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나무 강대상 *
시골목회를 준비할 때부터 마음에 한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배당의 강대상을 손수 만들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이 생각을 하게 된 동기는 구약의 에스라가 특별히 지은 나무강단에 섰다는 기록을 봤을 때고,
또 하나는 고향교회에 있을 때 전도사님이 옆 교회의 강대상을 보고 그대로 만든 것을 보았을 때입니다.
교회를 신축했기 때문에 이에 맞는 강대상과 의자를 만들고자
필요한 재료를 구하는 중에 마침 아주 좋은 나무를 발견했습니다.
해리에서 아산으로 가는 길가에 아주 큰 아름드리 소나무가
수년만에 오는 강한 태풍으로 그만 넘어져 버린 것입니다.
도로가 아스팔트로 포장되기 전에는 그 뿌리가 길가로 뻗어 나왔던,
근방에서 보기 드문 토종 소나무였던 것입니다.
누가 봐도 큰 재목감이었고 그 수형이 우산처럼 생긴 멋진 나무인 것입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군청에서 지정하여 관리하는 나무였습니다.
도로를 포장하면서 뿌리를 절단했고,
그 나무 위쪽에는 밭을 개간하는 바람에,
또 일부분의 뿌리가 잘리는 약한 상태에서 거센 태풍에 길가로 넘어진 것입니다.
군청에서는 도로통행에 지장을 주는 부분은 즉시 정리를 하였지만 나머지는 그대로 길가에 두었습니다.
고창으로 오가는 도중에 며칠째 누워있는 나무를 보면서 주인이 누구인지,
어떻게 구할 수 있는지는 몰랐습니다.
동네 청년과 예배당 건축 때문에 그곳을 지나가는 중 밭에서 일하는 밭주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밭주인이 나무를 치워달라고 부탁을 하기에 군청에 연락을 했는데,
관리 담당자는 나무를 가져가도 좋다고 흔쾌히 승낙을 하였습니다.
통나무 강대상을 만들기에 아주 적당한 재목이기에
트럭 2대에 나무를 토막내어 집으로 가져오는데 성공하였습니다.
하루만 늦었어도 다른 사람이 가져갈 뻔했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나무의 나이는 칠십년이나 되었고 밑동은 한 아름도 더 되었습니다.
밑동 부분을 강대상으로 정하고, 나머지는 통나무 의자를 세 개 만들고,
그래도 남은 부분은 강대상 옆에 놓는 화분대를 두 개 만들었습니다.
그야말로 가장 적은 비용에 가장 튼튼하고 토속적인 강단을 만들게 됐던 것입니다.
강대상의 중간에 전기톱으로 홈을 내고
의자는 일일이 톱으로 모양을 잡고 연마기로 다듬어서 불로 나뭇결을 살리며
틈틈이 손질을 하다보니 일년이나 걸렸습니다.
기도를 하려고 강단에 올라와서 앉으면 통나무 의자의 또렷한 나이테가 눈에 들어옵니다.
가장 안의 선명한 나이테가 바깥으로 퍼지며 커질수록 좁고 희미하게 둘러 있습니다.
그 나무의 살아온 내력이 고스란히 보여집니다.
나이가 얼만지, 어느 계절에 잘 자란지, 어느 때에 양분과 수분이 많았는지,
언제 가지를 뻗었는지, 그리고 어느 때에 상처가 있었는지 등등.
결코 숨길 수 없는 나무의 일생이 그 속살에 보여집니다.
나라를 빼앗기던 시대에 뿌리를 내렸던 나무였고, 민족의 비극인 6.25 사변을 보았을 것이고,
땔감으로 수난을 당했을 시대에도 용케 견뎌왔던 나무입니다.
수십 년을 살아오며 수많은 태풍과 수해에도 반듯하게 자라난 나무입니다.
그 인고의 세월을 나이테는 아름다운 무늬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추운 겨울에 논에 얇게 얼어있는 얼음장의 모습은 물결의 모양을 그대로 박아놓은 형상인데,
나무의 나이테도 그와 같은 모양을 담고 있었습니다.
살아온 흔적이 하나의 아름다운 미(美)로 드러내는 통나무 의자를 보면서
마음에 들려오는 소리가 있습니다.
'나도 언젠가는 지나온 시간들이 절대자 앞에 낱낱이 드러날텐데....'
'그분이 의도하신 보시기에 좋았더라 라는 평가를 받아야 할 텐데.....'
겉모습만이 아닌 가장 깊은 속마음까지 벌거벗은 자리에서
부끄럼 없는 모습이 되어 에덴동산에서 누렸던 그 사귐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고난의 시대를 살다간 시인이 말했던 것처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소망했던
그 시인의 말이 더욱 실감 있게 다가옵니다.
예배당 회중석에는 또 하나의 연륜을 가진 나무가 긴 탁자 식으로 놓여 있습니다.
나뭇잎은 식용으로도 이용하는 아주 단단하고 곧은 쭉나무라고 하는 붉은 나무입니다.
옛날에는 돛단배의 깃대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 나무는 동네 할아버지께서 베어가라는 부탁을 받고 가져온 것입니다.
이분의 연세는 칠십이 넘은 분인데,
어렸을 때부터 이 나무가 있었다고 한 것을 보니 칠십 년은 넘게 자란 나무입니다.
이 나무를 베어 일년을 자연 건조했다가 제재소에서 절반을 켜서 탁자를 만들었습니다.
의자가 없는 온돌식 바닥이라 이 나무는 여러 가지로 유익하게 사용됩니다.
책을 놓는 책상도 되고, 행사 때는 식탁도 되며, 기도회를 할 때는 강대상 역할도 합니다.
그리고 회전하는 바퀴를 달아서 자유로이 옮길 수 있도록 해서 편리하게 사용한답니다.
앞으로도 좋은 재료가 생기는대로 다듬고 깎아서 토속적인 성구(聖句)를 만들고자 합니다.
도시에서 살다가 시골로 내려가니 하잘 것 없는 시골 것들도
저의 눈에는 아주 요긴하게 보여서 적절하게 이용하는 즐거움을 누리곤 합니다.
- 활뫼지기 박종훈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