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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술래잡기

시골뜨기 브런치

by 종이인형 꿈틀이 2022. 10. 20.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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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사르르 옷섶을 풀어 시나브로 알몸을 드러낸다. 출렁거리며 밀려와 연신 뭍에 기어오르는 바닷물은, 실은 슬그머니 뒷걸음치는 썰물이다.

 

물 빠진 벌거숭이 앞바다는 참 보드랍다. 거기엔 맛조개가 살고 백합이 살고 갯지렁이가 산다. 바다가 팔을 걷어붙이고 두 팔을 벌리면 아이들이 그 아름에 안긴다. 아이는 바다 품에서 더 어린아이로 변해간다. 개펄은 아기집(子宮)처럼 질펀하고 촉촉하다. 실재 아기집이 작은 바다다. 

 

먼바다에서 다시 메밀꽃이 일며 밀물이 밀려오면 아이들도 다시 뭍으로 나온다. 주섬주섬 옷을 입은 바다는 옷고름을 맨다. 바다는 날마다 옷맵시를 꾸미며 알까기를 한다. 펄에는 수많은 죽살이가 있다. 바다는 삶의 뿌리이자 바탕이다. 하루의 해도 바다에서 나서 바다에서 진다. 

 

서해는 동해보다 더 진솔하다. 동해는 조금 때의 썰물에도 좀체 숨은여(暗礁)를 드러내지 않지만, 서해는 사리 때도 알섬의 뿌리까지 고스란히 드러낸다. 동해바다는 품을 꼭꼭 감싸 안은 수줍은 처녀라면 서해바다는 젖가슴 내보이는 젖먹이 엄마다. 

자신의 부끄러움도 잊은 채 젖가슴을 드러내어 아이에게 젖을 먹일 수 있는 것은 생명을 품는 고귀한 마음에서 우러난 것이다. 동해에서 해돋이를 보면 설레고 희망이 들지만, 서해에서 해넘이를 보면 차분함과 아늑함이 감돈다. 

 

고향 가면 동호해수욕장엘 자주 간다. 어려서부터 바닷바람을 맞은 탓에 뭍 쪽으로 기울어져 자란 해송이 인상적인 곳이다. 그곳에 가면 바닷바람이 먼저 귓불을 스치며 알은체를 하고 재잘거리는 파도소리가 환영식을 펼친다. 

내 눈길을 가능한 한 멀리 두려 한다. 적어도 거기엔 내 눈길을 가로막는 것이 없으니까. 하지만 내 눈길은 고작 십 리도 못 가 더 이상 나가지 못하고 만다. 매양 가까운 것만 보며 살다 보니 닭장 속의 독수리처럼 멀리 보는 재능을 잃어버린 것이다.

 

동호해수욕장의 해당화 동산은 가장 아름다운 해넘이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하늘엔 구름이 까치놀로 물들고, 바다와 갯벌은 햇빛을 흩뿌리며 찰랑거린다. 낮의 굼뜬 해와 달리 해 질 녘의 해는 잰걸음으로 수평선을 넘어간다. 

 

고창과 부안 사이에 있는 곰소만은 국내 최대의 바지락 생산지이다. 물 빠지면 걸어갈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로 너른 갯벌이 펼쳐진다. 고창갯벌은 생물다양성이 풍부하며 보호가치가 큰 지역으로, 우리나라에서 일곱 번째로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지난해에 주일학교 아이들을 데리고 갯벌체험을 갔었다. 경운기를 타고 물 빠진 갯벌을 한창 들어가서야 중간 갯벌에 도착했다. 아이들은 갯벌에서 보물찾기 하듯 바지락을 찾고 있었다. 숨바꼭질하듯 꼭꼭 숨은 바지락을 캐는 아이들은, 갯벌이 더 이상 더러운 진흙창이 아니라 생명의 터전임을 느꼈으리라. 이 숨바꼭질은 멈추지 말고 이어져야 한다. 술래잡기는 바다가 숨 쉬며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맥박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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