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활뫼(弓山)교회의 종소리가 울리던 날

활뫼지기(큰형)

by 종이인형 꿈틀이 2003. 9. 5. 17:41

본문

활뫼(弓山)교회의 종소리가 울리던 날


작년 여름에 온 국민을 하나로 뭉치도록 한 말 '꿈은 이루어진다'는 구호가 나에게도 적용된 순간이었다.
어린 시절 '밀레의 만종'의 그림을 보고서 나의 마음속에 소중히 간직된 막연한 꿈이
한 세대(世代)가 지난 후 실제로 이루어 진 날이 되었다.
이것은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하지 못하다가 한참 지나서야 현실로 인정할 정도로
인생에 몇 번 없는 사건의 하나라고 말하고 싶다.


기독교의 상징이 십자가이듯 예배당의 상징은 종탑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예배당에는 종각은 있지만 그 안에는 종(鐘)이 없는,
이름만 종탑인 경우가 많다.
우리의 초대교회 시대에 예배당은 당연히 종이 있어서 시간과 집회를 알리는 도구로 사용되었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소리가 되었던 것이다.

군사정권 시절에 불려졌던 새마을 운동 노래의 첫 소절은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라는 가사이다.
당시에 교회종소리로 하루를 시작했다는 증거이다.
새마을 운동으로 '잘살아보세' 라는 구호가 현실이 되었지만 우린 잃어버린 것들이 너무나 많다.
그 중에는 새벽종의 아련한 기억들이 사라지며 점점 황폐해져 가는 우리네 심성(心性)도 포함될 것이다.


예배당을 손수 건축하면서 종을 꼭 달고 싶었었다.
그러던 중 신문광고에서 '한국교회 종 달기 운동본부'를 알게 되어 더욱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았다.
처음에는 가격이 수십 만원 정도로 여겼으나 직접 알아보니 경승용차와 맞먹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언젠가는 이루어질 그 날을 위해 종을 달 수 있도록 예배당과 종각을 건축했었다.
그리고 성도들과 기도하며 기다린 지 일년도 안 된 지금에 이처럼 근사한 종을 달게 되었던 것이다.


이 종이 달리기까지는 참으로 여러 사람의 귀한 정성과 물질이 들어 있었다.
아직 세례도 받지 않았던 할머니 성도의 씨앗과도 같은 헌금으로 시작하여
코스모스 문예의 선한 일꾼들과 종을 직접 만들고 보급하는 대표자의 적극적인 후원과
궁산교인들의 연보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작품이었다.
이 종을 달고 싶은 마음을 '밀레의 만종'이란 제목으로 수필을 쓴 것이 신인상으로 당선되어
이처럼 종을 달수 있도록 모금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종을 설치하기 위해 하루 먼저 기술자들이 싣고 온 종을 보고서 예상보다 작은 크기에 약간은 실망했었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겉모습과 달리 안으로 두껍게 둘러있는 종은
그 무게만도 장정 두 사람의 무게로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묵직함을 보여주었다.
사계절의 다양한 온도 변화와 세월에도 관계없이
늘 일정한 소리를 울려 퍼져야 하는 청동종다운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 날 저녁에 꿈속에서도 종을 다는 과정이 반복되는 설레임 속에 날이 밝았다.
타종식에 참여할 코스모스 문인들의 오는 시간에 맞혀 종을 설치하기 위해 새벽부터 작업에 들어갔다.
마침 수련회로 온 성도들의 힘을 빌려 그 무거운 종을 이층 높이까지 어렵사리 운반할 수가 있었다.
드디어 처음으로 종소리를 듣게 되었다.
체구는 작지만 맑고 기품이 있는 소리는 온 동네와 호수를 넘어
앞에 보이는 동네에 충분히 전달하기에 부족 없는 소리임에 틀림없었다.


이제 새벽마다, 정오(正午)마다 일 분씩 들려오는 종소리가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일깨우는 소리가 되길 바란다.
특히 정오에 나는 소리를 들으며 우리 성도들은 있는 그 자리에서 나라와 지역을 위해 기도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 나라의 곳곳마다 이 청아한 종소리가 울려 퍼져서 영혼을 살리며
또 하나의 아름다운 문화를 이루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 청동종은 옛날 사람이 줄을 당겨 치는 방식이 아닌 첨단시대에 맞게
자동으로 날자와 시간이 되면 모터의 힘으로 종을 치도록 되어 있다.
종지기의 직분을 영광으로 알고 수고하며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간직했던 그런 추억은
이제 맛볼 수 없는 시대지만, 옛것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감동을 주리라 믿는다.

이 종을 달기 위해 주도적으로 헌신한 코스모스 문예의 회장의 시를 소개하고자 한다.

< 종을 달고 싶어라 >

종을 달고 싶어라
호수언덕 고향 교회 빈 종각
끼니야 서너 때 거를지라도
종소리만 들으면 살 수 있으리

햇볕에 검게 탄 올곧은 시골목사
들풀모양 싱그러운 하늘바라기 사모
뎅그렁 뎅그렁 환청 들으며
칠 년 만에 완성한 종 없는 종각

종을 달고 싶어라
부드런 바람 이는 작은 교회 빈 종각
어찌하면 그곳에 종을 달 수 있을까

종을 달고 싶어라
종을 달고 싶어라



주후 이천삼년 유월 이십육일
궁산교회 헌종을 위한 헌시
강남경 지음

-활뫼지기-


반응형

'활뫼지기(큰형)'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구마  (0) 2003.11.03
올케의 시누이 사랑  (0) 2003.10.11
상사화  (0) 2003.08.13
사라진 아이들  (0) 2003.07.24
요즘 얘들은 말을 안 들어  (0) 2003.07.10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