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랑비가 종일 내렸습니다.
봄비 후엔 성큼성큼 날이 풀리고
가을비 후에 오싹오싹 추워집니다.
새벽 2시.
다행이 비는 멎었습니다.
당직이라서 순찰을 하는 내 눈에는
수정알처럼 맑은 별이 오롯이 어렸습니다.
겨울 밤하늘을 수놓는 오리온이
어름장처럼 시린 하늘에 알알이 박혔습니다.
이젠 정말 겨울이 이만큼 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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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억지 *
비가 내린다
토닥토닥 내린다
꼬리를 매달고 달리는 살별처럼
추위를 그러안고 내리꽂는 입동비
다섯 잎송이 가락진 잣잎 끝에
가을은 방울 이뤄 그렁그렁 맺혔으나
얀정없는 잔바람에 맥없이 떨구었다
늘푸른 상록수 여전히 꼿꼿하고
빛 바랜 낙엽수 잎 떨궈 앙상함은
밤하늘 백조가 철따라 날아가고
사냥꾼 오리온이 자리잡은 까닭이다
눈치를 살피며 머뭇대던 동장군이
입동 문턱 건너자 저벅저벅 다가서는데
생떼 쓰는 젖먹이처럼 나무에 매달린 저 가랑잎
생에 대한 미련인가 죽음에 대한 오기인가
입동 지난 이즈막엔
아등바등 달린 채 고스러진 이파리보다
떨구어 썩어지는 잎사귀가 더 아름답다
-종이인형-
======== 토박이말 풀이 ==========
* 가락 : 가느스름하고 기름하게 토막이 진 물건의 낱개.
* 고스러지다 : (벼·보리 등이) 벨 때가 지나서 이삭이 꼬부라져 앙상하게 되다.
* 그러안다 : 두 팔로 싸잡아 껴안다.
* 그렁그렁 : 액체가 많이 괴어 가장자리까지 찰 듯한 모양.
* 백조 : 여름철의 대표적인 별자리.
* 살별 : 태양열의 영향으로 가스와 미진을 분출하고, 흔히 타원 궤도를 그리며 운행함. 꼬리별. 혜성(彗星).
* 생떼 : 생억지로 쓰는 떼.
* 아등바등 : 몹시 억지스럽게 자꾸 애를 쓰거나 우겨 대는 모양.
* 얀정 : 인정(人情)을 얕잡아 쓰는 말.
* 오리온 : 그리스 신화의 거인 사냥꾼이며, 하늘의 적도 양쪽에 걸쳐 있는 겨울철의 대표적인 별자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