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들의 이야기
ㄱ씨 이야기
종이인형 꿈틀이
2001. 7. 11. 22:35
* 어느 비현실적 근본주의자의 이야기 *
- 양지건 -
- 이 글은 익명의 비현실적 근본주의자에 대한 이야기임을 밝힙니다.
* 자동차에 대해
근본주의자 ㄱ씨가 녹색환경이라는 야릇한 잡지를 처음 본 곳은 군대였다.
지금 생각해도 이해 할 수 없는 것은 그렇게 과격한 잡지가 어떻게 군대에 있을 수 있냐는 것이다.
아마도 누군가가 기증한 책 사이에 껴 있었을 것이고,
예나 지금이나 제목만으로 보안성(保安性)을 판단하는 군인들의 눈을 피해서 살아 남았을 것이다.
그 책에는 자동차에 대한 이야기가 특집으로 실려 있었는데
단순한 근본주의자 ㄱ씨는 이 글을 읽으며 평생 자가용를 안 사겠다는 결심을 하고 만다.
그 결심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그 책에 의하면 매 년 한국에서 만명이 넘는 사람이 교통 사고로 죽어가고,
엄청난 대기 오염, 석유 자원의 소모를 낳는 백해무익(百害無益)의 이기가 자동차라는 것이다.
설마 백해(百害)하고 정말로 무익(無益)하겠냐마는 당시 군인이던 상황과 ㄱ씨의 천성적인 단순함이 이런 엄청난 결심을 낳은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ㄱ씨는 이 결심에 대해 좀 더 진지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자동차를 안 사는 것이 단순히 개인의 기호만으로 인정되지 않는 요상한 사회를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바쁜 세상을 살아가려면 어느 정도의 기동력을 갖추어야만 한다는 사실과
한국 사회에서 자동차가 지니는 신분 표시의 기능을 간과한 것이 ㄱ씨의 실수였다.
하지만 자동차에게 길의 대부분을 내주고 늘 떠밀려서 다녀야하는 번잡한 도시를 거닐 때,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는 눈이 언제 왔는지 모를 정도로 신속하게 제설(除雪)이 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보도(步道)는 빙판일 때,
교회로 들어가는 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 사이를 곡예 하듯 빠져나갈 때마다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ㄱ씨는 좀 느리고 불편하더라도 대중교통을 평생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사람들이 자가용을 줄이고 대중교통을 늘리면 잃어버린 골목길과 보도(步道)를 찾지 않을까 하는 비현실적인 공상도 해본다.
컴퓨터 앞에서 바보가 되어 가는 아이들이 다시 골목으로 나와 재잘대며 노는 그런 날을 꿈꿔 본다.
* 밥에 대해서
류영모 선생은 평생 한 끼를 드셨다는 문구를 읽은 것이 문제였다.
그는 세 가지의 이유로 하루 한끼를 고집했는데,
첫째. 하루 세끼를 먹는 것이 민족 앞에서 부끄럽다는 것이었다.
둘째. 식(食)이 인간 모든 욕구의 근원이니 다른 욕구들도 다스리기 위해서는 식(食)을 먼저 다스려야한다는 것이다.
셋째. 건강에 좋다는 것이다.
역시 단순한 근본주의자 ㄱ씨는 읽자마자 한 번 해보기로 결심한다.
처음 열흘은 힘이 부치더니 점점 몸이 적응되는 것이 느껴진다.
잠도 많이 줄고 성욕도 현저히 준다.
몸도 왠지 가뿐하다. 주머니에 돈도 많이 남는다.
한 끼 먹는 밥이 이전보다 훨씬 맛있고 밥에게도 고마움을 더 깊이 느낀다.
이참에 ㄱ씨는 탄산 음료나 커피를 줄이고 대신 차를 마시기로 결심한다.
오래 살아서 좋은 세상 보려면 그래야 될 것만 같다. 즐겨 먹는 유해 식품에 대해서도 깊게 고민한다.
한 끼 먹음으로 절약되는 돈을 어떻게 쓸것인가도 생각해 본다.
사람이 원래 세 끼 먹도록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듣는다.
다들 ㄱ씨를 걱정해서 하는 말들다. 하지만 혹시 훈련되어진 건 아닐까?
요즘의 자기를 보면 그런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한 끼 밖에 안 먹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는 순간 배가 고파지니 말이다. 일체유심조(一切有心造).
* 잃어버린 물건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인생이 허무하다고 말한다.
허무는 내가 이룩한 것, 나의 소유가 영원하지 않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들이 언제 나를 떠나갈지 모르는 불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언제 나를 버릴지 혹은 떠날지 모른다는 두려움.
