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박종인입니다.
초승달이 하늘에 있네요. '띠앗머리'는 형제 자매 사이에 우애하는 정의(情誼)를 일컫는 말입니다. '의초'라고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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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잎 클로버의 띠앗머리 *
식당 뒤편의 '최규식 동상'으로 작업을 나갔다. 거기엔 오엽송, 영산홍, 주목, 옥향나무, 회양목이 등이 심겨져 있다. 양손가위로 주목나무를 다듬었다. 석달 전에 손을 보았지만 어느새 몇몇 줄기가 삐죽삐죽 불거졌다.
조경수인 주목과, 조경사인 종인 사이에는 팽팽한 갈등이 있다. 주목은 제 습성대로 새 가지를 뻗치고, 나는 틀 잡은 나무의 모양이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주목은 미친년 머리칼처럼 헝클어진 꼬락서니가 되어 버린다.
주목이 새줄기를 빼꼼 내밀면 난 싹둑 잘라 버린다. 그러면 주목은 잘린 가지의 바로 아래에서 서너 개의 싹을 다시 틔운다. 마치 희랍신화에 나오는 레르나 늪의 '히드라'처럼 말이다.
히드라는 지옥에서 죄 있는 자들을 괴롭히는 50여 개의 머리를 가진 괴이하게 생긴 뱀인데, 머리 하나를 자르면 곧 두 개가 생긴다. 결국은 헤라클레스에게 당해 죽었지만, 머리를 자르고 바로 불을 지지지 않으면 두 개의 머리가 곧 생기는 괴물은 참으로 끔찍할 것이다.(실제의 히드라 몸길이는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이고 전체가 녹색의 젤리 상태인데, 손가락으로 세게 누르면 터져 버리는 매우 연약한 동물이다. 가위로 잘라 두 동강 내면 사나흘 후엔 두 마리의 히드라가 되는데, 이런 성질 때문에 희랍의 히드라 전설이 생긴 것 같다.)
조경수와 조경사 사이에 타협이 이뤄졌다. 가지런한 원뿔 모양의 수형 밖으로 불거진 가지는 자르지만, 수형 잡힌 틀 안에서 자란 가지는 그대로 두었다. 그리하여 주목은 원뿔모양을 유지하면서 틀 안의 허전한 공간에 다북히 들어차 훌륭한 모양을 이루었다.
잔디밭엔 잔디뿐만 아니라 바랭이, 민들레, 마디풀, 괭이밥, 고들빼기 등속이 함께 자란다. 듬성듬성 떼지어 자라는 클로버는 얼굴에 핀 버짐처럼 보기 흉하지만, 기는줄기 마디마다 뿌리를 내리므로 깡그리 없애기란 보통내기가 아니다. 대운동장 잔디구장의 클로버를 없애려고 50여 명의 의장대 대원들이 근 보름동안 풀뽑기를 하고 제초제도 뿌렸지만 여전히 클로버는 자라고 있다.
작업을 하다가 쉬는 사이에 대원들이 뭔가를 찾는다. 행운이라는 이름의 네 잎 클로버, 찾다찾다 못찾은 한 대원이 퉁명스레 물었다.
"박 기사님, 왜 클로버는 네 잎이 아니고 세 잎이죠?"
갑작스런 질문에 난 대답을 찾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아직 머릿속의 생각은 정리가 덜 되었지만 일단 말문을 열었다.
"저, 그것은 말이다. 그러니까 클로버 잎이 세 장인 것은 정상이고, 네 장인 것은 병신이야."
이쯤 되니 머릿속의 헝크러진 생각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실뭉치의 실마리를 잡아당기듯 본격적으로 얘기보따리를 풀었다.
"클로버는 줄기에서 가느다란 잎자루(엽병)가 하나 서고, 그 잎자루를 의지하여 잎이 난다. 식물의 잎은 가장 효율적으로 햇살을 받으려는 습성이 있지. 우선 이 '효율성'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자. 식물의 잎은 물과 탄산가스 그리고 햇볕을 가지고 광합성을 하여 양분을 만든다. 광합성은 잎의 엽록체에서 일어나므로 보다 많은 잎이 있으면 그만큼 많은 양분을 얻을 수 있어. 하지만 잎은 광합성을 통해 양분을 만들기도 하지만 반면에 호흡을 통해 소모하기도 해. 그러므로 알짜 동화량은 광합성을 통해 얻은 양분에(A) 호흡을 통해 빼앗긴 양분을(B) 뺀 값이(C) 되는 거야. C값이 최고가 되려면, 무조건 많은 잎보다는 겹치지 않으면서 많은 잎이 있어야 하는 거지. 가려진 잎은 B값이 A값보다 더 크므로 결국 C값은 작아진다."
난 쪼그려 앉아 잔디 틈바구니를 비집고 자라는 클로버무리를 굽어보며 말을 이었다.
"잔디는 위, 아래 높이의 차이를 두고 좌, 우의 위치를 다르게 하여 잎들이 자라는 입체적인 구조이므로 가장 위에 있는 잎이 굳이 모든 햇살을 독차지 할 필요가 없어. 아랫잎도 광합성을 할테니까. 그러나 클로버의 잎은 한 정점에서 퍼지는 평면적인 구조야. 그러므로 가장 알뜰하면서도 효율적으로 햇살을 받기 위해서는 잎은 겹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가장 넓어야 해. 그것은 잎과 잎의 경계면이 서로 맞닿는 모양일 게다."
