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목요일, 목요일은 목욕하는 날.
경찰의장대 대원 23명과 함께 경기도 광주에 있는 중증장애인 시설인 '한사랑마을'에 다녀왔습니다.
그곳의 아이들은 남의 손을 빌리지 않으면 움직이기가 버겁기에, 오늘처럼 목욕하는 날에는 많은 도움의 손이 필요합니다. 뒹굴거나 배밀이하는 아이들을 안고 옮겨서 씻기고 닦고 옷입히는 것을 거들었습니다.
지난달에 왔었던 대원들도 대여섯 있었으나 대부분의 대원들은 처음인지라, 아이들의 낯선 모양을 대하며 처음엔 조금 멈칫거리더니 어느덧 아이들과 곧잘 어울리더군요.
그곳에는 아픈 아이들이 있습니다.
단지 아픈 아이일 뿐입니다. 아프기 때문에 보살핌이 필요할 뿐 눈흘김은 필요없는, 그저 많이 아픈 아이일 뿐입니다.
한 시가 생각나서 올립니다. 동서문학 1999년 여름호에 실렸던 시인데, 지은이는 박정남 시인입니다.
-종이인형-
*** 지워진 아이 ***
1
잘못 쓴 글씨를 지우개로 지워
후- 날려 버리는 것과
잘못 들어선 뱃속의 아이를 지우는 것은
같습니다.
생각해 보면 내 옆에 걸레가 떨어져 있는 것 같은
잠시의 얼룩이 어른거리다 가는
더이상은 아닙니다.
컴퓨터에도 휴지통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2
나는 지워진 아입니다.
나는 딸이라서 지워진 아입니다.
내 언니는 첫딸이라 운이 좋아 태어나고
내 남동생은 태아 감별 검사 끝에 아들이라서
대환영을 받으며 태어났습니다.
나는 어머니의 불안한 뱃속에서
살아 남으려고 요리조리 피해 다녔지만
그날 쇠에 긁히고 찢어져서
검은 피뭉텅이로 녹아 내렸습니다.
내 아버지 어머니는 대구 사람입니다.
그날 같은 병원에서 만난 울보인 친구 엄마는
모 대학의 여성학 교수입니다.
아들을 갖기 위해 자그마치 딸을 넷이나 버린 집의
막내딸 울보입니다.
태어나지 못한 째끄만 우리는 울음소리도 째끄맣게
귀뚜라미 소리 속에 간신히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울보입니다.
나도 세상을 보고 싶고 만지고 싶습니다.
맨 처음 나를 가져 아버지가 사다 준 물복숭아를 까서
어머니가 먹을 때 나도 침을 삼키며 쳐다봤습니다.
내 몸도 분홍 복숭아처럼 익어 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따뜻한 양수 속에 두 달 남짓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춥습니다.
그리고 나는 산산이 찢어져서 아픕니다.
대구의 내 친구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나와 같이 단지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이곳에 온 친구만 해도
한 해 이천팔백 명이 됩니다.
한국 전체로만 일만팔천 명입니다.
아니, 사실은 신문에 보도된 그것보다 많습니다.
우리는 팔이 부서지고 다리가 부러져서
별들이 글썽이며 내려다보는 쓰레기 더미 속에 있습니다.
내 여섯 살에 가고 싶은 유치원에는
짝이 없는 남자애들이 시무룩이 시소도 안 타고
나무 그늘에 노인처럼 앉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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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의 디 차이트지(98년 12월 10일자)는 낙태 실태 조사 특집 기사에서 <죽은 딸들의 나라>라는 제목 하에 대구는 여자 아이 낙태의 경우 세계 최고 기록이라고 규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