이러한 슬픔이 집착을 가져오고 매니아를 만든다.
그래서 성경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단호한 선언을 한다.
허무할 것 없다는 것이다. 원래 네 것은 하나도 없고 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거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이삭을 요구하기도 하고, 욥의 모든 가족과 재산, 건강을 하루 아침에 가져가신다.
은행구좌가 빵빵한 부자에게 오늘 밤에 골로 보내겠다고 하신다.
허무한 것이다. 어찌 허무하지 않겠는가? ㄱ씨는 유달리 책과 CD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늘 바로 떠나려면 간소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은 잘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소유욕에 대해서는 잘도 씹으면서 책에 대해서는 다를 바가 없다.
그런 ㄱ씨가 전철에서 책을 잃어버렸다. 도합 네 권. 모두 아끼는 책이었다.
그 후 ㄱ씨는 며칠간 마음이 꿀꿀했는데 본인은 그 이유를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평소 거의 꿈을 꾸지 않는 ㄱ씨는 잃어버린 책을 읽는 꿈을 꾼다.
꿈에서 깨어난 후 얼마나 부끄러운지 ㄱ씨는 한 동안 멍해있었다.
얼마 안 되는 책이지만 하나님이 오늘 밤에 다 가져 가신다고 말한 것이다.
내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은 소유를 신으로 섬기고 사는 자본주의인(資本主義人)으로 살 것을 끊임 없이 강요당하는 우리에게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그러나 자꾸 인정하라고 하신다. 그래서 앞으로 내 책들을 장기적으로 다 나눠주기로 결심했다.
특히 좋은 책은 나눠주거나 공동 소유로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언제고 다시 볼 것이라는 핑계로 책을 모았지만 실제 그런 책은 몇 권 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책대로 살면 되지 뭐... ㄱ씨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집착을 이런 식으로 떨쳐버려 본다.
* ㄱ씨에 대한 나의 느낌
ㄱ씨는 괴상한 사람이다.
평소에는 근본주의자를 그렇게 비난하면서도 어떤 말을 들어보면 영락 없는 골수 근본주의자이다.
더 대책이 안서는 것은 가끔씩은 자기의 요상한 삶의 방식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받아들여질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ㄱ씨에게 늘 우정어린 충고를 하지만 ㄱ씨가 변할 것 같지는 않다.
한마디로 불쌍한 사람이다.
- 양지건 -
- 이 글은 익명의 비현실적 근본주의자에 대한 이야기임을 밝힙니다.
* 자동차에 대해
근본주의자 ㄱ씨가 녹색환경이라는 야릇한 잡지를 처음 본 곳은 군대였다.
지금 생각해도 이해 할 수 없는 것은 그렇게 과격한 잡지가 어떻게 군대에 있을 수 있냐는 것이다.
아마도 누군가가 기증한 책 사이에 껴 있었을 것이고,
예나 지금이나 제목만으로 보안성(保安性)을 판단하는 군인들의 눈을 피해서 살아 남았을 것이다.
그 책에는 자동차에 대한 이야기가 특집으로 실려 있었는데
단순한 근본주의자 ㄱ씨는 이 글을 읽으며 평생 자가용를 안 사겠다는 결심을 하고 만다.
그 결심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그 책에 의하면 매 년 한국에서 만명이 넘는 사람이 교통 사고로 죽어가고,
엄청난 대기 오염, 석유 자원의 소모를 낳는 백해무익(百害無益)의 이기가 자동차라는 것이다.
설마 백해(百害)하고 정말로 무익(無益)하겠냐마는 당시 군인이던 상황과 ㄱ씨의 천성적인 단순함이 이런 엄청난 결심을 낳은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ㄱ씨는 이 결심에 대해 좀 더 진지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자동차를 안 사는 것이 단순히 개인의 기호만으로 인정되지 않는 요상한 사회를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바쁜 세상을 살아가려면 어느 정도의 기동력을 갖추어야만 한다는 사실과
한국 사회에서 자동차가 지니는 신분 표시의 기능을 간과한 것이 ㄱ씨의 실수였다.
하지만 자동차에게 길의 대부분을 내주고 늘 떠밀려서 다녀야하는 번잡한 도시를 거닐 때,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는 눈이 언제 왔는지 모를 정도로 신속하게 제설(除雪)이 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보도(步道)는 빙판일 때,
교회로 들어가는 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 사이를 곡예 하듯 빠져나갈 때마다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ㄱ씨는 좀 느리고 불편하더라도 대중교통을 평생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사람들이 자가용을 줄이고 대중교통을 늘리면 잃어버린 골목길과 보도(步道)를 찾지 않을까 하는 비현실적인 공상도 해본다.
