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들의 이야기
쎈다이를 돌리며
종이인형 꿈틀이
2001. 7. 24. 16:40
* 쎈다이를 돌리며 *
- 양 지 건 -
1. 외래어 사용 금지
공사판을 들어가는 입구에 큰 글씨로 "외래어 진입 금지, 우리말 일방 통행"이라는 표어가 붙어 있다.
건축 현장에서 쓰이는 외래어를 없애고 우리말로 대체하자는 것이다.
이들이 목표로 삼는 외래어는 주로 일본어이다.
호로, 단까, 시다시, 구루마 등이 교정의 대상이 되는 말이다.
제목으로 쓴 쎈다이도 사실은 쓰지 말아야 하는 말이다.
쎈다이가 도대체 무슨 말일까?
혹시 짐작을 했다면 당신은 상상력이 정말로 뛰어난 사람이다.
쎈다이는 "sander"가 변형된 단어이다.
"sander"는 무엇인지 짐작이 가는지?
아마 영어에 난다긴다 하는 사람들도 이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를 것이다.
이 단어는 거친 면을 부드럽게 만드는 기계를 지칭한다.
흔히 뻬빠라고 불리는 사포를 이 기계의 앞에다 붙이고
벽과 천장의 거친 면을 가는 것이 지난 주 내가 주로 한 일이었다.
아마도 모래처럼 부드럽게 만든다는 의미에서 이 기계에 "sander"라는 이름이 붙었을 것이고,
여기에 공사장에서 주로 쓰이는 일본어의 영향이 더해져 쎈다이 라는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아저씨들이 하는 말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빠데니 쎈다니 피티니 하는 말들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 전에 노가다를 해 본 경험은 있었지만 페인트 작업은 처음 이었기 때문에
나는 마치 낯선 세계에 들어선 사람과도 같았다.
사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아저씨들이 이런 말을 쓰는 것은 그다지 신기하거나 고쳐야 할만한 일이 아니다.
이들의 용어에 일본어가 많은 것은 초기 서구적인 건축을 일본을 통해 받아들였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고,
이들이 순화되었다는 관제(官製)의 단어를 거부하고 그들의 용어를 고집하는 것도
말을 통해 자신들만의 영역을 구축하려는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의 표출에 다름 아니다.
사실 이러한 욕구는 어느 집단에게나 존재한다.
사춘기 아이들에게도 그들만의 언어가 있고,
조폭에게도 다른 집단의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그들의 말이 있다.
요즘 한참 문제가 되는 인터넷상의 언어도 마찬가지이다.
정화의 대상을 결정한 먹물들의 언어는 어떤가?
한자와 영어에 찌들어 있다.
아마 언어 순화 운동을 펼치기로 결의한 공문서는 불필요한 한자로 범벅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일반인의 접근을 막아 놓은 법전이나 의사의 처방전도
언어의 울타리 기능을 잘 보여 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언어에 귀천이 있는가?
없다!
공사장에서 쓰는 일본어 한국어 짬뽕말이 천한 것이 아니라,
말 끝마다 영어를 섞어 쓰며 알량한 지식을 자랑하는 당신의 언어가 더 천하다.
그들의 언어를 내버려 두라.
2. 맑스가 옳다.
맑스가 한 말 중에 가장 오래 동안 나의 뇌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말은
다름 아닌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은 노동자를 소외시킨다" 라는 명제였다.
자신이 하는 노동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쉽게 넘어갈 수 있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여기에서 수 많은 문제들이 생긴다.
페인트 칠을 하기 전에 쎈다이를 돌리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다.
우선 쎈다이공은 기계를 돌릴 때 발생하는 먼지를 고스란히 먹어야 한다.
막상 페인트를 칠하는 것보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위험하다.
아저씨들은 그 먼지가 인체에 전혀 무해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먼지를 마셔서 몸에 좋은 점은 또 무어겠는가?
마시는 것보다 더 괴로운 것은 눈에 들어오는 먼지이다.
