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우물(둘째형)

하모니카

종이인형 꿈틀이 2001. 10. 29. 23:47
죄송합니다. 칼럼이 늦었지요.
진짜로 게으름을 안부려야 하는데, 여전히 지하철문화마당을 누비고 다니고 있습니다.
저번에는 부산 서면역에서 부산팀, 서울팀, 대구팀이 모두 모여 역사적인(?) 공연을 가졌습니다.
다음은 12월 중에 대구에서 그런 기회를 가질 것 같습니다.
-박우물-



*** 하모니카 ***


"따따따 주먹소리로 따따따 나팔붑니다"
어린시절 동요의 한귀절이다. 주먹으로 몸동작을 그려 트럼본이나 트럼펫을 불어대는 시늉을 했지만
직접 실주변에서 우리가 활용할 악기는 호드기(보리피리)나 버들피리가 아니었을까?
물론 음계를 낸다는 것은 꿈도 못 꾸고 꼬맹이들은 소리내는 데만 얼추 초점을 맞추었다.
그나마 요령이 좋고 손에 잡힌 재질이 좋으면 음의 고저가 입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였다.

버들피리를 기가 막히게 불어대는 사람이 명인으로 지정되었다는 소식을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지만 악기의 재질과 형식을 떠나
자연의 소리를 제도권 내에서 음악으로 수용한 점을 개인적으로는 높게 사주었다.

옥수수 껍질을 벗기면 수염과 함께 촘촘히 박힌 알맹이들이 채 익지도 않은 허연 속살을 내보인다.
단단한 꼬투리 부분과 윗머리를 붙잡고 '후' 불어본다.
하모니카를 연상할 자연스러운 농산물은 단연 옥수수이다.

하모니카를 처음 접한 것은 아마도 꽤 어린나이 였을 것이다.
우리 뒷집에 살던 현숙이 오빠가 즐겨 불렀던 것 같고 우물집의 여자 선배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단짝인 방욱이네 집에서 몰래 그네 형의 하모니카를 불어본 기억이
아마도 입술로 접촉을 해본 직접적인 경험일 것이다.

고1때 이미 사회생활을 접하고 학교에 들어온 나로서는 나와 같은 상황의 동료들이 제법 있었는데도
이쪽도, 저쪽도 끼지 못하는 상황을 스스로 만들다가 하모니카란 악기와 만남을 가졌다.
정주라는 동료가 불고 있는 하모니카를 빌려 이리저리 음계도 찾아 보고 주법도 시도해본 후
돌려주고 못내 아쉬워 하였지만 어찌어찌해 나에게도 하모니카가 생겼다.
십여리 길은 그 다음부터 내 하모니카 실습길이었다. 청바지 뒷주머니에 항상 악기를 집어놓고 뿡짝거리며 다녔다.
나중에는 조회가 시작되어도 들어가지 않고 수업 전까지 교정의 후미진 곳에서 악기를 잡고 있다가
야단을 맞기도 수차례, 수학여행길도 예외는 아니었고 소풍을 가는 길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악기에 밀려 한때 소홀히 취급도 했지만 각 장조별로 활용하는 주요 하모니카는
꼭 비싼 악기가 아니어도 충분히 활용가치가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었다.
통기타가수들이 하는 것처럼 하모니카 목대를 이용해 노래 중간중간 간주를 넣는
소품악기로 애용하다보니 어느덧 하모니카만도 20개가 넘는다.
리오스카, 호너, 톰보등이 주를 이루고 있다.
잘쓰는 G장조나 Am 단음 하모니카는 벌써 음이 이지러진 것 같다.

사춘기때 도회지로 나가 고학생활을 하던 선배는 자취방에서 '고향의 봄'을 연주하며
객지에서의 외로움을 이겨냈다고 들었다.
그 작은 악기는 선배에게 안길 수 있는 평안과 위로를 최대한 부어준 것이다.

몇천만원짜리 악기는 둘째치고 겨우 몇천원, 몇만원으로 치부될 소박한 악기인데다
누구나 불어대면 일단은 소리가 난다는 것 때문에 하모니카를 제대로 악기취급을 안하는 이도 있다.
어쩌면 전동차내에서 구걸을 하는 초라한 행색의 걸인들이 가장 많이 들고 있는 소품이라
으례 그런 연상을 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싸고 비싸고의 차이가 아니라 누가 연주하고,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이 작은 악기는 타인보다 내 영혼을 어루만지는 역할을
시골에서부터 이 도회지의 지하철역까지 이어오고 있다.

까치산역은 유달리 하모니카 연주가 많다.
하모니카 남매가 나와 연주를 하고 신원초등학교 아이들이 고정적으로 연주를 하기 때문이다.
달리는 환경열차안에서의 부천LG 문화센터 어린이들의 하모니카 무대도 아름다운 기억이었다.
물론 다 하모니카 연맹의 이숙희선생님이 도와주시고 신경써주시는 탓이다.

악기를 하나쯤은 다루어야 하는데-라고 생각만 하는 이들이 있다면
우선 하모니카라는 악기와 친구가 되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러면 생각지도 않은 더 괜찮은 대상을 접하게 되었구나라는 고백을 분명 할것이다.


-우물이 일상에서 퍼 올린 서른네번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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