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우물(둘째형)
썩은 음식
종이인형 꿈틀이
2001. 8. 16. 17:31
박우물입니다.
아직도 우리는 피서라는 것을 못가고 여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제 일상에 복귀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고향을 다녀온 분들의 정감어린 기억들이 함께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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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썩은 음식 *
"따르릉."
전화벨이 울리면 아무리 깊은 잠이 들었어도 또렷한 목소리로 수화기를 든다.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받는다면 전화를 건 쪽에서 미안할 것이고
대부분 늦은 시각이나 이른 시각이란 기준도 내쪽 기준이기 때문이다.
"여보세요."
어머니다.
형님네 가족이 모처럼 피서(?)를 서울로 간다며 올라 가는데 무엇을 보낼까 말씀하신다.
시계를 보아하니 아직 여섯시가 못되었다.
방학이라는 핑계로 연이어 새벽 두시에 잠을 청하는 날이 부지기수였는데
아무리 부지런을 떨어도 우리집으로서는 한밤중이다.
"야아. 형네가 올라간다는디 된장이랑 보낼까 해서 전화해봤다."
"아이구! 어머니. 보내도 집에서 밥먹을 사람이 없어 벌써 썩어나간게 많아요.
마음을 받았으니까 다른 것 보내지 말고 어머니 건강이나 신경쓰---."
"그래도 그게 아닌디, 콩자반은 안썩을팅께 그거라도 보내마."
일일이 나열하는 소산물들을 듣다가는 한이 없을 것 같아 말을 자르는 것은 내 역이다.
못내 아쉬워 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전달되지만 전화를 끊고 잠을 청하려다
불현듯 썩어나간다는 내 표현이 연상작용을 일으켜 켜켜히 쌓인 어스름한 기억들이 몇꾸러미씩 삐져 나온다.
이대로 누울 수가 없어 다시 일어나 급히 컴퓨터를 켰다.
"어쩔까이. 또 썩어부렸네."
정지(부엌)에서 쌀독을 들어다 보더니 어머니가 혀를 끌끌 차신다.
"아까워라. 큰 애 오면 줄라고 숨켜 놨는디."
형이 이른 나이에 학업을 포기하고 면소재지 농협에서 근무를 할 때의 일이다.
뒷집 현숙이네가 크디큰 홍시를 작은 바구니로 갖다준 후
우리는 다 먹은 줄 알았는데 어머니는 몇 개를 몰래 쌀독에 숨겨놓았나보다.
간식이라는 것도 없고 가게도 없는 상태에서 큰아들이 집에 들르면
무언가 당신 딴에 내놓을 게 있어야 한다는 마음씀은 거진 이렇게 끝이 났다.
홍시만 썩어나간게 아니다.
어쩔땐 닭다리를 숨겨 놓았다가 버렸는데 그때는 아마 잊어버린 것보다
시기를 놓쳐 썩은 음식이 되었을 것이다.
숨겨 놓은 것들이야 어쩌면 하찮은 머루나 옥수수, 단수수, 감, 밤같은 흔한 농작물이 대부분이지만
어머니는 습관적으로 음식물들을 당신이 점찍어놓은 장소에 따로 챙겨놓으셨다.
어머니가 건망증이 많아서 잊어버린 것보다는 우리 형제와의 숨바꼭질 때문에
좀 더 안전한 장소를 찾다보니 당신 스스로도 손이 안가는데다 보관을 하여 음식이 썩어간 것도 있었다.
우리 형제가 또 어떤 사람들인가.
입이 심심하고 배가 고프다 싶으면 분명히 어머니가 어느 곳에다 간식거리를 숨겨 놓았을거라 믿고
삼형제가 의기투합해 합동으로 살강을 뒤지고, 광을 헤집고, 장독대를 기웃기웃거렸다.
그러니 어머니도 장소선택이 점점 복잡해진 것이다.
튀밥을 올려놓은 선반에 키가 안닿으면 이불이라도 쌓아놓고 올라가야 했고
물엿을 사놓았을 때는 몰래 한숟가락씩 입에 대느라 뒤안 출입을 뻔질나게 하였다.
어머니가 숨기는 음식들은 그때마다 용도가 달랐다.
아버지가 안 계실 때는 아버지를 위해, 형이 없을 때는 물론 형을 위해서였다.
또 다른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 싶을 때 뜻밖의 꺼리를 우리에게 제공하는 배려도 있었다.
하긴 음식뿐만이 아니었다.
대부분 시골집들이 그랬듯이 구들위에 흙을 충분히 입히고 신문지나 대충 깐 위에다 장판을 덧씌웠는데
장판지밑이 어머니의 자투리 금고 역할을 한 것이다.
가끔씩 청소 때문에 역한 흙내가 올라오는 장판을 걷으면서 어머니가 또 한숨을 쉬신다.
애초 지폐는 놔둘 곳이 못되는데, 돈이 헤진 것은 둘째고 손대면 바스러질 정도로
곰팡이가 낀 썩은 돈이 되었기 때문이다.
성남생활에서도 습기어린 장판바닥의 돈이 한번 목격되었다.
물론 도회지라 은행도 있지만 은행저금과는 별개로 이런 은닉은
어머니 나름대로 자식들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어리석은(?) 습관이 되버린 것이다.
어머니가 한 켠에 숨겨 놓았다가 음식물을 썩혔다면 우리집에서는 보내준 음식을
제때 먹지 못하여 썩혀 버리는 게 많았다.
우리가 내려가거나 당신이 올라올 때는 무언가를 잔뜩 보내지만
미숫가루가 버려졌고, 집장이 어느 순간 쓰레기통으로, 청국장이 방출되었다.
아기도 없이 사는 부부지만 방학때외에는 시간 쓰는것도 달라
어쩔땐 집에서 일주에 두,세번이나 식사를 함께 하면 다행이니 당연한 결과겠지만.
음식을 보내면 노인이 되어서인지 자꾸 확인전화를 한다.
"그거는 국에다 풀어서 먹으면 되고---"
시골을 언제 간다고하다 늦어지면 내가 온다고 하여 사다 놓은 꼴뚜기나 조개가
어떻게 되었을거라 말을 늘여놓으신다.
이젠 굳이 장독대로 숨기지 않아도 누가 훔쳐먹을 사람도 없으니
냉장고에 안심하며 보관하고 있지만 아직도 숨기시는 게 있다.
예비로 사두었거나 선물로 들어온 술을 숨기시는 것은 아버지 때문에
지금까지 이어지는 어머니의 임무가 되셨다.
아무리 별난 장소에 숨겨도 술냄새만큼은 귀신같이 알아채고 아버지가 다 비운다며 혀를 끌끌 차니
확실한 것은 우리 형제와의 숨바꼭질이 아버지로 넘겨진 셈이다.
혹 지금도 장판바닥에 어머니의 숨겨진 돈이 곰팡이와 더불어 썩고 있는지 모르겠다.
시어진 홍시, 쉰내 나는 옥수수, 눅눅해진 튀밥, 딱딱해진 군고구마를 내놓는다면
이젠 거들떠도 안보겠지만 그 시고 닳아진 강도만큼 도타왔던 어머니의 마음은
결코 썩지않고 살아있을 것이다.
- 박우물이 서른 두 번째 퍼 올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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