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에 치룬 장례식-19번째 안데스리포트
한국에서도 추석 명절이라 들떠있을 그때, 같이 활동하는 안데스 폴크로레 그룹 '잉카엠파이어(께추아어:따완띤수요)' 멤버의 어머니가 상을 당하였다.
서울역에서 공연을 하다말고 그냥 그대로 당사자인 하비엘은 무작정 인천공항으로 갔다고 한다. 당연히 표가 있을 리 만무한데 이런 것을 신이 도왔다고 하는지 딱 한자리가 갑자기 생겨 미국까지 갔지만 예정에 없던 티켓은 다음까지 행운이 따르지 않아 3나라를 더 거쳐 간신히 장례식 아침에 도착할 수 있었다고한다.
다들 그렇게 가셨다. 우리 아버지도 2005년 11월초 당신의 음력생신이자 나와 같이 페루에서 공부하고 있는 장손의 생일에 암으로 돌아가셨는데 페루 음악인 동료의 모친도 암으로 유명을 달리하셨다.
소식을 듣고 장례에 참석하기 위해 준비를 하였다. 한국에서는 조의금만 준비하면 되지만 여기의 예법을 몰라 물어보니 화환을 준비하면 충분한 예가 된다고 하여 그전 활동하던 멤버의 처와 딸 셋이서 시장에 들렀다.
우리나라에서는 당연히 조화라고 하면 흰색 꽃과 검은 리본이 정형화되어 있는데 꽃을 준비하면서 보니 원색이 꼭 같이 끼여있는 것이다.
흰색만 없냐니 장례식도 화려한 색상의 꽃이 들어간다고한다. 아니 구분이 별반 없다는 표현이 적합할려나.
통념이란 얼마나 무섭도록 깊이 배인 것인지 그렇게 꽃을 사가지고 티코택시에 오르면서도 웬지 내가 쭈삣쭈삣해진다. 이게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물론 조객답게 복장도 검정 옷은 없지만 최대한 무채색에 가까운 양복 1벌을 한국에서 가져왔는데 그렇게 예를 나름대로 차리고 장례식장에 들어섰다.
"와줘서 고마워요. 에르마노(형제) 박"
이럴때 무슨 말이 필요하랴. 그냥 안아주고 다독거려 주는 수 밖에.
서울에서 어찌 우여곡절끝에 도착했다는 하비엘이 나를 맞는데 위로를 하면서도 언뜻 대조되는 것이 메스티조인 그가 한국인처럼 서울물에 얼굴이 하얗고 난 이곳 생활을 조금 했다고 벌써 얼굴이 검어져 현지인화 되가는 것이 묘하게 대비된다.
근데 오전 11시라지만 발인일인데 왜 이리 조용한지 모르겠다.
카톨릭이 보편화된 곳이라 관은 뚜껑이 열려져 있어 그니를 추모하는 이들이 맘껏 얼굴을 살펴볼 수 있게 되어있지만 난 조용히 묵념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근데 또 하나 적응 안되는 것이 생겼다.
바로 상주들의 복장인데 색은 검정색이지만 하비엘 빼고는 동생들이나 다른 형제들을 보니 바지들이 검정 진바지가 아닌가.
갑자기 내 복장을 보니 내가 되려 무색해진다. 간간히 방문하는 조문객들 복장은 그냥 일상복 그대로 막 시장에서 일하다 온 것 같은 행색들이 대부분이다. 죽음도 특별한 것이 아닌 일상처럼 여기는 탓일까?
낮이지만 인생과 대비되는 촛불이 켜져있고 조객들보고 씹으라며 코카잎이 놓여져있다. 집례시간까지 한참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집에 다녀오마 하며 잠시 자리를 떴다.
집에서 다시 나설 때 내 복장도 달라져 있었다. 깨끗하지만 검정색 진바지에 짙은 와이셔츠만 걸치고 나선 것이다. 그정도면 최소한 상주와 동급의 복장은 된 것이다.
시간이 되어서 천주교 사제인듯한 분이 장례미사를 주도한다.
기독교 국가권에서 하는 종교관련 농담 하나가 생각난다.
일생에 교회는 3번 나가는데 태어나서 출생신고겸 유아세례를 받으러, 두번째는 결혼식때 축복을 받기 위해서(그래서인지 예식장문화가 거의 없다), 마지막은 의식없는 망자의 몸으로 장례절차때문에 교회에 간다고 했던가.
장례식은 한국과 거의 비슷한 것 같아 낯설지가 않다. 이미 여러번의 장례예배에 참석한 탓일게다.
근데 또 하나 생경하게 느껴진 것 하나가 바로 장례음악이었다.
한국의 장례가 교회식으로 치뤄지면 지정된 조가용 찬송가를 조객들이 함께 부르는 것에 비해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겠지만 어떤 악사 한사람이 와서 회갑연에 동원되는 1인밴드도 아닌데 혼자서 리듬박스를 틀어놓고 망자를 위해 추모곡을 중간중간 부른다.
차라리 리듬을 안쓰고 스트링과 피아노를 섞어 그 서글픈 창법에 어우러진다면 더 좋을 법 한데 드럼소리가 가미된 노래방 분위기의 조곡은 내겐 이질적으로 여겨졌다.
다만 전문 조곡 연주자로 팔려다니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음색이 우리 상여소리와는 또 다른 의미에서 슬픔을 자아내는 맑고 우수어린 목소리다. 물론 쓰여지는 음악도 모두 단조이고.
