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음살이/사는 얘기

도끼자루로 나무 두드리기

종이인형 꿈틀이 2000. 5. 6. 10:49
살림꾼 박종인입니다.
내일은 어린이 날,
한때 이즈음을 무척 설레며 기다리던 때가 있었죠. 시간의 강에 몸을 실은 인생의 나룻배는 둥실둥실 흘러 어느덧 서른 하고도 셋이나 된 여울목에 이르렀습니다.

문득 내 나이를 헤아리며 아연해짐을 느낍니다. 그러고보니 거울에 비친 귀밑머리에 희뜩희뜩 새치(결코 흰머리가 아니건만 왠지 서럽운 존재)도 보이는군요.

하루하루 살다보니 이즈막에 이르렀습니다.
멋모르던 10대, 깜깜한 20대, 정신없는 30대. 가끔은 지난 날의 일기장이나 편지를 들춰보곤 합니다. 그러면 거기엔 그때의 내가 있습니다.
잠시 들여다보곤 피식 웃습니다. 반쪽을 찾아 두리번 거리던 어느 해, 그녀에게 보낸 편지 한 장이 눈에 띄는군요. 이젠 그때처럼 소용돌이치는 마음이 아니라서 옛얘기 하듯 덤덤히 드러낼 수 있는 글입니다.

사람은 만난다는 것은 어쩜 확인하는 작업인지도 모릅니다. 나와 어울리는지, 함께 할 수 있는지, 아니면 그저 스치는 인연인지 말입니다.

우리에겐 수많은 인연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운명적인 인연은 참으로 드물었죠. 운명적인 인연을 위해 언제나 맘 한구석을 비워놓고 있습니다. 그 빈자리에 누군가가 다가와 앉을 때, 먼지 낀 꼴을 보이기 싫어서 난 사랑하는 연습을 합니다. 누군가를 만나면 그 만남이 인연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름의 열정을 보입니다.

하나씩 확인 되는 순간, 난 사그라지는 양초처럼 가물거립니다. 하지만 촛농이 남아있는 한, 난 심지를 태우며 불을 밝히고자 합니다.
-종이인형-


*******************

당직이다.
순찰을 돌다가 도서관에 들러 메일을 보낸다.
아침부터 조금씩 종일 비가 내렸다. 정말 쥐오줌처럼 조금씩 비가 내린다. 비록 가랑비지만 이 비는 단비이다. 보름 전에 대운동장에 심은 잔디가 목말라 헐떡였는데, 이 비로 조금은 갈증을 덜었으리라 기대를 한다.

내가 **의 뜻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나도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찾고 있다. 서로에게 가장 좋은 길을 말이다. 그러나 그 길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한 선택을 보류하고 싶구나. 안개가 걷히기 전까진 발을 떼고 싶지 않아. **이라는 이름의 안개는 짙기만 하다.

예전에 내 처신은 이랬다. 안개 낀 길이더라도 일단 한 발짝을 옮겨라. 그러면 한 발 앞이 보일 것이다. 비록 우왕좌왕하느라 힘이 들겠지만, 가만 앉아서 안개가 걷히기만 기다리는 것보다는 더 많은 것을 얻을 것이다. 실패을 통한 경험이라고 할까?

그러나 지금은 안개가 걷힐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젠 더이상 이리저리 헤멜 기력이 없구나. 난 노란불을 키고 오늘도 주위를 비치고 있다.

내가 힘들어 하는 것은 사실이다.
지금 내가 **에게 하는 행동은 도끼자루로 나무를 두드리는 것과 같다. 도끼날로 나무를 찍어 넘어뜨리려는 의도가 아니라, 손잡이 부분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과연 이 나무를 내가 감당할 나무인지 확인하는 몸짓이다.

**, 괜찮다면 나의 이런 짓거리를 용납하길 바란다. 가장 **에게 좋은 길을 난 선택 하련다. **을 옭아매거나 밀어뜨리는 의도가 결코 아님을 알아 주었으면 한다.

**은 아무 답을 안할지라도 난 **에게 글을 보내며 어쩜 정리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 껍질씩 벗기는 것이 결국 양파 껍질 벗기기였는지, 옥수수 껍질 벗기기 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시나브로 그 속내가 드러나겠지!

고맙다. 날 배려해 줘서.
매몰차게 대할 수도 있었겠지. 그러면 난 산산조각이 났을지도 몰라. 뜨겁게 달구어진 바위에 갑자기 찬물을 끼얹으면 급히 식으며 금이 가듯이 말야. 넌 산들바람으로 내 달구어진 심장을 식히고 있다.

혹, **을 대하는 내 태도가 부자연스럽고 어색하더라도 이해해 주길 바래. 그대에게 화났거나 그대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내 감정을 추스리지 못하는 미숙함 때문인 것을 알아 주길 바란다.
정말 편안한 관계를 바라며.......

이젠 다시 당직실로 가봐야 겠다.
오늘 밤이 길기만 하겠구나. 20여일에 한 번이지만 당직은 피곤해! 그럼, 편안한 쉼을 가지렴. 샬롬!

-ㅈㅇㅇ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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