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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동산위의 저 소나무

활뫼지기(큰형)

by 종이인형 꿈틀이 2013. 7. 30.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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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위의 저 소나무

 

활뫼 마을을 감싸고 있는 중앙의 산등성에는 칡덩굴과 잡풀로 이루어진 동산이 있다.

그 중간에 60년은 넘어 보이는 한국 송 몇 그루가 서있다.

이곳은 원래 울창한 소나무로 땔감을 사용하던 시절에 마을의 주요 나뭇감을 제공하던 곳이었다.

 

그러다가 이십 년 전에 아래 밭을 경작하던 농부의 실수로 산불이 나는 바람에 수십 년 된 소나무들이 불타버렸다. 후에 소나무를 식목일 행사로 심었지만 사후 관리가 안 되어 칡덩굴을 비롯하여 다양한 잡풀만 무성한 곳으로 방치됐다가 5년전 마을 가꾸기 사업으로 이제는 무궁화동산으로 변모되었다.

무궁화를 심기 위해 작업을 하는 중 복령이 나온 것을 보니 상당히 오래 된 나무들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동산 중앙으로 마을 산책길이 지나가며 이중 가장 반듯한 소나무 밑으로 길을 만들고 보니 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가치(價値)를 발견하였다.

소나무 그늘을 의지하여 긴 의자를 설치하고 앉아서 고즈넉이 보이는 잔잔한 호수와 동네의 풍경은 온갖 시름을 잊게끔 한다.

한눈에 들어오는 마을 풍경과 아울러 골목길에서 사람 사는 소리도 예상보다 크게 들려온다. 그동안 이 소나무는 마을의 소리와 삶의 모습을 말없이 보고 들었으리라

이 천 년 전 유대 땅에서 예수님이 산에 오르시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산상설교를 확성기 없이 가능한 것도 지형적인 영향이라고 본다면 아마 이곳 무궁화동산과 같을 것이라 여겨진다.

이 소나무를 멀리서 보면 한국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편지를 묻는 소나무를 연상하게 한다.

이 소나무는 동물처럼 움직이지 못하고 주어진 현실에서 견디고 받아주고 공존하며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며 살아야 한다.

 

혹독한 불 시험에도 용케도 살아남았고 자신을 의지하고 감고 올라오는 칡덩굴도 그대로 받아 주었고 가시나무들도 자리 잡고 뻗어와도 참고 견딘 것이다. 자세히 위를 쳐다보니 까치가 집을 지은 빈집도 남아 있었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푸른 잎을 유지하며 더디게 성장하는 변함없는 소나무를 보면서 나의 목회가 이 소나무처럼 닮아가고 있으며 또 닮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성남에서 이곳 궁산에 내려온 지 만 이십년이 지났다.

그 동안 주위 여러 목회자들이 이런저런 사유로 떠난 것을 보았고 또 주위에 젊은 지인들도 도시로 가는 것을 아쉬워만 했었다.

마을 분들도 언제 발령(?) 나느냐고 물어보기도 한다.

하지만 처음 받은 사명이 있어 지금까지 방황하고 곁눈질하기 보다는, 현실의 삶에서 깊이 뿌리 내리는 일에 전념하며 살아온 것 같다. 모든 삶이 그렇듯이 수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같이 내려온 아내가 먼저 하늘나라로 갔고 아버지를 비롯하여 여러 교인들과 이웃 주민들이 이 세상을 떠나간 것을 지켜보았다.

자녀들도 장성하여 집을 떠나 이제는 각 자의 길을 가고 있다.

해마다 새로운 신자도 늘어나지만 지나고 보면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이다

초고령화되는 농촌에서 그들의 그늘이 되고 힘겨운 인생길에 쉼을 얻는 처소가 되었으면 한다.

그동안의 삶을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인내라고 할 수 있다.

늘 궁핍한 삶도 참아야하고 기독교문화를 이해 못하는 주민들과의 관계에도 참고 더디게 자리 잡는 교인들의 신앙성장 과정도 오래 참아야 한다. 교회당을 손수 지으면서 재료와 건축비용이 제 때 공급치 않아 이 또 한 참고 기다리며 하다 보니 15년 만에 완공이 되었고, 부업으로 하는 농사일도 자연농법으로 하니 이 일도 오래참고 땅심을 기르는 인내가 필요했다.

인내에 대한 다양한 말이 있지만 인내는 희망을 연상(聯想)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실감난다.

아직도 참고 견디는 많은 일들, 아니 삶 자체가 기다림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항상 마지막은 행복이 올 줄 확신하기에 오늘도 이 길을 가리라 다짐한다.

 

동산위의 저 소나무가 누구도 관심 없는 나무였지만 이제는 필자가즐겨찾고 산책길을 찾는 이들에게 소중한 쉼터를 제공하는 장소가 되었다. 앞으로 우거진 무궁화나무를 보려고 오는 많은 사람들에게 더 귀하게 쓰임 받을 소나무를 생각하며 나의 삶도 소나무처럼 같이 되고픈 마음으로 나의 주인 되신 그 분께 기도 한다.

 

활뫼지기 박종훈

 

출처 : 활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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