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태국도 겨울이지만 기온이 25가 넘습니다.
바닷가에서 해수욕을 하며 살을 태우다가 한국에 되돌아오니 오돌오돌 떨립니다.
시골에서는 결혼식을 하면 잔치를 따로 벌입니다.
부모님이 동네사람들을 위해 돼지를 잡았는데,
그 광경을 큰형인 활뫼지기가 잘 엮었습니다.
-종이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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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돼지 잡는 날 *
여기 시골에서는 애경사가 닥치면 으레 행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바로 서민들이 좋아하는 돼지를 잡는 일입니다.
가까운 농장에서 직접 사 가지고 와서 행사를 하는 가정에서 잡는 것입니다.
이날은 온 동네사람들이 다 나와서 같이 협력하며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눕니다.
조상들의 두레정신이 기계화 영농으로 사라져 가지만,
애경사만큼은 더욱 뿌리를 내려가는 것을 느낍니다.
오늘은 이천에서 공직에 있는 동생(종이인형)의 결혼을 앞두고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께서도 동네 분들을 위해서 조촐한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아침 일찍이 이웃집 평촌어르신과 트럭을 빌려서 농장에 가서
백오십 근 나가는 암퇘지 한 마리를 끌고 왔습니다.
돼지는 차에 싣고 내릴 때만 '꽥' 소리를 지를 뿐 두려워하거나 슬퍼하는 기색이 없습니다.
아마 소나 개 같으면 자기의 처지를 어느 정도 알 것입니다.
그러나 돼지는 자기가 지금 어떤 자리에 왔는지, 조금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사람들이 왜 둘러섰는지를 전혀 모릅니다.
가마솥에선 돼지를 난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깨끗이 목욕시킬 뜨거운 물이 펄펄 끓고 있고,
한쪽에서는 그를 해부할 칼이 놓여 있지만,
그 돼지는 오직 먹을 것만 열심히 찾기 위해 꿀꿀거리며 흙을 주둥이로 파고 있습니다.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땅만 쳐다보고 먹을 것만 찾는 어리석은 돼지의 인생.... ?
시간이 지나서 잔칫집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 왔습니다.
집이 제일 높은 것에 자리잡았기에 그 소리도 잘 들립니다.
이 세상을 떠나는 돼지의 마지막 큰소리(?)를 동네사람들은 초청의 소리로 알고
삼삼오오 모이면서 아낙네들은 집 안으로, 남정네들은 밖에서 서성거립니다.
교회 수련회를 위하여 특별히 준비한 탁자식으로 된 고기 굽는 불판에는 숯불이 타오르고 있고,
평촌어르신이 능숙한 솜씨로 고기를 발라내자 사람들은 숯불에 갈비를 굽기 시작했습니다.
돼지를 잡을 때는 언제든지 맛있는 부분은 즉석 숯불구이로 먹는 것이 전례입니다.
지글지글 구워지는 노르스름한 불고기에는 다른 것이 필요 없습니다.
그저 굵은 왕소금만 적당히 뿌리면 그 맛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시골에서만 누릴 수 있는 정경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고기 굽는 냄새가 그 근방을 진동할 때쯤 되면 돼지의 내장이 드러나며 오줌보가 나옵니다.
어린 시절, 지금처럼 가죽으로 된 공이 없을 때는 새끼를 둘둘 말아 축구공으로 대신 했고,
어쩌다 돼지를 잡는 날에는 이 오줌보를 어른들이 떼어주면
이것을 물로 씻고 공기를 넣어서 입구를 봉하면 아주 좋은 배구공이 되었습니다.
어느덧 점심때가 되면 내장국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국에다 밥 한 술씩 말아서 드시고 또 한쪽에서는 순대를 만드는 작업을 합니다.
창자를 밀가루로 마구 문질러 씻으면 냄새도 없어집니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옛날에 먹을 것을 조금이라도 얻고자 했던 조상들이 만들어낸 지혜가 엿보여집니다.
돼지 한 마리가 온 동네 사람들에게 풍성하고 넉넉한 인심과
두레 공동체의 끈끈함을 이어주는 마을 잔치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저의 마음 한 구석에는 불안한 마음이 있습니다.
급격한 도시 집중으로 갈수록 빈집과 나홀로 사는 할머니들이 많아집니다.
젊은 사람들은 능력만 있으면 읍내의 아파트에 살면서 농사는 시골에서 짓고 있는 현실입니다.
앞으로는 돼지고기는 얼마든지 먹겠지만
바로잡아서 즉석에서 먹고 나누는 전통은 사라질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잡을 사람이 점점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비단 이일뿐만 아니라 수천 년 내려온 좋은 전통들이 하나둘씩 사라져가는 현실이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활뫼지기 박종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