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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늘보야, 미안!

시골뜨기 브런치

by 종이인형 꿈틀이 2022. 10. 20.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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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를 생각하면 빛이 떠오르듯 게으름을 생각하니 부지런함이 생각났다. 또한 부지런함을 생각하니 개미가 떠올랐다. 개미는 참 부지런하다. 쉼 없이 움직이는 개미를 보노라면 누구라도 그 부지런함을 인정하며 고갤 끄덕일 것이다. 성경도 개미의 부지런함을 인정하며 게으른 자더러 개미를 보며 지혜를 얻으라고 조언하고 있다. 반면 게으름을 생각하니 나무늘보가 떠올랐다. 거의 종일 나무에 매달린 채 움직이지 않는 나무늘보. 어쩌다 움직여도 느릿하기가 달팽이걸음이다. 참을 수 없는 느린 움직임이다. 보는 이가 갑갑할 노릇이다.

 

 

인간도 개미형이 있고 늘보형이 있다. 개미형은 하여튼 열심히 움직이는 반면 늘보형은 누가 시키지 않는 한 좀체 움직이지 않는다. 조직의 일은 개미형이 벌이고 챙긴다. 경쟁사회에서 개미는 살아남겠지만 늘보는 살아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야 마땅하다. 그렇지 않은가!

 

그나저나 개미는 예전에도 살았고 지금도 살아있고, 마찬가지로 나무늘보도 여전히 살아있다. 둘 다 나름의 사는 방법으로 살아왔다. 넓은 저수지의 물고기도 서로의 영역에서 살아가듯 삶의 방식에도 나름의 영역이 있지 않을까? 자기 몸의 구조와 주변 환경과의 어울림을 고려한 나름의 적응일 것이다. 나무늘보는 느린 대신 적게 먹고, 주변 색에 따라 자신의 털색을 바꾸기도 한다. 스스로 그림자가 되고자 함인지 거꾸로 매달린 생활을 취했다.

 

나무늘보가 개미처럼 총총걸음으로 움직이기 바라는 것은 자동차가 물 위를 달리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그것은 거북이더러 육지에서 토끼처럼 달리기를 바라는 것이고, 토끼더러 바다에서 거북이처럼 헤엄치기 바라는 것과 같다. 각자마다 핑계 아닌 형편이 있는 것이다. 

 

살찐 사람을 보면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린다. 그가 게을러서 살이 쪘다고 여기는 것이다. 난 그랬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은 올바르지 않다. 그래서 난 아내에게 혼난다. 아내는 말한다. 그들이 살찌고 싶어서 살이 쪘겠냐는 것이다. 물만 먹어도 살이 찌는 체질도 있다는 거다. 그렇다. 난 겉으로 보인 그의 살만 봤지 그 몸의 체질과 그의 사정은 모른다.

 

살이 찌는 까닭은 다양하다. 예전에는 대체로 잘 사는 사람이 살쪘고 못 사는 사람은 말랐다. 하지만 지금은 반대라고 봐야 한다. 잘 사는 사람은 골라서 먹을 수 있다. 몸에도 좋으면서 살이 덜 찌는 음식을 골라먹고, 푸성귀와 과일을 먹고, 거기다가 별도로 살을 빼는 기능성 식품도 챙겨 먹을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살을 빼기 위한 운동은 물론 시술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못 사는 사람은 골라 먹을 형편이 아니다. 값싼 음식을 먹는다. 대표적인 것이 패스트푸드다. 이것들은 대체로 살을 찌우는 음식이다. 그들은 별도로 운동할 겨를도 없다. 그 시간에 돈을 벌어야 한다. 살을 빼기 위해 다이어트 식품을 살 돈도, 시술을 받을 돈도 없다. 그래서 살찔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내가 그들에게 보낸 곱지 않은 눈길은 나쁜 것이다. 길 가다가 무심코 던진 돌멩이가 개구리를 맞힌 꼴이다. 난 나쁜 놈이다. 

 

다시 게으름을 생각한다. 그리고 나무늘보를 생각한다. 나무늘보를 본 적이 한 번도 없으면서 이름만 듣고 느리고 굼뜬 게으름뱅이라고만 여겼다면 난 나빴다. 난 나무늘보를 잘 알지도 모르면서 얕잡아 봤구나. 나무늘보야,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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