난 손을 내밀어 바닥에 바짝 붙어있는 클로버의 잎자루를 뽑아들었다.
"자, 클로버의 잎을 자세히 봐. 정점에서 퍼진 각 잎의 각도가 120°이지? 세 잎이 펼쳐지면 360°가 되어 잎의 겹치거나 비지 않은 꽉 찬 모양이 된다. 만약 잎이 네 장이면 480°이므로 120°에 해당되는 부분은 옆 잎에 가려지게 되어 비효율적이 되지. 네 잎 클로버를 찾으면 자세히 관찰해 봐. 책갈피에 끼워놓으려고 잎을 펼치면 일부분이 겹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거야. 일반적으로 그림이나 도형에서는 네 잎 클로버가 열 십자(+) 꼴로 그려져 있지만, 그건 상징적일 뿐이고 실제는 그렇지 않아."
한달음에 내리 쏟은 내 말을 미처 추스르지 못한 대원은 약간은 알쏭달쏭한 표정을 짓는다. 나 또한 내가 뱉은 말이 정말인지 확신치 못해 알쏭달쏭하긴 마찬가지이다. 확실히 알아봐야겠다.
다시 주목을 다듬으며 '셋'이라는 숫자에 대해 생각을 해봤다. 가장 완벽한 숫자라는 생각이 든다.
민들레, 제비꽃, 질경이, 씀바귀, 등은 바닥에서 잎을 나므로 우산살 퍼지듯 많은 잎을 낸다. 하지만 햇볕을 잘 쬐려고 땅에서 띄워 잎을 펼치는 클로버는 가느다란 잎자루가 버틸 수 있는 적은 수의 잎만 달려야 한다.
근데 왜 셋일까? 둘 일수도, 넷 일수도 있을 텐데. 둥근 피자를 나누듯 서로 겹치지 않는 경우에는 꼭 세 잎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두 잎 경우 180°, 네 잎 경우 90°라면 비거나 겹치지 않고 광합성을 할 수 있지 않는가?
아마도 바람에 흔들리는 잎자루가 중심을 유지하기에 세 잎이 가장 제격이라서 이리라.
네 다리 의자는 기우뚱거리게 된다, 네 다리의 길이가 조금이라도 다르거나 바닥이 평평하지 않으면. 두 다리의 의자는 제대로 설 수가 없다. 세 다리의 의자는 더도 덜도 아닌 가장 균형 잡힌 의자이다.
균형과 안정을 절대적으로 필요한 카메라의 삼각대가 왜 세 발인지 생생하게 느껴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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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도서관에서 책을 보다가 바람 쐴 겸 밖으로 나왔다. 자정 즈음의 늦가을 밤공기는 싸늘하고 밤이슬에 젖은 풀은 축축하다. 하얀 불빛이 얇게 깔린 풀밭을 걷다가 밑을 내려다봤다. 분명 클로버 같은데 달랑 한 잎만 달려있다. 그것도 녹색의 앞면이 아닌 희뜩한 뒷면이 은은하게 빛나는 것이다. 자세히 보고자 좀더 굽어보니 클로버는 기도하고 있었다. 분명 그것은 두 손을 모으고 간절히 기도하는 꼬마의 다소곳한 자태이다.
두 손을 모으듯 두 잎은 앞면을 서로 맞대고 있으며, 나머지 한 잎은 목사가 성도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기도 하듯이 두 잎을 덮고 있었다. 위에서 굽어보면 한 잎이고 옆에서 바라보면 'T'꼴이다.
날이 추우면 몸을 움츠린다. 이는 표면적을 적게 하여 체온을 덜 빼앗기기 위한 몸짓이다. 두 잎이 맞붙은 것은 열을 덜 뺏기기 위해 서로 껴안은 꼴이고, 나머지 한 잎이 부둥켜안은 두 잎을 덮고있는 것은 차가운 이슬을 가리기 위한 클로버 나름의 추위를 이기는 방법인 모양이다.
그런데 왜 처음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고 새로운 방법을 택했을까? 잎눈의 클로버 잎은 가운데가 접힌 세 장의 잎이 켜켜이 붙어 있다. 움틀 때 잎은 데칼코마니 도화지가 펼쳐지듯 벌어진다. 그러나 클로버의 잎은 한번 펼쳐지면 다시는 접혀지지 않는가 보다!
잎눈을 벗어난 잎은 오직 광합성을 하는데 열심이지, 여차하면 다시 잎을 접고 옛날로 돌아갈 것을 염두에 두지는 않는구나. 마치 배수진(背水陣)을 치고 전쟁에 임하는 군인의 비장함이 느껴진다.
펼쳐진 잎이 추위라는 시련을 만나니 옆에 있는 형제 자매와 서로 도우며 어려움을 이기는구나.
세 잎의 더불어 사는 띠앗이 진한 감동을 주는구나. 세 잎은 각각의 잎이지만 한 줄기에서 갈라진 한 형제이다. 클로버의 띠앗머리를 대하니 문득 형이 생각난다.
형에게 짜증내며 불평하던 것이 떠올라 마음 한구석이 켕기는구나. 생각해보니 우리도 클로버 잎처럼 삼형제구나.
-종이인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