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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감당할 수 있나요?

시골뜨기 브런치

by 종이인형 꿈틀이 2022. 10. 20.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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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벌침을 맞았다. 지난번에 맞은 그 벌이다. 호리호리한 쌍살벌. 황금빛 바탕에 검은 띠가 새겨진, 새침한 듯 갸름한 몸매를 지닌 벌이 내게 다가와 침을 놓고 갔다. 쌍살벌은 말벌처럼 생겼지만 마른 외모 덕에 '살 뺀 말벌', 다이어트한 말벌'이라고도 부른다. 이번엔 오른손 등이다. 바늘로 찌른 듯 따끔하다가 그 침이 뜨거운 불주사인 양 찌르르 전해온다. 벌은 이미 침을 놓고 떠났지만 뜨끔한 통증은 촛불 심지처럼 계속 타올랐다.

 

주의를 살펴보니 넓은 비비추 잎 뒷면에 벌집이 보인다. 벌집은 벌에 쏘인 후에 자세히 찾아보면 그때서야 보인다. 방에 들어가서 스프레이 모기약을 가지고 나왔다. 처음부터 조준을 잘해야 한다. 벌집 주변에는 항상 서너 마리의 보초 벌들이 두리번거리는데, 우선 이들을 먼저 제압해야 한다. 벌집 주변을 맴돌고 있으므로 약간 거리를 두어 모기약이 넓게 퍼지게 하여 첫방에 보초병들이 모두 맞아 정신을 차릴 수 없게 한 후, 연속해서 소방호스로 물 뿌리듯 흔들어대며 주변의 벌들에게 모기약을 뿌려야 한다. 

 

걔 중에는 필사적으로 내게 달려드는 벌도 있다. 그러면 나는 2차 피해를 볼 수도 있다. 만약 그러더라도 모기약 뿌리기를 멈추면 안 된다. 벌집을 향해 집중포화를 해서 집안에서 나오는 벌들에게 약을 맞춰야 한다. 약을 맞은 벌들은 바로 죽지는 않는다. 약을 맞고도 비틀거리며 난다. 하지만 상대에게 펀치를 얻어맞은 권투선수처럼 정신을 못 차린다. 그러므로 겁내지 말고 계속 뿌려야 한다. 몇몇은 내 사정권을 벗어나 달아나기도 한다. 그들을 쫓아서 약을 뿌려야 한다. 그들이 나를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다시 벌집을 향해 뿌려야 한다. 벌집에서는 벌이 계속 기어 나온다. 집중포화 후 모기약이 기운이 안개처럼 자욱하면 몇몇 벌들은 다른 곳으로 달아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벌들은 벌집 아래 바닥에 떨어져 꾸물대거나 기어 다닌다. 벌집을 떼어내어 발로 밟아서 속의 애벌레까지 죽여야 전투는 끝난다. 

 

이 전투는 벌의 선재공격에 대한 나의 보복공격이다. 내 피해는 소총 한 방이지만 상대의 기지는 미사일 폭격을 받은 듯 완전히 파괴되었다. 사실 따지자면 선제공격은 벌이 먼저 했지만 실제로 도발한 것은 내가 먼저였다. 의도적으로 그들의 집을 도발한 것은 아니었다. 난 그들이 있는 줄도 모른 채 나무를 다듬고 풀을 베다가 그들의 집을 건드렸고, 그들 중에 한 벌이 내게 경고하기 위해 총을 한 방 쐈을 뿐이다. 그 한 방이 그들을 멸망에 이르게 한 것이다. 

 

시작은 그들이 내 영역 안에 터를 마련한 것이다. 벌은 인간과 거리를 두고 집을 지어야 한다. 인간은 벌이 공격할까 봐 두려운 나머지 벌집을 보면 나중 위험을 없애기 위해 벌집을 부순다. 사실 벌이 괜히 인간을 공격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인간 가까운 곳에 벌이 집을 짓다 보면 의도치 않게 서로 부딪힐 수도 있다. 그러면 인간은 벌에 쏘이게 되고, 벌집은 인간에 의해 파괴된다. 서로 피해 보는 것이다.

