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뫼지기(큰형)

생울타리

종이인형 꿈틀이 2001. 12. 5. 19:13
*** 생울타리 ***



경기도 성남에서 이곳 궁산 마을에 이사올 때,
지금 거주하는 이 집은 삼 년이나 비워둔 집이었습니다.
높은 토방이 있고, 봉창 문이 나 있는 오 간되는 한옥 집을 중앙으로
도로가에 토담집이 세 채나 있었습니다.

예배당과 사택을 짓기 위하여 모든 건물을 헐었었고,
도로가에는 담 대신 나무로 울타리를 만들었습니다.
사십 보 되는 거리의 가운데에는 은행나무와 산벚나무가 이미 심겨져서 잘 자라고 있었고,
정원에는 파라칸사와 향나무, 그리고 박태기 나무와 동백나무가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몇 년째 빈집으로 내버려 둔 까닭에 정원에 심겨진 나무 밑에는
씨가 발아되어 가늘게 싹이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자손을 보존하고자 하는 그 강한 생명력을 보면서 이 생명들을 살리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이 작은 새싹들을 텃밭에 심고 특별히 관리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년이 지나서 이 어린 나무들은 제법 자라서 본 밭에 심을 수 있을 정도로 자랐었고,
그때 즈음에 토담집도 헐게 되었던 것입니다.
나무가 크게 자라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고
그때까지는 집을 어느 정도 가려 줄 울타리가 있어야 하겠기에
시누대로 얼기설기 만들어 세워 놓았습니다.

70년대, 새마을운동이 일어나기 전에는 집집마다 토담이나 돌담,
또는 대나무나 싸리나무로 울타리나 담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시골의 정취가 물씬 풍겨나는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블럭담을 쌓고 미장하여 페인트를 칠합니다.
편리하고 견고하고 빠른 시간 내에 공사를 하며 견고하며 면적을 적게 차지하는 장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좋은 것을 많이 잃게 했었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도시처럼 이웃 간의 마음의 담도 쌓여졌고, 시간이 갈수록 추해지는 모습이 드러나며
삭막한 분위기를 보이다가 십여 년만 지나면 폐 자재로 버려지는 것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생울타리의 좋은 점은 많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명이 있기에 늘 자라갑니다.
그 과정에서 변화가 일어납니다.
철따라 해마다 새로운 옷을 입고 자라나는 그 모습은 생명 있는 자연 그 모습이며,
우리에게 아름다운 정서와 교훈을 심어 줍니다.
생울타리를 만들고 가꿔온 지 오 년이 지난 지금은 해가 다르게 울타리의 아름다움을 그려가고 있습니다.

울타리 중앙에 있는 은행나무는 가지 하나가 잘려졌습니다.
건축할 때 교회당 골조에 콘크리트 타설 공사를 하다가 펌프카 지지대가 미끄러지는 바람에
차가 기울게 되었고, 작업하던 그 긴 봉이 공중에서 옆으로 눕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은 정말 아찔했습니다.
다행히도 그 봉이 은행나무 가지에 걸쳐진 바람에 더 큰 사고는 방지되었습니다.
만약 은행나무가 없었더라면 펌프카는 거북이가 하늘로 발을 쳐든 꼴처럼 되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그 때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떨립니다.

지금은 그 은행나무가 언제 그랬냐는듯 잘 자라며 아름다운 단풍과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이 은행나무 옆에는 산벚나무가 심겨져 있습니다.
작년부터 꽃이 피기 시작하더니 그 엄마 나무보다 더 크게 자랐습니다.
큰 나무 사이에는 작은 나무들을 총총히 심어서 울타리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동백나무는 자라는 속도가 늦지만 올 봄에 처음으로 꽃을 피웠습니다.
파라칸사는 빨간 열매가 봄이 올 때까지 다닥다닥 붙어 있고,
겨울에 눈이 오면 흰 눈과 엉그러진 그 모습은 한 폭의 그림 자체입니다.

다른 나무는 겨울에 앙상한 가지만 남기에 황량한 기분을 주지만,
이 나무들은 오히려 겨울에 그 진가를 발휘합니다.
이 나무들 밑에는 한 줄로 늘어진 술패랭이 꽃들이 화단 둑이 볼 수 없도록 빽빽하게 퍼져 있습니다.
처가집 동네에서 한 줌 얻어왔던 것이 얼마나 번식이 잘 하는지 모릅니다.
카네이션의 원조라고 말합니다.
오 월 한달 정도 피어있을 때는 오고가는 모든 사람들이 즐거워합니다.
겨울에도 푸른빛을 잃지 않아서 더 좋아 보입니다.

생명을 키우는 것은 사람이나 동.식물이나 모두 귀한 일이라 봅니다.
처음에는 작지만 커가면서 변화하고 때가 면 열매를 맺는 그 모습 속에서
삶의 의미와 보람을 주는 것 같습니다.
그 과정은 쉽지는 않습니다.
오래 인내해야 하고 시련과 실수도 감당해야 합니다.
저희 교회에 나오는 주일학생들은 십여 명이지만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어른들과 같이 예배드리다보니 떠들기도 하고 말썽도 부리지만
그래도 빠짐없이 열심히 나오는 그들이 반갑고 고맙고 소망을 줍니다.

교회 정원을 만들고 생울타리를 만드는 이유는,
우선 내가 좋아해서도 하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동네에 자라나는 학생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거의 다 도시로 나갑니다.
장차 그들이 각박한 현실 생활 속에서 혹, 삶을 포기하고 싶고 낙심할 때,
고향교회의 아름다운 풍경을 떠오르며 다시금 용기와 삶의 애착을 가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램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그들이 잘 모를 것입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고 고향을 떠나서 살면 알게 될 것입니다.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기억은 평생에 소중한 유익이 된다는 것을.....,

-활뫼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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