나야 임시로 이 일을 하니까 그래도 낫다고 하지만
수 십년을 페인트칠을 하며 살아 온 아저씨들에게는 상당히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사실 쎈다 일이 노동의 강도 면에서는 농사 일보다 떨어지지는 않는다.
그런데 왜 농사 일을 하면서 가졌던 보람과 충만함이 쎈다 일에는 없는 것일까?
노동의 결과물과 나 사이의 간격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천장을 바라보며 일을 하는 사람에게
건물이 완성 된 이후를 생각하며 보람을 가지라고 주문하는 것은 무리이다.
우리는 분업을 통해 속도를 얻었지만, 노동의 보람이라는 훨씬 더 중요한 가치를 잃었다.
속도 앞에 가치가 무릎을 꿇었다.
형편 없는 가격으로 평가 된 이들의 노동은 결국 노동의 주인인 노동자를 울리고
고용주를 웃음 짓게 만든다.
대규모 공사장은 대부분 수 많은 하청 업체를 통해 실질적인 공사가 이루어진다.
나만 해도 내가 월급을 받는 것은 최소한 세 단계를 거친 이후이다.
건설의 책임 회사인 삼성의 직원들은 하루 종일 뒷짐 쥐고 감독하는 것이 일이다.
여러 단계의 하청을 거치며 이익은 높은 단계에 서있는 사람에게 다 돌아가고
막상 노동자의 손에 쥐어 지는 것은 별로 없다.
하루 4-5만원으로 가정을 꾸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정말 모든 조건이 잘 맞아서 한 달에 25일을 일한다고 해도 한 달이면 125만원이다.
노후 보장이나 사회 보장은 거의 받지 못한다.
이들이 제일 미워하는 직업은 의사이다.
못 배우고 할 일이 없어서, 죽지 못해 이 일을 하는 것이다.
정신 노동을 말하는 사람들이여.
당신이 누리는 안락함과 편안함은 육체 노동의 희생을 통해 얻은 불의한 것이다.
인정하기 싫겠지만 사실이다.
3. 공부 열심히
공사 현장이 학교다 보니 아무래도 학교 내부를 드나드는 일이 생긴다.
나는 메일을 확인하기 위해 더 자주 학교를 갔다.
나름대로 옷도 털고 용모를 단정히 하고 학교를 가는 데도, 사람들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다.
학교에 그런 복장으로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방인이 된 듯한 느낌.
아저씨들은 일이 끝나기가 무섭게 노동의 흔적을 지우기에 바쁘다.
페인트 일이 하는 동안은 어려워도 실내에서 일하기 때문에
여름에도 타지 않는 것이 장점이라고 말하신다.
일 끝난 후, 잘 씻고 옷을 갈아입으면 전혀 일한 사람 같지 않다는 것이 이 일의 장점이다.
이제 땀 냄새는 부끄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노동으로 얼룩진 옷은 손가방에 숨겨야 하는 대상이 되었고,
대중 교통에는 오직 사무직으로 보이는 사람들만 가득하다.
헬스나 테니스를 하며 흘리는 땀은 그래도 용인이 되지만,
노가다를 하느라고 땀을 흘린 채로 거리를 다니는 것은 좀 그렇다.
깨끗이 샤워하고 향수라도 뿌리셔야지 문화인이지.
아저씨들과 소주를 마시러 갔다.
술이 좀 얼큰해진 아저씨들은 각자의 기구한 사연을 풀어놓으시기 시작한다.
이 이야기의 핵심에는 언제나 자신이 왜 공부의 기회를 놓쳤고
그래서 그 이 후 인생이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는가에 대한 한탄이 그야 말로 단골 메뉴로 들어간다.
공부를 못해서,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대학을 못 나와서 이런 실패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꼭 하시는 말씀.
너는 공부를 열심히 해라.
난 생각한다.
"그래 열심히 해야겠지. 그런데 열심히 해서 무얼 할까?
나도 이 전에 그랬고 지금도 그런 사람들처럼 알량한 지식을 이용해서 등 쳐 먹고 살아야 하는 걸까? 살아가게 되는 걸까?