 

나는 거의 매주 벌침을 맞는다. 한의원에서 봉침을 맞는 사람은 자기가 원해서 맞지만, 정원에서 벌침을 맞는 나는 싫지만 얼떨결에 맞고 있다. 벌에 쏘이면 한번 따끔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쏘일 때 따끔하고, 그 후 1~2분 사이에 주사를 잘 못 놓는 간호사가 다시 주사를 놓듯 찌릿찌릿 통증이 있고, 5분 후부터는 벌침 맞은 곳이 부어오른다. 

 

부은 손은 코끼리 발처럼 퉁퉁하다. 벌 쏘인 오른 주먹이 빵빵한 물풍선 같다. 그 후로는 며칠간 얼얼하고 가렵고 불쾌한 느낌을 안고 살아야 한다. 일주일 정도 지나면 증상이 나아진다. 그리고 다시 일주일 후에 벌침을 맞는다. 난 이렇게 몇 주째 매주 토요일마다 벌침을 맞고 있다. 

 

작업을 할 때는 아랫도리와 윗도리가 한통인 작업복을 입고, 망사로 얼굴을 가린 모자를 쓰고, 목장갑을 쓰고 하는데도 작업을 하다 보면 벌에 쏘이고 쐐기에 쏘인다. 이번에 벌에 쏘인 손도 분명 장갑을 꼈다. 그런데도 벌침이 장갑을 뚫고 내 살에 박힌 것이다. 벌에 쏘인 후 목장갑을 두 겹 끼고서 작업을 했다.

 

 

난 주말마다 산장엘 간다. 세컨드하우스로 마련한 곳이다. 은퇴 후에는 자주 이용하겠지만 지금은 주말에만 가서 주변을 정리한다. 봄에는 정리할 것이 별로 없다. 아직 풀도 덜 나고 나무도 손 볼 것이 별로 없다. 하지만 여름이 시작되는 6월 이후에는 일주일에 한 번 가지고는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푸나무가 자란다. 마른 잔디밭이 불 번지듯 곳곳에서 풀이 돋아난다. 뽑아도 뽑아도 또 나오는 풀은 한국전쟁에서 중공군의 인해전술처럼 나타나고, 한번 나온 풀은 어찌나 쑥쑥 자라는지 괄목상대할 지경이다.

 

나무도 마찬가지다. 봄에 잎눈이 나오는 것은 귀엽다. 참새 부리 닮은 올망졸망한 잎눈은 앙증맞게 싹을 틔운다. 꽃눈도 눈을 떠서 활짝 피면 보는 사람 눈이 즐겁다. 봄 지나면 나무는 천방지축 아이처럼 쑥쑥 자란다. 덥수룩하게 자라는 가지를 정리하지 않으면 금방 너저분한 산발머리 꼴이 되고 만다. 여름이 다가오면 전원생활은 덩달아 바빠진다. 

 

 

 

주말에 산장 가면 집 주변의 정원과 울타리의 풀나무를 정리하는데에 거의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가 벌침을 맞는 것이다. 이때 내가 맞는 벌은 쌍살벌인데, 이 벌들은 넓은 풀잎 뒷면이나 자잘한 나뭇가지에 집을 짓기 때문이다. 풀이 한창 자랄 이른 여름에 벌들도 한창 집을 짓고 번성할 때다. 그들 중에는 내가 관리하는 정원에 침범하여 집을 짓는 이들이 있는 것이고, 정원을 관리하는 나는 그들의 집을 건들 수밖에 없고, 자기 집이 위험을 느낀 그들은 나를 공격할 수밖에 없고, 공격당한 나는 그들을 몰살하여 다음에 내가 피해 입을 우려를 없애야 한다. 

