다 토한 것이다.


아이들은 그 속에서도 잠을 자지만 어른들은 다 깨어 그 냄새를 맡아야만 했다. 세 아이를 키운 엄마답게 여동생은 기사님이 준 휴지로 대강 치우면서 마침내 휴게소에 도착했다. 승객이 내린 사이에 기사님은 물걸래로 치우고서 출발하려고 하려는데 문제의 그 취객이 오지 않는다.


필자가 찾아보니 휴게소 식탁 앞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차에 오르자고 권면하니 미안해서 못 가겠다고 거절한다.

기사님에게 보고하니 그래도 모시고 가야 한다며 같이 가서 겨우 차에 태웠다. 이미 정차 시간도 훨씬 지나며 그 한사람 때문에 모든 승객들이 여러모로 피해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전주터미널에 도착하자 제일 먼저 내린 그 분은 승객 한 사람 사람에게 죄송하다며 인사를 드린다. 이미 술은 다 깨어난 것 같다.

조카들 챙기느라 늦게 내린 나에게 그는 손을 잡으며 명함을 요구한다.


괜찮다고 하자 꼭 얼굴을 기억하겠노라 하며 연신 고맙고 미안하다고 한다.

성품은 좋은듯하나 그 술 때문에 많은 사람 들이 피해를 감수해야 했던 것이다. 술 자체보다는 술로 인한 피해는 너무도 심각하다.


이제는 음주를 억지로 권하는 풍습도 사라져야 하며 절제가 더욱 필요한 사회이다. 또 한 그 상황에도 혈기부리지 않고 친절하게 대우한 기사님의 직업에 성실한 마음에 잔잔한 감동을 받는다.

박종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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