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음성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이 신앙생활도 굴곡도 있고, 갈등과 방황의 시간도 있다. 그럼에도 변함없이 주님을 섬기며 따르는 것은 나름대로 각자 영적체험이 있었기 때문이라. 하나님을 만난지 어언 25년이 지나가며 목회자로 부름 받은 이 현실에 감사할 뿐이다. 뒤돌아보면 중요한 결단의 순간에 내 나름대로 성령님이 주시는 마음의 음성을 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영적체험이 방황 없이 오직 한길로 갈 수 있었던 힘이었음을 지나고 보면서 느낀다.
스무 살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세상을 새롭게 보았다. 나이답게 뜨거운 열정으로 주님 섬기며 농촌에서 장로로 봉사하겠다는 생각으로 열심을 다했다.
초라한 외딴 시골 교회당에서 담임 전도사님이 학교로 출타하면 나라도 교회당을 지킨다며 스스로 철야 기도하며 밤을 새웠다.
말이 철야지 잠을 예배당에서 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캄캄한 새벽에 기도하는데 함부로 눈을 뜨지 못할 거룩한 분위기에 횝싸이게 되었다.
순간 하나님의 임재를 강하게 느끼며 그동안 현실적인 증언부언 하는 기도가 사라지고 나도 모르게 떨리는 기도를 드리게 되었다. ‘주님 그저 주님의 합당한 도구로 써 주소서’ 정확한 것은 기억에 없지만 이런 식의 기도를 드렸던 것이다. 기도에 무조건 내 생각을 가지고 달라고만 하는 평상시 기도를, 아니 바로 그 전 시간에도 중얼거렸는데 그 순간에는 감히 그렇게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때 목회자로 부름 받은 것 같다.
두 번째의 음성은 신학교를 다니며 사역의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때였다. 목회자로 서기 위해 학교에 간 것보다는 내가 믿는 생명의 진리를 바로 알고 믿고 배우고자 타의 반, 자의 반으로 공부하게 되었었다. 하지만 경제적 뒷받침 없는 신학의 과정은 많은 고생이 뒤따랐다. 결국 냉정하게 나의 진로를 놓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계속 이 과정을 거쳐야 하는가? 아니면 일반성도로 봉사하며 직업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이었다.
매주 금요인 날 학우들과 기도원에서 철야하고 집으로 왔다. 그때까지도 아무런 감동 없이 일상적인 일로 집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간밤에 기도한 내용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마음에 뜨거운 감동과 확신이 오는 것이다. ‘농촌으로 가라 너의 어린시절 꿈을 가졌듯이, 농촌에서 복음을 전하며 농촌을 살리는 일을 해라’ 라는 강한 응답이 온 것이다.
그러자 희미한 안개 같은 모든 문제가 일시에 확 뚫린 기분이었다.
그 이후로 농촌 목회자로 부름 받은 것을 확신하고 이 곳 궁산에 오기까지 준비과정을 거쳐 실제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 때의 음성이 지금도 변함없이 흔들리지 않은 사명이 된 것이다.
세 번째의 주의 음성은 결혼을 앞두고 기도하면서 주님의 뜻을 구하였을 때다. 나름대로 삼 일간 지금의 아내를 놓고 최종 결정을 위해 기도하는데 마음속에 말씀을 강하게 들려 주셨다.
로마서15장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당시 아내는 지체부자유한 모습이고 일찍 양부모를 여의고 오빠의 손에서 조카와 함께 자식같이 살아온 인생이었다. 주의 종으로 부름 받은 분들의 삶이 한결같이 혹독한 고난의 과정을 격고서 순종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거기에 비하면 나에게는 큰 은혜로 구원하여 평탄하게 귀한 일을 맡겨 주신 것은 바로 이 때를 위함이라는 감동이 왔다. 양가의 반대도 있었지만 주님의 뜻이기에 결혼은 이루어졌고 지금까지 잘 살고 있다. 아내의 장애로 자녀까지도 둘 수 없다는 각오도 하며 결혼 했지만, 은혜로 아들 둘과 딸 하나를 주셔서 잘 자라고 있다. 이 외에도 주님과 교통하는 많은 삶의 체험이 있지만, 중요한 생의 결단의 순간에 주님이 다가와 말씀했다는 사실이 나에게 큰 복이라고 늘 생각한다.
나의 개인적인 체험이지만 신앙생활 하는 사람은 어떤 방법이든지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의 체험이 필요하다고 본다.
단 주님의 뜻대로 하겠다는 순종의 자세를 가질 때 인도하신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영적 체험은 꼭 필요하다. 왜냐하면 평생의 자양분이 되는 밑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활뫼지기-
* 예전에 썼던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