 

환경을 생각하는 나는 벌도 환경거리의 하나로서 존중한다. 하지만 내 영역에 대한 방어는 철저하다. 내가 그들의 영역에 침범했을 때 나를 공격했듯이, 나도 내 집 주변의 마당과 울타리 안에서 그들이 집을 짓고 활보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이는 벌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동물들에게도 해당된다. 지네, 두더지, 벌, 뱀 등등 집 주변 생활공간에서는 그들은 내 눈에 띄면 나로부터 공격을 받을 것이다. 그것은 내가 전원생활을 하며 자기 보호를 위해 자위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마당 작업을 하다 보면 두더지굴을 자주 보고, 지네도 자주 보게 된다. 이들은 별로 무섭지 않은데 뱀은 신경이 쓰인다. 지난번에 본 뱀은 마당 아래 돌 틈에서 본 살모사였다. 나는 뱀이 있는 줄도 모르고 풀을 뽑고 있었고, 그 살모사는 돌 틈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살모사를 본 것은 불과 50cm 거리를 두고서 였다. 멈칫하며 눈이 마주친 순간 섬찟했다. 독사는 자기 독을 믿는 구석이 있어서인지 인기척이 있어도 뭇 뱀처럼 다른 곳으로 달아나지 않고 똬리를 틀고 있다. 살모사와 나는 서로 노려봤다. 나는 들고 있던 톱으로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살모사는 몸을 돌려 스르르 돌 틈으로 도망갔다. 나도 도망갔다. 

 

도시에 사는 사람 중에는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 꿈은 꿈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전원생활의 현실은 앞서 내가 설명한 일들이 흔하다. 운치 있게 깐 잔디밭은 잠시 한눈팔면 온갖 잡초가 무성한 풀밭이 되어버리고, 예쁘게 키운 꽃나무 울타리는 손 보지 않으면 지저분한 수풀이 되고 만다. 마당에 앉아 차를 마시려고 하면 욍욍 거리며 달려드는 모기 때문에 이내 안으로 들어가야 하며, 어느 틈으로 들어왔는지 모를 파리는 방안을 휘젓고 다니고, 이따금씩 나타나는 지네에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한다. 말벌은 집 지붕 아래에 허락도 없이 제 집을 짓고, 이따금 진입로와 마당에서 뱀이 보는 것도 종종 있는 일이다.  

 

이런 것은 아스팔트 위의 빌딩숲이 아닌 흙길 위의 나무숲의 전원생활에서는 아주 흔한 장면이다. 꾸물거리는 벌레를 끔찍하게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벌레를 싫어하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무섭거나 치가 떨리지는 않는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나방이나 애벌레를 보면 강도 만난 듯 소스라치게 놀라며 기겁하여 비명을 지른다. 정말 정말 벌레가 싫은 것이다. 

벌레를 혐오하는 사람은 꽤 많다. 이런 분은 시골에 살 수 없다. 시골은 원래 그런 곳이다. 시골집을 아무리 철저하게 방충망을 치고 이중문을 달았더라도 아파트처럼 파리와 모기를 안전히 막을 수는 없다.  로마의 법처럼 시골의 법이 있는 것이다. 주민세를 내듯 시골에 살면 일종의 세금을 내야 한다. 전원생활세라고 할까? 파리, 모기, 지네, 지렁이, 뱀이 주변에서 나올 수 있다는 것. 세금을 내지 않고서는 그 나라에 살 수 없듯이 전원생활세를 내지 못한 사람은 전원에서 살 수 없다. 

 

꿈에 그리던 전원생활은 꿈에서나 꾸고 현실에서는 펜션에서 누리시길 권한다. 무턱대고 시골살이 다짐하고 내려왔다가 두 해도 못 견디고 올라가느니 우선은 리허설처럼 시골살이를 전세 등으로 살아보고, 전원생활세를 감당할 만하거든 본격적인 전원생활을 하는 것을 추천한다. 전원생활은 그리운데 전원생활세를 낼 자신이 없다면 이따금 풍광 좋은 곳에 깔끔하게 지어진 펜션을 이용하며 전원생활 맛보기를 하는 것이 좋겠다. 

 

난 시골생활을 감수할 만하다. 오늘도 벌에 쏘여 퉁퉁 부은 손이 간지럽고 거북하지만 그러려니 한다. 고상하게 표현하면 전원생활이지만 노골적인 표현은 시골살이다. 시골살이가 다 그렇다. 그래도 시골살이를 한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시골에 사는 것은 나름 이유가 있다. 하지만 그 이유를 말할 순 없다. 사랑을 말로 표현할 수 없듯이 전원생활도 그렇다. 살면서 알아가는 거다. 

시골살이, 감당할 수 있거든 해 보시라. 아니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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