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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뫼지기의 농촌목회 이야기

활뫼지기(큰형)

by 종이인형 꿈틀이 2009. 11. 18.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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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뫼지기의 농촌목회 이야기 (합신대학교 농어촌목회 강의)


성경: 빌2:12-16


농촌교회의 현실과 들어가는 말

 

농촌이나 도시나 영혼구원은 주님의 지상명령이다. 한 영혼은 어떤 상황이나 어떤 처지에 있든 천하보다 귀하기에 그 가치는 그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없다. 특히 농어촌 지역은 이 시대 한국에서 가장 소외되고 희망이 없어 보이는 사회적 구조적인 환경에 처해 있다. 어느 마을마다 60~70대가 평균연령으로 초 고령 사회를 이루고,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희귀하게 들리는 사회가 되었다.


역사상 아무리 많은 환란과 시련 중에서도 가정공동체가 있었기에 끈질긴 잡초처럼 어떠한 고난도 이길 수 있었고, 희망을 가지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수원지(水源池)에서 물이 흘러내리는 것이 끊어져 결국은 도랑이 말리는 것처럼, 농어촌 사회가 서서히 무너져 가고 있다. 이때 소외되고 희망 없는 그들에게 농어촌 교회가 섬기고 같이 있어주는 것은 이시대의 마지막 보류라고 여긴다.


농어촌교회는 적극적으로 사업을 찾지 않아도 주어진 여건 자체가 많은 사역들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이 사역을 감당하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분명한 사명감으로 평생 헌신하는 목회자가 필요하다.

 

잠시 지나가는 과정이요, 도시로 가는 디딤돌이 아닌 진정 주민들과 농어촌 사회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지역주민들과 소통이 되고 마음을 열어 효과적으 로 복음을 전하며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지역주민들과 하나 되는 사역을 할 수 있다. 

주민들의 대부분이 노인들이라서 이동의 불편함과 여러 문화적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그들에게, 가까운 교회가 다가서서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목회소명과 철학


필자는 신학교 시절에 목회방향과 사명을 두고 기도하며 구하는 중 농어촌 지역으로 내려가라는 강한 마음의 응답을 받고 1993년도 4월 달에 현재 장소로 오게 되었다. 당시 마을 중앙의 빈집을 구입하고 교단과 도시 교회의 아무런 배경 없이 가족끼리 시작하게 하였다. 그 날부터 옛날 구식 부엌을 입식으로 개조하고 창고로 쓰는 곳을 수리하여 예배당으로 사용하였다.


본인이 농촌교회를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시골에서 자라고 농촌을 좋아하며 또 한 연고지(緣故地)이기도 했다. 이곳에 내려올 때 처음이자 마지막까지 사역하리라 다짐했고 지금까지 그 마음은 여전하다. 도시에서의 목회라면 나 아니어도 얼마든지 유능한 목회자가 많겠지만, 시골은 젊은 일꾼을 필요하고 더 쓰임 받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33세에 시작하여 지금까지 17년의 황금 같은 시기를 보내면서 마음속에 항상 힘을 주고 확신하는 말씀은 빌립보서2장13절 말씀이다.


“너희 안에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농촌목회는 사명으로만 한다면 오래가지 못한다. 환경과 현실은 늘 변하고 어려움은 늘 있기 때문이다. 처음 사역할 때 학생들도 많았지만, 지금은 필자의 중학생 하나만 유일한 미성년자로 남아있다. 빈 집도 점 점 늘어가고 있다. 이런 현실에도 사명과 더불어 주어진 모든 삶에서 누리는 즐거움이 있어 인내하며 나아갈 수 있다.


도시에서 누리지 못하는 시골에서만 얻는 특권, 자연에서 오는 정서와 신선한 농작물을 직접 재배하여 먹는 맛, 작은 교회이기에 오는 여유, 개척했기에 소신껏 일 할 수 있는 목회의 즐거움이 있었다.

교회의 표어도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6장33절)는 십 년 동안 같은 표어를 정했다.


그 실천사항으로 다음의 세 가지를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

첫째: 하나님과 사람과 흙을 사랑하는 교회

둘째: 에덴동산으로 회복하는 교회

셋째: 합당한 가정 공동체를 이루는 교회


농어촌 교회의 현실은 새로운 것을 소화할만한 여건이 못 된다. 실천하지도 못할 구호보다는 실천 가능한 것으로  지키고자 했다.