술을 별로 마시지도 않았는데 점점 취해 갔다.
- 양 지 건 -
1. 외래어 사용 금지
공사판을 들어가는 입구에 큰 글씨로 "외래어 진입 금지, 우리말 일방 통행"이라는 표어가 붙어 있다.
건축 현장에서 쓰이는 외래어를 없애고 우리말로 대체하자는 것이다.
이들이 목표로 삼는 외래어는 주로 일본어이다.
호로, 단까, 시다시, 구루마 등이 교정의 대상이 되는 말이다.
제목으로 쓴 쎈다이도 사실은 쓰지 말아야 하는 말이다.
쎈다이가 도대체 무슨 말일까?
혹시 짐작을 했다면 당신은 상상력이 정말로 뛰어난 사람이다.
쎈다이는 "sander"가 변형된 단어이다.
"sander"는 무엇인지 짐작이 가는지?
아마 영어에 난다긴다 하는 사람들도 이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를 것이다.
이 단어는 거친 면을 부드럽게 만드는 기계를 지칭한다.
흔히 뻬빠라고 불리는 사포를 이 기계의 앞에다 붙이고
벽과 천장의 거친 면을 가는 것이 지난 주 내가 주로 한 일이었다.
아마도 모래처럼 부드럽게 만든다는 의미에서 이 기계에 "sander"라는 이름이 붙었을 것이고,
여기에 공사장에서 주로 쓰이는 일본어의 영향이 더해져 쎈다이 라는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아저씨들이 하는 말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빠데니 쎈다니 피티니 하는 말들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 전에 노가다를 해 본 경험은 있었지만 페인트 작업은 처음 이었기 때문에
나는 마치 낯선 세계에 들어선 사람과도 같았다.
사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아저씨들이 이런 말을 쓰는 것은 그다지 신기하거나 고쳐야 할만한 일이 아니다.
이들의 용어에 일본어가 많은 것은 초기 서구적인 건축을 일본을 통해 받아들였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고,
이들이 순화되었다는 관제(官製)의 단어를 거부하고 그들의 용어를 고집하는 것도
말을 통해 자신들만의 영역을 구축하려는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의 표출에 다름 아니다.
사실 이러한 욕구는 어느 집단에게나 존재한다.
사춘기 아이들에게도 그들만의 언어가 있고,
조폭에게도 다른 집단의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그들의 말이 있다.
요즘 한참 문제가 되는 인터넷상의 언어도 마찬가지이다.
정화의 대상을 결정한 먹물들의 언어는 어떤가?
한자와 영어에 찌들어 있다.
아마 언어 순화 운동을 펼치기로 결의한 공문서는 불필요한 한자로 범벅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일반인의 접근을 막아 놓은 법전이나 의사의 처방전도
언어의 울타리 기능을 잘 보여 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언어에 귀천이 있는가?
없다!
공사장에서 쓰는 일본어 한국어 짬뽕말이 천한 것이 아니라,
말 끝마다 영어를 섞어 쓰며 알량한 지식을 자랑하는 당신의 언어가 더 천하다.
그들의 언어를 내버려 두라.
2. 맑스가 옳다.
맑스가 한 말 중에 가장 오래 동안 나의 뇌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말은
다름 아닌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은 노동자를 소외시킨다" 라는 명제였다.
자신이 하는 노동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쉽게 넘어갈 수 있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여기에서 수 많은 문제들이 생긴다.
페인트 칠을 하기 전에 쎈다이를 돌리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다.
우선 쎈다이공은 기계를 돌릴 때 발생하는 먼지를 고스란히 먹어야 한다.
막상 페인트를 칠하는 것보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위험하다.
아저씨들은 그 먼지가 인체에 전혀 무해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먼지를 마셔서 몸에 좋은 점은 또 무어겠는가?
마시는 것보다 더 괴로운 것은 눈에 들어오는 먼지이다.
나야 임시로 이 일을 하니까 그래도 낫다고 하지만
수 십년을 페인트칠을 하며 살아 온 아저씨들에게는 상당히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사실 쎈다 일이 노동의 강도 면에서는 농사 일보다 떨어지지는 않는다.