미사가 끝날때 집례자는 상주들을 불러 세우고 위로의 기도로 마무리한다. 이때 서로 형제간에 부둥켜안으며 그동안 참았던 남자들의 울음을 쏟아내었는데 모든 사람들에게 전염되는 것 처럼 숙연해진다.
이제 조객들은 망자의 얼굴을 보는 마지막 순간이라 여겼는지 관에 다가가 조금씩 머무르면서 어떤이는 유리관을 만지기도 한다. 정말 보내는구나 싶었을 게다.
관은 가족들에 의해 운구가 되고 차에 실리기전 고인이 살았던 생활반경인 집 주위를 한바퀴돌고서 검정색 차에 실려졌다.
삭막한 사막 한가운데, 그중 아레끼빠 도시 윗부분은 정말 풀 한포기 보이지 않는 메마른 지대인데 그곳에 공동묘지가 자리잡고 있다.
이리저리 차를 나누어 타고 도착해서 땅을 밟는 순간 먼지가 풀풀 일어난다.
이래서들 사람들이 평상복으로 참여하는 것일까 싶다. 물론 도시 외곽에 근사한 공동묘지가 있는 것을 보았으나 이곳은 일반 서민들의 안식처인 것 같다.
사제의 역할은 집에서 끝났는지 여기에서는 동네의 나이 지긋한 이가 무어라 말하면서 주의를 집중시키더니 하관절차도 엄숙히 진행한다.
무슨 바닥을 저리 깊게 팠을까 싶게 족히 3미터는 되어보이는 공간이 만들어져있다.
하관식이 진행된다.
하비엘은 마지막 보내는 어머니의 관앞에 엎드러 소리없는 눈물을 계속 쏟고 있다. 어느 자식인들 어머니의 죽음앞에 안슬퍼할리 없지만 한국에서 공연활동을 하면서도 스탭에게 모친 건강이 안좋은데 떨어져 있어 걱정된다고 자주 말해왔단다. 그런 회한때문에 같이 있던 형제들보다 그 슬픔이 더 컸을지도 모르지만.
밧줄을 관 밑에 걸치고 하관을 하는데 어찌 자세들이 불안해보인다 싶더니 기어이 사고가 발생하였다.
호흡이 서로 안맞아 불균형에 처한 관이 앞으로 쏠리면서 그대로 추락해버린 것이다. 당연히 무덤이 깊다보니 관이 깨어지고 시신이 손상된듯했다.
사람들의 탄성이 쏟아나오고 잘잘못을 따지는 언성높임도 들린다.
그순간도 내 카메라는 계속 작동하였는데 나중에 집에서 확인해보니 고인의 사체까지도 적나라하게 잡혀있지만 여기 칼럼에서는 그 장면은 최소한 망자와 가족에 대한 예우로 사용하지 않았다.
급하게 두사람이 내려가 시신을 수습하고 고이 관을 정렬한뒤 환송하는 이들의 꽃이 관위에 쏟아졌다. 망자와 가까운 순으로-아버지, 자식, 가족들-한 삽씩 흙을 떠 관위에 끼얹자 나머지 사람들도 모두 줄을 서서 삽질을 하려 대기한다.
그리 관이 추락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악몽을 꾸면 꿈은 현실과 반대라는 해몽을 내놓은 것처럼 이런 사태때에 대비한 전통적 관념이 생겼다고 한다.
저런 돌발사태로 하관이 늦어지는 것은 망자가 가족들에게 남겨진 말을 못다해 더 하고 싶어서라고.
켜켜이 이제 흙단층들이 형성되면서 하얀색과 빨간색의 꽃으로 만든 십자가가 꽂혀지자 내가 가져온 화환도 같이 세워진다.
주변 사람들은 흙먼지에 바지가랭이가 색바뀜이 뚜렷하고 머리칼도 황토색으로 보이는 이도 보인다.
주변에서는 그때 여기의 발효성 전통음료인 치차를 대접하고 그때사 부조금조로 판을 돌리자 여기저기서 동전을 그위에 올려놓는다.
마지막으로 조객들과 가족들간에 서로 위로를 나누는 간단한 악수례로 모든 장례식이 끝났다. 우리가 모두 떠나면 새로운 무덤 하나가 흔적으로 남겠지만 저 꽃들이 시들어지면서 바로 이곳 죽은이들의 공간도 어느때처럼 일상의 고요들로 남을 것이다.
상주네 집까지 승합차가 안내를 하고 별반 동료들도 없어 바로 가려고 나섰는데 그 경황중에도 하비엘이 꼬레아노 손님 어디있냐며 친구 한명을 정류장까지 보내어 나를 찾는다.
다시 장례식이 진행되었던 우리나라 대청과 같은 곳에 들어서자 이제는 모든 것을 인정한다는 듯 아까보다 밝아보이는 하비엘이 먼저 입가심으로 나오는 이곳의 상당한 크기의 삶은 콩을 알맹이만 먹으라 권한다.
껍질채 먹으면 배에 가스가 차 나중 공중으로 붕떠서 배가 터질거라는 농담과 함께.
이어 각 손님들에게 소고기 건데기가 하나씩 찬 스프가 전달되고.
다시 정류장으로 나왔는데 고지대라 조금이라도 하늘에 가까운 탓일까.
2006년 한국의 추석 보름달이 여긴들 예외일리 없이 휘엉청 밝게도 떴다. 달을 보니 1년전 돌아가신 아버지, 그리고 사랑하는 형제, 자매 가족들 얼굴도 그 둥그런 원형속에서 이리저리 그려진다.
http://cafe.daum.net/7080folk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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