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소설

흙이 된 지렁이 5 (10)

종이인형 꿈틀이 2000. 5. 25. 18:23
안녕하시죠? 시골뜨기 박종인입니다.
봄에서 여름으로 이어지는 어귀에는 후텁지근한 기운이 넘실거립니다.

혹시, 흘레 붙은 지렁이를 보셨나요?
손을 마주잡고 악수하듯 두 지렁이의 머리부분(띠 모양의 환대가 있는 곳)이 마주 붙어있는 꼴, 그 꼬락서니는 쇠막대 두 가닥을 일부 겹쳐 용접을 한 양 한 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수컷이자 암컷이 되어 정자를 주고받는 지렁이는 자웅동체이기에, 교미가 끝난 후 둘 다 각각 알을 낳을 수 있습니다.

자웅동체(雌雄同體)란, 암컷<雌>과 수컷<雄>이 같은<同> 몸에<體> 있는 동물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를테면 대부분의 편모동물과 지렁이, 달팽이, 촌충, 거머리 등속입니다.
자웅동체는 자기의 몸에 있는 암컷생식기와 수컷생식기가 교미를 하여 알을 낳을 수도 있지만(촌충), 피치못할 경우가 아니면 다른 개체와 짝을 이뤄 흘레를 붙습니다.

동작이 굼뜬 지렁이나 달팽이가 굳이 짝을 찾는 까닭은 뭘까요?
한 몸에 있는 정자와 난자가 수정을 하면 유전적으로 비슷한 개체만 생길 것입니다. 그 개체군은 어떤 한 환경에서는 잘 살겠지만, 그 무리가 살기에 불리한 환경에서는 깡그리 죽을 수도 있습니다.
지렁이가 만나기 힘든 짝을 굳이 찾는 것은 유전적 다양성을 높여 갑작스런 환경변화에 대해서도 안정적으로 자손을 번성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더불어 사는 사람들.
끼리끼리 모이면 편하지만, 우리가 굳이 다양한 사람들(환경, 외모, 지역, 기질, 언어, 문화 등등)과 사귀어야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다른 사람들과 사귀는 것은 우리 삶의 질을 거름지게 하는 것입니다.
-종이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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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별무리의 송송함과 초승달의 그윽함이 어우러진 밤하늘의 정적이 밤의 깊이와 맑음을 더해준다. 사랑하기 좋은 밤, 여기저기에서 많은 풀벌레들의 짝을 찾는 소리와 짝을 이룬 모습들이 있다.

그 많은 소리들 중에 꿈틀이는 속삭이는 듯한 여린 소리를 들었다. 눈이 쌓이는 소리처럼 가늘지만 꿈틀이에게는 큰 울림으로 느껴지는 이 소리는, 낙엽 위를 기어가는 지렁이의 소리이다.

지렁이의 몸에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작은 센털(剛毛)이 나있다. 이 센털이 있어 지렁이는 미끄러지지 않고 앞으로 갈 수 있고 종이나 낙엽 위를 기어갈 때 움직이는 소리가 난다.

드디어 꿈틀이는 짝을 만났다.
두 지렁이는 서로의 머리 부분을 맞대며 거꾸로 엉겨붙었다. 두 지렁이는 움찔거리며 상대를 흥분시켜 보다 많은 정자를 받으려 애썼다.

환대 뒤에는 한 쌍의 수생식공(雄)이 있어 교미 중에 이 구멍에서 정자가 나와 짝의 머리부분에 있는 수정주머니에 저장된다.

지렁이는 한 번 교미를 하면 12시간 내지 24시간을 한다. 이는 언제 만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보다 많은 자손을 번식하기 위해 가능한 많은 정자를 얻기 위한 것이다.
상대의 정자를 충분히 제 수정낭에 갈무리하면 이윽고 둘은 떨어져 각기 제 곳으로 간다.

이제는 알을 낳을 일만 남았다. 교배를 마치고 24시간 이내에 알이 들어있는 고치를 땅에 묻는데, 환대에 점액이 나와 생긴 희끄무레한 환상막이 고치가 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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