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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큼이라도

박우물(둘째형)

by 종이인형 꿈틀이 2000. 9. 26.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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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국에서 그래도 고위 공직자에 속한 사람입니다. 말은 선천적으로 어눌하였지만 과정만큼은 반듯하게 일류 과정을 마쳤고 아마 끊임없는 노력과 독서열등으로 그 직분까지 오르게 된 것 같습니다.
그분 안사람의 이름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큰손"인 "장모모"여사와 동명이인이라 가
끔 재미있는 농담의 대상이 되었던 게 기억납니다.
하긴 그 별호가 꼭 우스개만은 아니어서 어느 교회 부설 유치원원감 일을 하면서나 교회
일을 할 때 이름 값을 톡톡히 하였지요.


두 사람은 각기 교회를 따로 다녔는데 부인이 자기 교회 청년 중 거처가 딱히 없어 고민하
는 것을 전해듣고 놀고 있는 지하 방을 자기 임의로, 그것도 무료로 그냥 내주었답니다.
물론 그는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죠.
사실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결정할 사안이었을 텐데 말이죠.
청년은 근 2년여를 그곳에서 거처하며 학업에 정진하였답니다.


하나뿐인 아들이 아버지의 배경을 의지해 군대를 빼달라 졸라댔지만 그에게는 전혀 먹혀들
지 않는 소리였습니다.
자대에 배치 받기 전, 이제 군복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아들은 면회 때 아버지에게 친
구들이나 자주 찾아오게 춘천시내로 부대배치를 부탁했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선 고개를 끄덕였지만 곧바로 아들을 가장 산골짜기 부대로 보내는 순발력
을 보였습니다.


그 위치에 안 맞는 차를 끌고 다니는 건 그렇다 쳐도 재개발을 해야 할만큼 삐걱거리고 좁
은 집에서 십 수년을 살아오자 사람 좋은 아내도 한마디를 하였죠.

"여보. 당신보고 부정한 뇌물을 받으라는 것도 아니니 우리 이번에 평수 좀 크고 쾌적한 아
파트로 이사합시다. 사람들이 우리 위치에 이런 차 몰고 이런 집에서 산다니까 아무도 안믿
어요" 하면서 어느 날은 심하게 다그쳤답니다.

그때 그는 조용히 입을 열어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나만큼이라도 교과서에 쓰여지고 학교 선생님이 가르쳐 준대로, 또 성경이 말하고 강단에
서 목사님이 설교한 대로 살아보고 싶소. 그렇게 살다살다 못하면 타협할 지라도 아직은 충
분히 살만 하쟎소."

그후로 아내는 다시금 그런 말을 입밖에도 내지 못했다는 군요.


지금 그분은 퇴직하여서 그야말로 소박히 새로운 일에 정진하고 있답니다.
그런 분과 한 지붕 밑에서 함께 나눴던 2년여의 세월은 아마 제게 있어 잊혀지지 않을 아
름다운 기억으로 각인 될 것입니다.


-박우물이 다섯 번째 물을 길어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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