컴퓨터 앞에서 바보가 되어 가는 아이들이 다시 골목으로 나와 재잘대며 노는 그런 날을 꿈꿔 본다.
* 밥에 대해서
류영모 선생은 평생 한 끼를 드셨다는 문구를 읽은 것이 문제였다.
그는 세 가지의 이유로 하루 한끼를 고집했는데,
첫째. 하루 세끼를 먹는 것이 민족 앞에서 부끄럽다는 것이었다.
둘째. 식(食)이 인간 모든 욕구의 근원이니 다른 욕구들도 다스리기 위해서는 식(食)을 먼저 다스려야한다는 것이다.
셋째. 건강에 좋다는 것이다.
역시 단순한 근본주의자 ㄱ씨는 읽자마자 한 번 해보기로 결심한다.
처음 열흘은 힘이 부치더니 점점 몸이 적응되는 것이 느껴진다.
잠도 많이 줄고 성욕도 현저히 준다.
몸도 왠지 가뿐하다. 주머니에 돈도 많이 남는다.
한 끼 먹는 밥이 이전보다 훨씬 맛있고 밥에게도 고마움을 더 깊이 느낀다.
이참에 ㄱ씨는 탄산 음료나 커피를 줄이고 대신 차를 마시기로 결심한다.
오래 살아서 좋은 세상 보려면 그래야 될 것만 같다. 즐겨 먹는 유해 식품에 대해서도 깊게 고민한다.
한 끼 먹음으로 절약되는 돈을 어떻게 쓸것인가도 생각해 본다.
사람이 원래 세 끼 먹도록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듣는다.
다들 ㄱ씨를 걱정해서 하는 말들다. 하지만 혹시 훈련되어진 건 아닐까?
요즘의 자기를 보면 그런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한 끼 밖에 안 먹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는 순간 배가 고파지니 말이다. 일체유심조(一切有心造).
* 잃어버린 물건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인생이 허무하다고 말한다.
허무는 내가 이룩한 것, 나의 소유가 영원하지 않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들이 언제 나를 떠나갈지 모르는 불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언제 나를 버릴지 혹은 떠날지 모른다는 두려움.
이러한 슬픔이 집착을 가져오고 매니아를 만든다.
그래서 성경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단호한 선언을 한다.
허무할 것 없다는 것이다. 원래 네 것은 하나도 없고 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거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이삭을 요구하기도 하고, 욥의 모든 가족과 재산, 건강을 하루 아침에 가져가신다.
은행구좌가 빵빵한 부자에게 오늘 밤에 골로 보내겠다고 하신다.
허무한 것이다. 어찌 허무하지 않겠는가? ㄱ씨는 유달리 책과 CD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늘 바로 떠나려면 간소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은 잘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소유욕에 대해서는 잘도 씹으면서 책에 대해서는 다를 바가 없다.
그런 ㄱ씨가 전철에서 책을 잃어버렸다. 도합 네 권. 모두 아끼는 책이었다.
그 후 ㄱ씨는 며칠간 마음이 꿀꿀했는데 본인은 그 이유를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평소 거의 꿈을 꾸지 않는 ㄱ씨는 잃어버린 책을 읽는 꿈을 꾼다.
꿈에서 깨어난 후 얼마나 부끄러운지 ㄱ씨는 한 동안 멍해있었다.
얼마 안 되는 책이지만 하나님이 오늘 밤에 다 가져 가신다고 말한 것이다.
내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은 소유를 신으로 섬기고 사는 자본주의인(資本主義人)으로 살 것을 끊임 없이 강요당하는 우리에게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그러나 자꾸 인정하라고 하신다. 그래서 앞으로 내 책들을 장기적으로 다 나눠주기로 결심했다.
특히 좋은 책은 나눠주거나 공동 소유로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언제고 다시 볼 것이라는 핑계로 책을 모았지만 실제 그런 책은 몇 권 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책대로 살면 되지 뭐... ㄱ씨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집착을 이런 식으로 떨쳐버려 본다.
* ㄱ씨에 대한 나의 느낌
ㄱ씨는 괴상한 사람이다.
평소에는 근본주의자를 그렇게 비난하면서도 어떤 말을 들어보면 영락 없는 골수 근본주의자이다.
더 대책이 안서는 것은 가끔씩은 자기의 요상한 삶의 방식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받아들여질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ㄱ씨에게 늘 우정어린 충고를 하지만 ㄱ씨가 변할 것 같지는 않다.
한마디로 불쌍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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