그런데 왜 농사 일을 하면서 가졌던 보람과 충만함이 쎈다 일에는 없는 것일까?
노동의 결과물과 나 사이의 간격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천장을 바라보며 일을 하는 사람에게
건물이 완성 된 이후를 생각하며 보람을 가지라고 주문하는 것은 무리이다.
우리는 분업을 통해 속도를 얻었지만, 노동의 보람이라는 훨씬 더 중요한 가치를 잃었다.
속도 앞에 가치가 무릎을 꿇었다.
형편 없는 가격으로 평가 된 이들의 노동은 결국 노동의 주인인 노동자를 울리고
고용주를 웃음 짓게 만든다.
대규모 공사장은 대부분 수 많은 하청 업체를 통해 실질적인 공사가 이루어진다.
나만 해도 내가 월급을 받는 것은 최소한 세 단계를 거친 이후이다.
건설의 책임 회사인 삼성의 직원들은 하루 종일 뒷짐 쥐고 감독하는 것이 일이다.
여러 단계의 하청을 거치며 이익은 높은 단계에 서있는 사람에게 다 돌아가고
막상 노동자의 손에 쥐어 지는 것은 별로 없다.
하루 4-5만원으로 가정을 꾸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정말 모든 조건이 잘 맞아서 한 달에 25일을 일한다고 해도 한 달이면 125만원이다.
노후 보장이나 사회 보장은 거의 받지 못한다.
이들이 제일 미워하는 직업은 의사이다.
못 배우고 할 일이 없어서, 죽지 못해 이 일을 하는 것이다.
정신 노동을 말하는 사람들이여.
당신이 누리는 안락함과 편안함은 육체 노동의 희생을 통해 얻은 불의한 것이다.
인정하기 싫겠지만 사실이다.
3. 공부 열심히
공사 현장이 학교다 보니 아무래도 학교 내부를 드나드는 일이 생긴다.
나는 메일을 확인하기 위해 더 자주 학교를 갔다.
나름대로 옷도 털고 용모를 단정히 하고 학교를 가는 데도, 사람들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다.
학교에 그런 복장으로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방인이 된 듯한 느낌.
아저씨들은 일이 끝나기가 무섭게 노동의 흔적을 지우기에 바쁘다.
페인트 일이 하는 동안은 어려워도 실내에서 일하기 때문에
여름에도 타지 않는 것이 장점이라고 말하신다.
일 끝난 후, 잘 씻고 옷을 갈아입으면 전혀 일한 사람 같지 않다는 것이 이 일의 장점이다.
이제 땀 냄새는 부끄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노동으로 얼룩진 옷은 손가방에 숨겨야 하는 대상이 되었고,
대중 교통에는 오직 사무직으로 보이는 사람들만 가득하다.
헬스나 테니스를 하며 흘리는 땀은 그래도 용인이 되지만,
노가다를 하느라고 땀을 흘린 채로 거리를 다니는 것은 좀 그렇다.
깨끗이 샤워하고 향수라도 뿌리셔야지 문화인이지.
아저씨들과 소주를 마시러 갔다.
술이 좀 얼큰해진 아저씨들은 각자의 기구한 사연을 풀어놓으시기 시작한다.
이 이야기의 핵심에는 언제나 자신이 왜 공부의 기회를 놓쳤고
그래서 그 이 후 인생이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는가에 대한 한탄이 그야 말로 단골 메뉴로 들어간다.
공부를 못해서,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대학을 못 나와서 이런 실패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꼭 하시는 말씀.
너는 공부를 열심히 해라.
난 생각한다.
"그래 열심히 해야겠지. 그런데 열심히 해서 무얼 할까?
나도 이 전에 그랬고 지금도 그런 사람들처럼 알량한 지식을 이용해서 등 쳐 먹고 살아야 하는 걸까? 살아가게 되는 걸까?
술을 별로 마시지도 않았는데 점점 취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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