설교도 마찬가지로 제목을 정하고 한 가지만을 확실하고 최대한 쉽게 실제적으로 적용위주로 준비하고 전하고자 노력했다.


 

교회당 건축과 과정 


지금 있는 교회당은 마을 중앙에 있어서 주민들의 반대가 있으면 건축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4년 동안은 창고를 개조하여 교회당으로 사용하면서 그동안 주민들과 최대한 소통을 나누는 일에 중점을 두었다.

마을 공동의 일에 앞장섰고, 생활의 불편한 여러 도구들을 해결하면서 행정과 차량 봉사로 섬겼다. 애경사는 기본적으로 참여했고 도시교회와 연계한 이. 미용봉사와 한방, 일손 봉사 및 다양한 봉사로 그들의 마음을 열게 하였다. 그리고 도시에 계시는 보모님을 모셔와 주민들과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어 가도록 했다.


때가 되어 건축을 시작할 때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보다는 전적인 주님 바라보며 기도로 구상하며 기초할 여건도 되지 않았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처럼 일을 시작했다. 몇 가지 건축 원칙이 있었다면 획일적인 시골 교회당과 달리 주변 환경에 어울리는 친근한 전원교회당으로 짖고자 노력했다.


재료는 최대한 자연재료로 활용했고 전통적 건축방법과 현대적인 공법을 조화시키고, 가능한 손수 건축을 하였다.

흙과 돌멩이 태풍에 쓰러진 통나무, 대나무,  관공서를 철거하는 과정에서 나온 고목재를 재활용, 바닷가에서 주워온 조개껍질류 등으로 4년 만에 사택과 교회당을 건축하여 입당하였지만 지금까지 미완성으로 계속 건축 중이다.

 

이 과정에서 물질적으로 채워 주시고 위로 해주는 하나님의 크신 손길도 많이 체험했지만 위험한 사고도 몇 번 있었다. 지금은 아름다운 경관과 고풍스런 실내장식과 예배시간마다 울리는 청동 종소리로 지역 주민들과 도시인들이 많이 구경하는 마을 명소가 되었다.

                  


마을 가꾸기 사업과 영향력


한 마을에서 오래 살다 보니 이제는 조금씩 주민들과 친숙해지고 마을에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다. 농촌사회에서 가장 인간다운 삶을 어떻게 사는 것인가를 보여주고자 노력했다.

농한기에도 새로운 아이디어로 정원을 가꾸고 뭔가를 늘 하는 모습 속에서 근면함을 보여 주어 인정받았고, 마당의 잔디와 생울타리, 꽃과 나무로 아름답게 가꾸는 정원의 모습이 주위 가정에도 하나씩 따라가고 있다.

또 한 마을의 중요 회의에는 예배시간을 고려하여 회의를 하고 마을 책임자들의 자리에 참석시켜 주고 있다.


작년에는 국가 정책 사업으로 마을 가꾸기 사업을 필자가 응모하여 무궁화동산과 산책길 꽃길을 조성하는 사업에 감독과 직접 참여하여 적잖은 노임과 마을을 위해 일한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이 사업이 앞으로도 발전하여 에덴동산과 같은 교회와 마을이 되기를 원하고 있다.


농어촌 어느 교회든 그 마을에서 가장 많은 지식과 능력을 목회자는 가지고 있다. 비록 한 달란트 가진 은사라 할지라도 농어촌지역에서는 몇 달란트 남길 수 있는 여건이 조금만 관심 가지면 보여 진다.

지금의 농어촌 문제는 한국농어촌 사회의 문제이기에 그 해답도 농촌사회의 지역변화와 연관해야 한다. 보다 적극적으로 사랑과 관심으로 나서면 복음화를 이루며 신선한 영향력으로 자리 잡으리라 여긴다.



마치는 말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을 이루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로 인해 즐거워하는 삶을 누릴 수 있고 정직하게 잘 살 수 있는 지역이 농어촌 목회라고 여긴다. 지금은 비록 희망 없고 소외된 현장이지만 역사를 바꾸시는 하나님이 언젠가는 귀농으로 되돌리는 시대가 오리라 여긴다.

자연을 관조하며 섬길 수 있는 대상들이 많고 성경의 진리를 생생하게 깨달을 수 있는 농어촌 목회와 교회 이야말로 초대교회를 회복하는 장소라고 여겨진다.


-활뫼지기  박종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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