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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계[木鸂], 나의 호

살음살이/사는 얘기

by 종이인형 꿈틀이 2014. 11. 20.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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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영현 선생님과 지리산에 갔다오는 길에 선생님은 내게 아호[雅號]를 지어주셨고, 나는 그 호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내 이름과 성향이 부드러우니 호는 강한 느낌이었으면 좋겠다며 목계(木鸂)가 어떠냐고 물으셨다.

자신의 감정을 완전히 통제할 줄 알고, 상대방에게 자신의 광채나 눈초리를 보여주지 않더라도 접근할 수 없는 위엄을 보여주는 사람을 '목계지덕'을 지녔다고 말한다. '목계'란 나무로 만든 닭인데, 나무로 만든 닭처럼 완전히 자신의 감정을 제어 할 줄 아는 능력을 목계지덕이라고 한다. 

이 이야기는 장자의 <달생(達生)>편에 나오는 내용이다.

어느 왕이 투계를 좋아하여 기성자란 사람에게 최고의 싸움닭을 구해 최고의 투계로 만들기 위한 훈련을 맡겼다. 기성자는 당시 최고의 투계 사육사였는데 맡긴 지 십일이 지나고 나서 왕이 기성자에게 물었다.

"닭이 싸우기에 충분한가?" 기성자는 단호히 대답했다.
"아닙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닭이 강하긴 하나 교만하여 아직 자기가 최고인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헛된 교만과 기운을 믿고 뽐내는 자세를 버리지 못하였다는 대답이었다.

다시 십 일이 지나 왕이 또 묻자
"아직 멀었습니다.
교만함은 버렸으나 상대방의 소리와 그림자에도 너무 쉽게 반응합니다."
상대방의 소리와 그림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조급함을 버리지 못했다는 말이다.

십 일이 다시 지나 왕이 또 묻자
"아직 멀었습니다. 조급함은 버렸으나 상대방을 노려보는 눈초리가 너무 공격적입니다.
그 눈초리를 버려야 합니다."
이 뜻은 상대방을 질시하는 공격적인 눈초리를 못 버렸다는 것이다.

십 일이 지나고 또 묻자,
"이제 된 것 같습니다. 이제 상대방이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아무 반응을 하지 않습니다.
이제 완전히 마음의 평정을 찾았습니다. 나무와 같은 목계가 되었습니다.
어느 닭이라도 이 모습만 봐도 도망갈 것입니다."


장자의 이 고사에서 말하는 최고의 투계는 목계이다. 자신이 제일이라는 교만함을 버리고, 남의 소리와 위협에 쉽게 반응하지 않으며, 상대방에 대한 공격적인 눈초리를 버린 나무와 같은 목계는 인간으로 말하면 완전한 자아의 성취와 평정심을 이룬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김영현 선생님이 주시는 목계라는 호를 기꺼이 받아들임은, 내가 현재 목계의 경지에 이르러서가 아니라 목계의 경지에 이르고 싶은 바람에서다.

내 마음은 작은 바람에도 쉽게 흔들리는 사시나뭇잎같다. 이런 마음을 다잡아 고원의 나목처럼 흔들림없는 마음가짐을 가지고자 목계라는 호를 나의 아호로 정하고자 한다.

 

이리하여 사이버공간에서 주로 사용하는 <종이인형> 닉네임과, 새로 지은 <목계> 아호를 두루 나의 별칭으로 사용코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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